[사진 제공 · 빅히트]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다음 목표로 그래미 어워드(그래미) 수상을 꼽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그래미 측에서도 이들에게 관심의 제스처를 보냈다. 9월 12일 그래미 뮤지엄이 방탄소년단을 초청해 특별 이벤트 ‘방탄소년단과 대화(A Conversation With BTS)’를 개최한 것이다.
그래미는 백인 남성에 초점을 두는 보수적인 성향의 시상식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변화의 모습이 감지된다. 그래미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주의적 성향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소수자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Not Today’ 뮤직비디오를 발표한 방탄소년단은 미국 음악 산업이 찾고 있던 아티스트였다.
같은 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을 시작으로 방탄소년단은 아찔할 정도로 매번 기록을 경신하며 미국시장을 파죽지세로 공략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서치’ 등 미국 내 아시아인의 삶을 그린 영화들이 히트하면서 아시아인의 인종적 가시성이 미국 내에서 큰 흐름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추세는 미국 주류시장에 방탄소년단을 소개하는 데도 긍정적인 기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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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팝과는 다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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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지화 전략의 모든 세부 사항을 폐기했다. 현지어에 능숙해 교두보 역할을 하는 외국 출신 멤버, 현지어 노래 취입, 현지인이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와 심지어 발음하기 쉬운 이름 등. 방탄소년단은 모든 것이 반대였다. 멤버 전원이 국내 출신이고, 한국어로 노래하며, 각자 출신 지역의 색을 강조하거나 교육 시스템 또는 주거환경 등 국내 특수한 맥락도 가사에 넣었다. 과거 현지화 전략이 천동설이라면, 방탄소년단의 전략은 지동설로 느껴질 정도다. 해외 팬들에게 더 유효한 어필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BTS만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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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계 케이팝 지도에서 한국은 일종의 종주국 구실을 했다. 해외에서 더 인기 있는 아티스트가 더러 있었지만, 그 정도에 한계가 있었다. 해외 팬들도 국내에서 인기도를 의식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탓에 커리어가 지속되지 못한다거나, 국내 팬들로부터 ‘눈치 없다’는 식의 핀잔을 받는 등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해외 팬덤은 꾸준히 독자적인 취향집단으로 진화해왔다. 최근에는 드림캐쳐, 스트레이 키즈, 이달의 소녀, 카드 등 해외에서 더 뜨거운 아티스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방탄소년단 이후로 더 가속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별 관심 없던 커리어 초반부터 방탄소년단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온 것이 해외 팬덤이고, 그것이 폭발력을 얻어 북미시장에서 큰 성과를 낸 뒤 국내로 ‘역수입’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케이팝이란 산업에서 한국시장의 숫자들은 그 중요성이 낮아질 것이다. 당장은 국내에서 인지도와 별개로 해외에서 세일즈되는 케이팝 아티스트가 늘어날 테다. 궁극적으로는 국내시장과 무관한, 말하자면 ‘탈K’한 케이팝 아티스트의 등장을 기대할 만하다.
美 음악계, 아미의 자발적 행동력에 ‘경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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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한국식 팬 문화다. 미국 팝이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다. 영미권에서는 어떤 아티스트의 팬 집단 이름이 언중(言中)에 의해 자연스럽게 붙는다. 저스틴 비버의 팬덤인 ‘빌리버’, 원디렉션의 팬덤인 ‘디렉셔너’ 등이 그렇다. 반면 케이팝에서는 소속사와 아티스트에 의해 명명되는 것이 팬덤이다. 이들은 같은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이름이 불려진’ 존재, 아티스트와 ‘인연’이란 감각을 느끼는 존재다. 이는 영미권 팝과 구별되는 케이팝 문화 특유의 감성이기도 하다. 아티스트의 성공을 염원해 자신을 헌신하게 하는 원동력이며, 방대한 인원의 집단행동으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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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팬덤을 향한 시선은 국내에서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팬덤에 관한 연구논문 상당수는 팬들이 아티스트의 홍보를 수행하는 데 초점을 둔다. 달리 말해 소속사의 자원과 노동력이 들어갈 업무를 팬들이 ‘자발적으로’ 맡음으로써 발생하는 경제효과에 주목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각이 미국 음악 산업계에도 있다. 가볍게는 SNS에서 별 뜻 없이 아미를 호명하며 관심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고, 그리 의미 없는 인기투표를 만들어 아미의 클릭수를 챙기기도 한다. 심지어 연예매체나 음악 기자가 자신들이 어떤 상 후보에 오르자 아미에게 투표를 부탁하는 사례마저 있다.
물론 관계자는 대부분 아미의 힘이나, 아미와 방탄소년단의 각별한 유대에 아낌없는 존중을 표한다. 그러나 아미의 경제적 가치를 이용하려는 이들의 존재는, 미국 음악 산업과 한국식 팬덤 문화 사이를 마냥 순수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게 한다. 첫 만남의 핑크빛 기류 속에서 어떤 역학이 발생하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역풍의 우려도 있다. 국내에서 아이돌 팬들은 오래도록 부정적 시선을 받아왔다. ‘어린 여성의 취향’에 대한 폄훼는 정도의 차이는 있되 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아직은 긍정의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소녀들의 집단행동이라는 현상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은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유력지에서 ‘FAKE LOVE’ 무대를 리뷰하며 “대놓고 가짜 사랑이라고 노래하는데도 좋다고 환호하는 팬들”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은 ‘Love Yourself(자신을 사랑하라)’ 캠페인을 펼치기도 하고, 팬들도 이에 화답해 아미의 ‘화력’을 자선모금 등 선행에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최근 방탄소년단의 공항 입국장에서는 팬들이 질서 유지와 아티스트 보호를 위해 끈으로 안전선을 만드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돌 그룹과 팬덤에 대해 인식 개선이 이뤄질 만한 사례도 쌓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팬덤은 뜨거운 역풍을 맞기도 쉽다.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이 기류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나갈지는 조심스럽게 지켜볼 일이다.
건강하고 즐거운 팬덤 문화를 향해
8월 26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BTS WORLD TOUR ‘Love Yourself’ 서울 공연. [사진 제공 · 빅히트]
국내외 언론이 보이는 방탄소년단에 대한 관심은 역시 성적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세우는 금자탑과 성공 원인, 경제적 가치 같은 것들이다. 유감이라면 유감이지만, 그것이 미디어의 생리다.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여론이 팬덤의 목표 지향성을 더 자극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국내 매체의 무관심에 오래 시달린 국내 팬들은 보상심리를 크게 느낄 법하다. 또한 이와 동시에 국내에서 활동 시간이 적은 데 대한 결핍감과 이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성적표와 숫자들 뒤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 주제는, 어떻게 건강하고 즐거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력과 헌신을 요구하는 한국식 팬덤 문화를 출발점으로 이만큼이나 멀리 왔을 때, 방탄소년단이 케이팝에 가져온 것과 같은 혁신을 팬덤 문화에서도 목격하게 될까. 그 해답 역시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함께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