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업무 오찬을 마친 뒤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 내 정원을 통역관 없이 대화하며 산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스트레이츠타임스]
대북특사단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고 돌아온 이후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과 관련해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9월 7일 인도네시아 일간지 ‘꼼빠스’에 실린 서면 인터뷰에서다. 문 대통령은 “신뢰 구축의 실질적 단계로 정전 65주년인 올해 한반도에 적대관계 종식을 위해 종전 선언이 이뤄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文, 연내 종전 선언”
연내 종전 선언은 4·27 판문점선언에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선 종전 선언-후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과 ‘선 비핵화-후 종전 선언’을 관철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연내 종전 선언은 문 대통령의 의지보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얼마나 성실하게 나서느냐,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얼마나 성의 있는 조치로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문 대통령이 재개할 수는 있지만 ‘종전 선언 합의’에 이르려면 북·미 양국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는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올해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리면서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고 있는 데 대해 국민 의견을 물었다. 응답자의 64.0%는 ‘한미동맹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올해 안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도를 내야 한다’는 응답은 30.7%로 속도 조절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래프1 참조).
이 같은 결과는 우리 국민 다수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남북관계 진전을 바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 모든 연령대, 전국 모든 지역, 특히 보수·중도·진보 등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절반 이상의 국민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봤다. 연령별로는 나이가 높아질수록 ‘속도 조절론’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았다. 다만 40대에서는 ‘연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도를 내야 한다’는 응답이 39.9%로 가장 높았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57.2%로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았다. 지역별로는 부산·울산·경남(75.2%), 대구·경북(68.4%), 경기·인천(65.0%)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높았고, 광주·전남·전북과 대전·충청·세종에서는 ‘연내 진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38.5%, 35.7%로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정은 발언, 불신 > 신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9월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종전 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는 관계없다”고 발언했다고도 전했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은 ‘종전 선언이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이어져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까. 주간동아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 절반 이상(54.1%)은 김 위원장의 발언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34.1%에 그쳤다(그래프2 참조). 연령별로는 40대에서 유일하게 ‘신뢰한다’(48.8%)는 응답이 ‘신뢰하지 않는다’(42.8%)보다 높았다. 20대(59.4%)가 김 위원장의 발언을 가장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50대(58%), 60대 이상(57.6%), 30대(52.5%)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전국적으로 ‘불신’ 여론이 ‘신뢰’ 여론보다 높은 가운데, 광주·전남·전북에서는 불신(44.2%)과 신뢰(34.1%)의 간극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정치성향에 따라 신뢰와 불신이 엇갈렸는데, 진보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신뢰(50.3%) 응답이 더 높은 반면, 진보성향(66.9%)과 중도성향(61.8%)에서는 불신 여론이 더 컸다.
중도 48.9% > 진보 25.7% > 보수 18.9% 순
정치적 이념성향을 묻는 물음에 우리 국민 절반 가까이(48.9%)는 스스로를 ‘중도성향’이라고 응답했다. ‘진보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5.7%, ‘보수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8.9%였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5%. 진보와 보수만 비교해보면 진보성향이 보수성향에 비해 6.8% 더 많았다.
특이한 것은 전 연령대에서 보수성향보다 진보성향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60대 이상에서도 47.3%가 중도성향이라 답했고, 진보성향 또한 23.5%로 보수성향이라고 응답한 21.1%보다 많았다. 50대에서는 진보(21.5%)와 보수(21.2%)가 엇비슷했으며, 중도(52.1%) 비율이 가장 높았다. 40대는 진보라고 답한 비율이 32.9%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았다. 보수성향이라는 응답은 16%에 그쳤다. 20대와 30대는 진보가 각각 25.8%와 23.3%로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9월 첫째 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진보성향이라고 답한 비율이 28.8%로 보수성향(22.9%)보다 5.9%p 더 높게 나타났다. 중도는 32.9%, 잘 모름/거절은 15.4%였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는 진보성향 유권자의 비중이 우위에 선 모습이다. ‘주간동아’ 추석 특집 여론조사를 담당한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진보성향임을 적극 밝히고 있지만, 보수층에서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스스로를 보수성향이라고 얘기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라며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나지 않는 샤이보수가 5% 내외로 존재할 개연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