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단둥은 북한과 무역이 가장 성행하는 곳이다. 인구 245만 명이 거주하는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평안북도 신의주와 맞닿아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북·중 교역은 대부분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를 통한다. 단둥에서 거래되는 대북 교역 규모는 연간 38억여 달러(약 4조3000억 원)로 전체 북·중 교역액의 70%를 차지한다. 단둥 거리 곳곳에서 북한 상점을 볼 수 있고, 북한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단둥에서 중국산 가전제품이나 의류 등을 싸게 구매한 뒤 북한에서 온 무역일꾼들에게 넘긴다.
단둥에는 국유은행인 중국은행, 공상은행, 건설은행, 농업은행 등의 분점을 비롯해 10개 은행이 있다. 단둥 은행들은 지난 3년간 북한 기업 및 개인에 대한 달러 송금을 불허했지만 자국 화폐인 위안화의 대북 거래는 허용해왔다. 북한 무역상과 외화벌이 일꾼은 대부분 단둥 은행들에 개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위안화를 예금하거나 북한으로 송금해왔다. 단둥 은행들은 그동안 북한과 거래한 덕에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단둥 은행은 물론이고 무역업체들에게도 북한과 거래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려 단둥시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전가의 보도
미국이 대북제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중국을 겨냥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꺼내 들었다. 제재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 기업, 은행에게도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2차 제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 완전 파괴’ 경고에 이어 이틀 만인 21일 대북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제재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옵션을 제외하고 꺼내 들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제재 카드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지구촌의 평화 및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면서 “이런 깡패국가를 다른 국가들이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제재 조치는 북한과 모든 거래를 전방위적으로 차단한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북한의 상품·서비스·기술을 상당한 정도로 수출 및 수입하는 제3국의 개인과 기업 △북한의 에너지·건설·교통·금융·정보통신·어업·광물·섬유 산업 등과 거래하는 제3국의 개인과 기업 △북한에게 무역 관련 금융 및 기술적 편의를 제공한 제3국의 개인과 기업, 은행 등을 제재 대상으로 삼는다. 또 북한의 공항·항구·육상 통관소와 관련된 제3국의 개인과 기업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북한의 항구와 공항을 다녀온 제3국의 선박과 항공기도 제재 대상이다. 조치 내용을 위반할 경우 △제3국의 개인과 기업은 미국 내 은행 계좌 동결 △외국 금융기관은 미국 내 계좌 개설 등 금융거래 금지 및 자산 동결 △외국 선박과 항공기는 180일 이내 미국 입항·착륙 금지 △북한의 거래에 관계된 개인은 입국 금지 등이다.
특히 행정명령에는 한 번이라도 북한과 상당한 수출과 수입을 한 정황이 확인되면 제재 대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새 행정명령은 미국과 사업을 할 것인지, 북한과 할 것인지 양자택일하라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이번 제재 조치는 북한의 대외 거래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타깃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사실상 원유를 제외하고 모든 대북 경제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하는 최후통첩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의 대중(對中) 대외무역 의존도는 2014년 90.2%, 2015년 91.3%, 2016년 92.5%를 기록했다. 북·중 교역 규모는 지난해 60억5600만 달러(약 6조8400억 원)에 달했다. 중국에 이어 북한과 가장 많이 교역을 하는 국가는 러시아지만 전체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중국 은행들은 그동안 북한과 각종 거래에서 결제자금 통로 구실을 해왔다. 미국 재무부에서 금융제재를 담당했던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진흥재단 연구원은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고자 중국 내 여러 은행 계좌를 거치며 돈세탁을 한 뒤 미국 금융망을 이용하고, 대금 결제를 직접 하는 대신 중국 내 거래 기업들이 서로 돈을 주고받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러시아 제재 모델 결합
이번 조치에 따라 중국 은행들이 북한과 거래를 중단하면 북한은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특히 북한의 유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9월 12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5호에 따라 북한에 공급되는 유류는 기존 대비 30% 감축됐다. 그런데 유류 구매는 은행 거래를 동반한 대규모 무역이란 점을 고려할 때 은행 거래를 차단하면 유류 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 또 북한이 정권 유지를 위해 사들이는 사치품 등도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데, 이번 제재 조치에 따라 모두 끊길 가능성이 있다. 북한을 드나드는 선박과 항공기를 180일간 미국에 입국할 수 없도록 한 조치도 상당히 강력한 제재다. 북한의 교역이 대부분 해운 물류에 집중돼 있음을 고려할 때 일종의 북한 무역 봉쇄령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조치는 선박과 항공기를 이용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부품은 물론, 각종 무기를 수출입하던 북한의 루트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는 대이란 제재를 모델로 한 것이다. 미국은 이란에 대해 각종 경제 조치를 취했지만 핵개발을 막을 수 없자 2010년부터 이란의 최대 수출품인 석유와 이란 금융기관 전체에 제재를 단행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란 제재법에 따라 이란의 모든 금융기관을 ‘자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해 외국 금융기관과 거래를 봉쇄했다. 원유 수출 자금 유입과 원유 수출 통로가 막힌 이란은 결국 5년 만인 2015년 7월 미국 등 주요 6개국과 협상을 통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제재 해제를 약속받았다. 데이비드 코언 미국 전 재무부 차관보는 “이번 제재는 이란에 사용했던 은행 간 거래 차단과 러시아에 대한 부문별 제재 방식을 결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금융 분야에서 이란에 적용한 것보다 더욱 광범위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이번 조치에 마지못해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가 달러화 결제를 축으로 한 금융시스템으로 작동된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반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로 거래되는 외환은 전체의 44%, 은행 대출은 53%, 채권 발행은 76%에 달한다. 특히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3700억 달러(약 417조9150억 원)에 달하는 중국으로선 미국 은행을 통해 무역 대금을 결제해야 하는 자국 기업, 은행의 거래가 차단될 경우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