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오전부터 디저트 전문점 ‘망고식스’의 강훈(49) 대표 이름이 인터넷상에서 회자됐다. 그가 전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입지전적 인물인 강 대표의 죽음에 많은 이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7월 24일 오후 5시 46분쯤 강 대표가 서초구 반포동 자택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회사 직원 A씨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강 대표가 하루 종일 전화를 받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겨 자택을 찾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7월 23일 강 대표가 ‘힘들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뒤 하루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걱정이 돼 집을 찾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보니 이미 강 대표가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강 대표는 사망 하루 전 지인에게 ‘나 없어도 잘 살았으면 한다’며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난에 심리적 압박 컸던 것으로 추측
경찰은 강 대표 시신에서 타살로 볼 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튿날 강 대표에 대한 약식 부검이 이뤄졌는데 경찰은 “외상 등 타살로 볼 만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전형적으로 자살로 볼 수 있는 상처가 나왔다”고 밝혔다.
강 대표가 운영하던 KH컴퍼니는 최근 경영난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7월 초 한 인터넷 매체는 강 대표가 인테리어·간판·장비 설치비용을 가맹점주들로부터 받고도 협력업체에 미지급한 건, 임직원의 임금을 3~6개월간 체불한 건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와 고용노동부의 조사 및 민사소송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강 대표는 사업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금 지연과 관련해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현재 진행하는 외부 투자 유치를 6월 말까지 완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금 미지급 상황을 조속히 해결하고자 하니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결국 7월 14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제출했고, 첫 심문기일을 하루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법원은 회생절차 심문기일을 대표자 교체를 위해 연기했지만, 현재 직원 대부분이 회사를 떠난 상태라 그를 대신해 회생절차를 이어갈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관련 내용을 문의하고자 KH컴퍼니 본사로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음만 반복됐다.
강 대표와 사업을 함께 했던 몇몇 지인은 최근 그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망고식스’ 한 자문위원은 “브랜드 론칭 이후 음료 메뉴 개발 과정에서 강 대표와 몇 차례 만났다. 당시 사업이 잘됐고, 지방 대학과 손잡고 인력 양성도 해보자고 해서 관련 학과도 만들었다. 브랜드 론칭 초창기에는 사업이 잘됐던 걸로 기억한다. 근래 강 대표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기사로 사망 소식을 접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강 대표는 일할 때 시원시원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중국 진출 사업도 결과가 좋았고, 드라마 PPL(간접광고)도 좋은 조건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매장도 서울 강남 등 주요 상권에 오픈했다고 해서 사업이 잘되는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신화적 존재였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전문 경영인으로 성공한 뒤 자신만의 브랜드를 내놓으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는 1992년 신세계백화점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97년 스타벅스 한국 론칭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며 커피에 눈을 떴다. 그는 자서전 ‘카페베네 이야기’에 ‘시애틀 스타벅스 본사에서의 3개월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커피가 무엇인지, 매장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던 내가 짧은 시간 동안 커피 프랜차이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접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론칭이 무기한 연기됐고, 사업에 뜻이 있었던 강 대표는 회사를 나와 퇴직금 1400만 원으로 토종 커피 브랜드 창업에 도전했다. 그는 1998년 초 김도균 현 탐앤탐스 대표와 강남역 지하상가에 토종 커피전문 1호점 ‘할리스커피’를 공동 설립했다. 이후 5년 만에 매장 수를 40개까지 늘리는 등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브랜드를 키우는 데 한계를 느낀 그는 2003년 할리스커피를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현 CJ E&M)에 26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손댄 사업마다 성공했지만 첫 실패로 몰락
이후 2008년 ‘카페베네’로 자리를 옮겼고, 업계 최초로 가맹점 500호점을 돌파하는 데 기여했다. 2010년에는 사장직에 올랐지만 이내 사표를 냈고, 독자적인 브랜드 론칭을 위해 KH컴퍼니를 설립했다. 이듬해 디저트 전문점 ‘망고식스’를 선보였는데 출시 2년 만에 가맹점 130여 개, 연매출 48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과일 음료 브랜드 ‘커피식스’ ‘쥬스식스’를 운영하는 KJ마케팅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망고를 주력으로 음료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법인을 설립하고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강 대표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본사 수익이 현재 마이너스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들려면 버는 만큼 써야 한다. 브랜드 론칭 이후 1년 반 동안 80억 원가량을 순수 마케팅비로 썼다. 새 브랜드를 알리는 데 결코 큰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3년 뒤인 2015년 망고식스의 매출은 194억 원, 지난해엔 106억 원으로 론칭 초반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2015년부터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서 영업손실 10억 원, 지난해에는 11억 원을 기록하며 화려한 역사는 막을 내렸다.
커피업계 관계자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커피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한 커피점 창업 컨설턴트는 “최근 2~3년 새 소비자들은 카페베네, 할리스커피, 탐앤탐스 같은 메이저 프랜차이즈보다 독특하고 신선한 메뉴의 유니크한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프랜차이즈 위주 브랜드의 매출이 하락했고, 가맹점 관리에 신경 쓰지 못해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망고식스에 대해 “망고를 메인으로 한 디저트 메뉴 자체가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대중성이 떨어지는 데다 가격대도 높았다.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이 굳이 디저트점이나 주스점에 발을 들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소비자 취향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