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에서 동인천역 방면으로 300여m 걸었을까. 알록달록 동화마을 입구에서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는 가족, 연인들의 웃음이 청량하다. 인천 중구청은 쇠락한 송월동 마을을 살리고자 동화를 테마로 새 단장을 했다. 파스텔톤 벽화와 동화 속 등장인물은 기자를 30여 년 전 유년 시절로 이끄는 듯했다. 한낮 수은주가 33도를 기록한 7월 25일 오후 동화마을 구석구석에 설치된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찾아보는 재미에 더위도 잊어버렸다.
파스텔톤 동화마을은 곧바로 빨강과 노랑 천지인 차이나타운과 이어진다. 차이나타운이 ‘먹방’(먹는 방송)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면서 방문한 연예인 사진을 걸어놓고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과거 중국음식점만 들어서 있던 차이나타운은 편도 1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측으로 양꼬치, 공갈빵, 전병 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섰다. 아삭아삭 공갈빵 하나 입에 물고 200m 남짓 차이나타운 거리를 걸으며 중국을 담는다.
짜장면 발상지이자 과거 화교들의 거주지인 차이나타운은 이제 ‘인천의 작은 중국’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공갈빵 가게 주인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중국인 관광객은 줄었지만, TV에 많이 소개되고 거리를 깨끗이 단장하면서 내국인 관광객이 더 많아졌다”며 “인천 관광명소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국내 관광객 더 많은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이 끝나는 지점에선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말 개항기로 돌아간다.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맺은 강화도조약(1876)으로 부산(1876), 원산(1880)에 이어 개항한 인천(1883)은 그 역사만큼 유럽식 창고건물과 일본식 적산가옥, 러시아인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화행사와 전시회를 여는 인천아트플랫폼(2009년 개관)과 창고갤러리(4월 개관) 주변에는 공공미술 작품도 눈에 띈다.
인천 중구청 앞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만나는 인천개항박물관은 그 시절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을 리모델링했다. 최초의 갑문식 도크와 처음 도입된 우편제도, 최초 감리교회인 내리교회, 한국 최초 철도인 경인철도 등 ‘최초’가 붙은 유물과 자료들은 ‘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1892년 지은 개항기 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해 2013년 개관한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근대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원화를 전시한 ‘소설, 애니메이션이 되다’를 만날 수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학창 시절 읽었던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전시를 보니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날따라 무던히 운수가 좋았던 인력거꾼 김첨지가 집에 돌아와 죽은 아내를 끌어안고 우는 모습. 식민지 시대 조선인의 가난과 울분을 개항기 창고건물에서 느끼다니 기분이 묘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연말까지 매주 금~일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20분씩 건물 외벽에 미디어파사드를 활용한 ‘영상 아트쇼’를 열어 한여름밤 마실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며 “짜장면과 (최초 호텔인) 대불호텔, (최초 근대식 공원인) 만국공원(현 자유공원) 등 인천 근대 역사를 소개하는 영상이 방영돼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최초 근대식 공원
인천 중구청을 지나 응봉산 자유공원을 오르는 길에는 유방과 항우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을 다룬 초한지(楚漢志) 벽화가 길 따라 늘어섰다. 마지막 대전인 하해전투, 항우와 연인 우희의 마지막 이별(패왕별희) 장면을 담은 벽화를 볼 때쯤 자유공원 돌계단을 만난다.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해 1888년 세운 자유공원은 서울 최초 근대공원인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섰는데, 1957년 미국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동상을 건립하면서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동상 주변 등나무 그늘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공원 팔각정에 오르니 시원한 바닷바람 사이로 멀리 인천항과 월미도가 눈에 들어온다. 맥아더 장군 동상과 강제 개항한 인천항은 묘하게 어울린다. 아픈 한국의 근대사와 이색적인 차이나타운, 앙증맞은 동화마을은 한나절 문화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