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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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현대차 신사옥 터는 ‘재물 명당’

[안영배의 웰빙 풍수] 세 갈래 물길 만나 풍요 기운 넘치는 옛 한성백제 토성 터

  •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입력2024-04-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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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도 여전히 주목받는 곳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일대다. 이곳은 굵직한 개발 호재로 부동산시장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 일대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가 들어서고 있고, 현대자동차그룹이 코엑스 앞 옛 한국전력공사(한전) 부지에 짓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도 있다.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개발사업, 삼성동 코엑스와 잠실종합운동장을 잇는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199만㎡) 사업 등도 예정돼 있다. 삼성동 일대가 수도권 핵심 교통·관광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대 땅값도 국내 최고 수준이다. 공시지가가 부동산 개발 호재에 3.3㎡당 평균 1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곳 부동산중개업소에 의하면 매도 호가만 3.3㎡당 2억 원에서 3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미래형 도시로 탈바꿈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전경. [GETTYIMAGES]

    미래형 도시로 탈바꿈하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전경. [GETTYIMAGES]

    삼성동 수혜 기업 현대차

    온 동네가 미래형 도시로 탈바꿈하는 삼성동에서 가장 큰 수혜 기업은 현대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래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은 2014년 삼성동 한복판에 자리한 한전 부지 인수전에서 감정가보다 3배나 비싼 10조5500억 원을 주고 땅을 사들였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자동차 왕국 건설이라는 집념으로 과도하게 베팅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뒤따랐다. 그런데 10년이 흐른 뒤인 현재 해당 부지(7만9341.8㎡)는 시세가 10조 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개발 호재에 힘입어 갈수록 값어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게 부동산시장 내 평가다. 무리한 베팅이라는 비판이 미래를 내다본 현명한 투자로 재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는 이곳에 그룹 계열사 전체가 입주하는 신사옥은 물론 호텔, 전시 컨벤션, 공연장 등을 지어 미래 도시 거점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플랜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표현되는 이 플랜은 2020년 잠실 롯데월드 부지보다 규모가 큰 이곳에 첫 삽을 뜬 후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현대차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GBC 프로젝트에만 약 4조6000억 원을 투자하고 신규 고용 9200명을 창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차 사옥이 들어서는 삼성동 일대는 풍수 시각으로 봐도 범상치 않은 곳이다. 봉은사와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을 중심으로 한 삼성동 일대는 ‘재물 명당’으로 미래 가치가 보장된 땅이라고 할 수 있다.

    봉은사와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을 중심으로 한 삼성동 일대는 ‘재물 명당’으로 미래 가치가 보장된 땅이라고 할 수 있다. [GETTYIMAGES]

    봉은사와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을 중심으로 한 삼성동 일대는 ‘재물 명당’으로 미래 가치가 보장된 땅이라고 할 수 있다. [GETTYIMAGES]

    역사적으로 이곳 일대 땅은 원래 봉은사 소유였다. 강남 수도산(66.9m) 자락에 자리한 봉은사는 사찰 앞쪽(남쪽)으로 33만㎡(10만 평)에 달하는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다. 봉은사가 강남 노른자위 땅을 많이 보유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년) 연회국사가 견성사(見性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데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정작 이 절이 유명해진 것은 조선 제9대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왕실의 지원을 받아 땅을 하사받는 등 절 규모가 커졌고, 절 이름도 ‘왕의 은혜를 받든다’는 뜻의 봉은사(奉恩寺)로 바뀌었다.



    봉은사가 선릉에서 동북쪽으로 1㎞ 남짓 떨어진 현 위치로 이전해온 것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 윤 씨(1501~1565)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불교 중흥을 지원했던 문정왕후는 당시 신임하던 승려 보우(1509~1565)를 봉은사 초대 주지로 삼았고, 연산군 대에 폐지했던 승과(僧科)를 부활시켜 봉은사 앞쪽 너른 들판에서 과거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승과에 합격한 이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다. 임진왜란 때 구국의 선봉에 나서 승병을 이끈 지도자들이 바로 봉은사에서 배출된 것이다. 현재 봉은사 내 영각(影閣)에는 연회국사를 비롯해 보우, 서산, 사명 등 봉은사를 빛낸 일곱 승려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봉은사 일대 지맥(地脈)을 자세히 묘사한 ‘대동여지도’를 보면 이곳이 대단한 명당 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관악산에서 뻗어나간 지맥이 남태령과 서초동 우면산을 거쳐 동북 방향으로 더 진출한 뒤 선정릉을 지나 수도산에서 멈추는 모습이다. 산이 끝나는 지점, 즉 산진처(山盡處)인 수도산 아래에 바로 봉은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풍수에서는 혈(穴)이 맺힌 산진처를 매우 귀하게 여기는데, 봉은사가 바로 그런 터라는 얘기다.

    탄천·양재천·한강 만나는 ‘삽합수’

    지맥만이 아니다. 이곳은 탄천과 양재천, 그리고 한강이라는 세 물길이 합쳐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풍수에서 물길은 재물과 풍요의 기운으로 해석된다. 풍수 고전인 ‘설심부’에서는 세 갈래 물길이 만나는 삼합수(三合水) 지역을 매우 대길한 터로 여긴다. 실제로 봉은사는 불교 조계종 산하 사찰 중 시주금이 전국 수위를 달릴 정도로 부자 절로 알려져 있다. 신도 수만 2020년 기준 30만 명이 넘었을 정도다.

    봉은사 일대는 비단 조선 왕실만 주목했던 게 아니다. 이곳은 삼국시대 한강변에 자리했던 한성백제의 핵심 영역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온조왕이 세운 백제가 475년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존재했던 한성백제는 한강변을 따라 풍납동 토성, 몽촌토성, 삼성동 토성 등을 세우고 나라를 경영해왔다.

    이 중 삼성동 토성은 봉은사의 수도산 뒤쪽 구릉지대인 경기고, 청담배수지공원, 봉은중 일대에 자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삼성동 토성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된 상태다. 1970년대 이후 강남 개발사업으로 아파트와 고층 건물 등이 들어서면서 토성이 완전히 허물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경기고 동쪽 영동대로 언덕길에 세워진 삼성동 토성 표지석만이 그때 영광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한성백제를 수호하는 주요 성곽인 삼성동 토성 안쪽은 왕궁이 들어설 만한 왕기(王氣)를 머금은 명당 터이기도 하다. 수도산 아래 봉은사, 현대차 GBC 부지, 코엑스 전시관, 무역센터 일대가 그렇다. 특히 봉은사 터에 한성백제 시절 왕궁이 자리했을 개연성이 매우 커 보인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풍수적 근거도 있다. 사람의 생활 근거지인 양택(陽宅) 풍수론에서는 “집 왼쪽으로는 흐르는 물이 있는 게 좋다. 이를 청룡(靑龍)이라고 한다. 오른쪽에 큰 도로가 있으면 백호(白虎)라고 한다. 앞쪽으로 물웅덩이(연못)가 있으면 주작(朱雀)이라고 한다. 뒤쪽에 구릉이 있으면 현무(玄武)라고 한다. 이는 최고로 귀한 땅이다. 만약 그러한 형상이 없으면 흉하다”고 설명한다. 당나라 이전에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택경’의 양택 명당론이다.

    이 이론은 봉은사 일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향을 하고 있는 봉은사를 중심으로 왼쪽(동쪽) 청룡으로는 흐르는 물인 탄천이 있고, 오른쪽(서쪽) 백호로는 도시 구조상 큰 도로가 당연히 존재한다. 봉은사 앞쪽(남쪽)으로는 연못 같은 물웅덩이가 있어야 하는데, 습지가 발달했을 당시 지형을 고려하면 자연 상태의 연못이 존재했을 개연성이 크다. 지금도 봉은사 앞마당에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연못이 2군데나 있다. 마지막으로 봉은사 뒤쪽으로는 수도산으로 불리는 구릉이 현무로서 단단히 받치고 있다.

    이러한 양택 입지론은 청룡·백호·주작·현무를 모두 산으로 설정하는 음택(陰宅: 무덤) 풍수와는 약간 다르다. 즉 양택 풍수에서는 뒤쪽으로는 산이, 앞쪽으로는 연못이 있어야 조화롭다고 보며 좌우 양쪽으로는 물길과 도로를 설정해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원활하도록 설정해놓고 있다. 또 이러한 양택 배치는 충남 부여의 사비백제 왕궁 추정지에서 찾아볼 수 있고, 백제 영향력이 크게 미쳤던 일본 교토 황궁이 자리한 헤이안죠(平安城)에서도 확인된다.

    현대차 사옥과 한성백제의 미래

    이는 현대 건축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현대차의 GBC는 좌우 양쪽으로 물길인 탄천과 큰 도로인 영동대로를 이미 끼고 있어 명당 조건을 갖췄다. 다만 지대가 워낙 낮은 평지이다 보니 뒤로 기댈 만한 구릉이나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원래 정몽구 명예회장은 이곳에 높이 569m, 105층 규모의 마천루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도시 안전이나 국가 안보 등을 고려해 초고층 타워를 55층 규모(242m) 2개 동으로 나눠 짓는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양택 풍수적 시각에서 보면 이곳은 홀로 우뚝 선 마천루보다 높이를 달리하는 여러 건물이 서로 뒷배 역할을 하는 구조가 더 조화롭다고 할 수 있다. ‘도시 풍수’에서는 높은 건물이 구릉이나 산 역할을 대신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이 일대가 현대차그룹이 구상하듯 미래 도시 선구자로 탈바꿈해 한성백제의 영광을 재연하길 기대한다. 이곳 땅 기운이 1500여 년 휴지기를 거쳐 다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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