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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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우주 강국’ 인도

할리우드 영화 한 편 제작비용으로 인류 최초 달 남극 착륙 성공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3-09-1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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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가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를 달 남극에 무사히 착륙시키면서 러시아, 미국, 중국을 위협하는 우주 강국으로 올라섰다. 상대적으로 저예산 우주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인도의 우주 탐사 기술이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결과다. 특히 착륙이 까다로운 달 남극 지역에 첫발을 디딤으로써 인도의 고도화된 우주기술을 입증했다.

    달 남극을 최초로 탐사하고 있는 찬드라얀 3호.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달 남극을 최초로 탐사하고 있는 찬드라얀 3호.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14일 동안 달 남극 탐사

    인도의 달 탐사 프로젝트 ‘찬드라얀 프로그램’의 세 번째 탐사선인 찬드라얀 3호가 8월 23일 인류 최초로 달 남극에 안착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번 달 착륙에 대해 “지금은 전례 없이 발전하는 인도를 위한 순간”이라며 “이번 성공은 인도뿐 아니라 모든 인류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찬드라얀 3호는 달 표면의 광물과 화학적 조성에 대한 분광계 분석을 포함해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고자 개발된 탐사선이다. 달 토양과 암석의 특성에 관한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향후 우주 탐사에 필요한 산소, 연료, 식수 공급을 위한 달 남극의 얼음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인도는 찬드라얀 3호 탐사를 기반으로 달에서 물을 찾는 ‘루펙스(Lunar Polar Exploration Mission)’ 프로젝트를 일본과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찬드라얀 3호는 추진 모듈과 착륙선, 로버로 구성돼 있다. 달 궤도를 돌다가 착륙선 ‘비크람’을 달 남극으로부터 약 600㎞ 떨어진 지점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이 지점은 지금까지 많은 탐사선이 도달한 곳 가운데 달 남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다. 1960~1970년대 달에 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우주선은 주로 달 적도 근처에 착륙했다. 달 남극에 도착한 착륙선은 로버 ‘프라그얀’을 내보내 세부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프라그얀은 무게 26㎏에 크기가 서류가방 정도 되는 작고 가벼운 탐사 로버다. 착륙선과 로버는 탑재한 과학장비를 이용해 대략 달에서 하루, 즉 지구의 14일 동안 해당 지역 표면을 탐사한다. 이번 일정이 일반적인 우주 임무에 비해 매우 짧은 이유는 장비들이 모두 태양열로 구동되기 때문이다. 달에서 하루가 지나면 어두워져 전력원이 사라지기에 더는 작동할 수 없다.

    착륙선과 로버는 분석 장비를 활용해 순조롭게 화학적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달 토양에 유황과 알루미늄, 칼슘이온, 티타늄, 망간, 크롬, 산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로버가 달 토양을 파고 센서를 설치한 결과 토양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놀라운 현상을 포착했다. 표면에서는 측정 온도가 약 50도였지만 8㎝ 아래로 들어가자 영하 10도로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이를 통해 달에 물과 얼음의 존재 가능성을 다시금 살피고 있다.



    달 남극에 풍부한 희귀 자원

    찬드라얀 3호에서 찍은 탐사 로버 프라그얀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찬드라얀 3호에서 찍은 탐사 로버 프라그얀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 달 정찰 궤도선이 촬영한 달 남극. [NASA 제공]

    미국항공우주국(NASA) 달 정찰 궤도선이 촬영한 달 남극. [NASA 제공]

    여러 국가가 달 탐사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달에서 우주기술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더 많은 발견을 위해 태양계로 나아갈 전진기지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특히 달 남극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집중하고 있다. 달 남극에 지구에서는 희귀하고 값비싼 헬륨-3, 희토류 원소 등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달 남극은 얼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달은 자전축 기울기가 1.5도에 불과해 극지방의 일부 분화구에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조건과 낮은 기온이 물과 얼음을 생성해 얼음이 토양에 섞이거나 표면에 노출됐다고 본다. 2009년 10월 NASA는 텅 빈 로켓을 달 남극 분화구에 의도적으로 충돌시킨 실험을 통해 달에 물과 얼음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달의 극지방이 다른 지역에 비해 반사율이 높고 더 많은 양의 수소가 관찰된 이유 또한 물과 얼음 때문일 수 있다.

    달에서 물이 발견될 경우 수십억 년 전 우주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뿐더러, 태양계 탐사를 위한 귀중한 자원이 된다. 물과 얼음은 우주 비행사를 지원하고 로켓 연료를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남극 봉우리에는 거의 일정한 양의 햇빛이 도달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탐사에 필요한 전력 발전도 가능해진다. 물론 달 남극은 기온이 몹시 낮고 분화구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안전하게 접근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곳이다. 인도가 달 남극에 도달하기 며칠 전 러시아 탐사선 ‘루나-25’가 인류 최초로 달 남극 착륙을 시도했지만 추락하며 실패로 끝났다.

    찬드라얀 3호의 성공을 시작으로 향후 달 남극 개발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찬드라얀 3호가 착륙한 지점보다 남극에 더 가까운 지역에는 ‘영구 음영 지역’(permanently shadowed regions·PSR)으로 불리는 분화구들이 있다. 이 지역은 태양 광선이 내부에 닿지 못할 정도로 각이 져 있어 기온이 영하 200도 이하로 떨어진다. 이에 얼음이 수십억 년 이상 남아 있을 개연성이 크다.

    일본과 협력해 추진 중인 인도의 후속 탐사선 ‘찬드라얀 4호’는 PSR을 탐사할 예정이며, 중국도 이 지역에 탐사선을 착륙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 역시 달 남극 탐사를 계획하고 있다. NASA의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착륙 후보지 13곳을 모두 남극 근처로 설정해놓았다.

    찬드라얀 3호를 통해 인도는 NASA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포함한 향후 국제적인 우주 임무에서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주개발 선진국으로 불리던 러시아와 일본이 최근 달 착륙에 잇따라 실패한 직후 얻어낸 성과라 더욱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전 NASA 에임스센터 소장이던 스콧 허버드 미국 스탠퍼드대 우주항공 교수는 ‘네이처’를 통해 “미지의 달 남극에 탐사선을 안전하게 착륙시킨 것은 뛰어난 과학적·공학적 성과”라면서 “찬드라얀 3호의 성공적인 착륙으로 인도는 매우 독점적인 클럽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인도는 1969년 인도우주연구기구(Indian Space Research Organisation·ISRO)를 설립한 뒤 우주기술이 초고속으로 발전하며 우주 탐사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2008년 최초 달 탐사선 찬드라얀 1호를 발사해 달에 우주선을 보낸 네 번째 국가로 발돋움한 데 이어, 2013년에는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또한 찬드라얀 3호가 달 남극에 인착한지 10일 만에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태양 관측용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향후 2년 안에 내국인 3명을 우주로 보내는 유인 우주비행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ISRO가 미국, 러시아 등 1세대 우주 강국이 우주 프로그램에 지출한 수천억 달러에 비해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14억 인구대국을 주요 우주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최초 위성 개발에는 약 3000만 루피(당시 400만 달러 미만)의 정부 지원이 있었다. 당시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120달러였다. 그렇게 탄생한 첫 위성 아리아바타는 인도 자체 기술로 설계·제작됐으며, 1975년 옛 소련의 코스모스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아리아바타 개발에 참여한 수렌드라 팔은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1970년대 초기 인공위성 개발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소수의 엔지니어가 벵갈루루 외곽에 자리한, 골판지와 금속 지붕이 있는 창고에서 작업했다”며 “장비가 많이 없었던 데다, 비둘기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회상했다.

    인도 천문학자 이름을 따 개발된 인도 첫 인공위성 아리아바타.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

    인도 천문학자 이름을 따 개발된 인도 첫 인공위성 아리아바타. [인도우주연구기구 제공 ]

    저예산으로 우주 강국 대열 합류

    인도는 세계 5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ISRO에 따르면 2021년 우주 부문 예산으로 19억 달러(약 2조5300억 원)를 배정했다.

    참고로 2021년 NASA 예산은 250억 달러(약 33조2875억 원)에 달한다. 중국은 우주국 예산을 공개하지 않지만 대략 100억 달러(약 13조315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한국이 우주개발에 책정된 예산은 8000억 원 정도다.

    찬드라얀 3호 역시 발사가 2년 지연돼 전체 비용이 증가했지만, 2020년 ISRO가 추산한 비용은 7500만 달러(약 998억6250만 원)였다. 이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제작비(약 6500만 달러)와 비슷한 액수다. 찬드라얀 3호는 크기가 작은 로켓으로 이륙한 뒤 지구 주위를 여러 차례 돌면서 중력을 이용해 40일 만에 달에 도달함으로써 연료와 비용을 절약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와 함께 인도는 민간 기업에 우주 부문을 개방해 상업용 위성 발사 시장을 내다보고 있다. 스페이스X 같은 우주기업을 키운 정부 우주 프로그램에 추진력을 더하고 발사체 수익 사업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에 인도는 2020년 민간 기업에 우주 부문을 개방했으며, 지난해 우주 스타트업이 인도 최초 민간 제작 로켓을 발사했다.

    이처럼 극히 적은 예산으로 일군 인도의 우주기술 성과는 기존 우주 강국들의 견제 대상이 되는 동시에 신흥 국가들에는 희망이 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인도의 달 착륙이 제한된 자원으로 우주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신흥 경제국들에 특히 고무적일 것”이라며 “남반구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이러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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