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골퍼라면 한 번쯤 이런 푸념을 한 경험이 있을 테다. 2개 이상 조가 참여하는 단체 라운드에선 “저쪽 조 멤버가 더 좋네”라며 은근히 부러워한 적도 있을 것이다. 직장 동료들과 단체 라운드를 할 때 ‘보기 싫은’ 상사와 같은 조가 되면 ‘골프 치면서까지 기분을 맞춰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KLPGA 투어 메이저대회 KB금융 스타챔피언십이 9월 7일 개막했다. ‘디펜딩 챔피언’ 박민지(사진)는 1라운드에서 직전 대회인 KG 레이디스 오픈 우승자 서연정, 올 시즌 상금 1위에 오른 이예원과 1번 홀에서 오전 11시 50분 티오프했다. [KLPGA]
새벽 3시에 눈뜨는 프로선수들
프로선수도 마찬가지다. 출발시간(티오프 타임)과 조 편성(페어링)은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아마추어는 골프장에 대개 1시간 전 도착해 식사 후 곧바로 필드에 나서지만, 프로선수는 훨씬 일찍 움직인다. 선수별로 루틴 차이가 있긴 해도 대부분 2시간 30분~3시간 전 대회장에 나와 드라이빙레인지와 연습그린에 들른 뒤 요기를 하고, 다시 연습그린에서 퍼팅감을 최종 점검한 후 티잉 구역에 선다.6월 열린 한국여자오픈의 1~2라운드 첫 조 출발시간은 오전 6시 30분이었다. 대회장과 가까운 숙소를 잡았다 해도 첫 조 선수들은 새벽 3시 안팎에 눈을 떠야 했다.
티오프 타임보다 더 민감한 게 조 편성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 출신인 전직 프로선수는 “골프는 멘털 스포츠다. 누구와 함께 라운드를 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7월 디 오픈에서 우승한 브라이언 하먼(미국)은 ‘느림보 골퍼’로 악명이 높다. 왜글(스윙 전 클럽헤드 무게를 느끼고 손목 힘을 풀기 위해 손목을 좌우로 흔드는 동작)을 10번 이상 하고 어드레스(공을 치기 전 준비 자세)부터 임팩트(공을 친 순간)까지 30초 이상이 소요된다. 동료 선수 입장에선 자칫하면 페이스가 흔들릴 수 있어 ‘기피 대상 1순위’로 꼽힌다. KLPGA 투어의 정상급 A 선수 역시 동료들로부터 눈총을 받기 일쑤다. 티샷 때 시간이 유독 오래 걸리는 데다, 굉장히 짧은 거리 퍼트도 반드시 마크를 하고 치는 등 플레이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대회에서 조 편성과 출발시간은 어떻게 결정될까.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3라운드 이후 본선과 달리 예선(1·2라운드)은 같은 조에서 이틀 연속 동반 라운드를 한다. 큰 틀에서 보면 예선 출발시간은 오전과 오후로, 출발장소는 1번 홀과 10번 홀로 나뉘고 1·2라운드에서 출발 조를 서로 맞바꾸게 된다. 1라운드 오전 1번 홀 출발 조는 2라운드 때 오후 10번 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그린 컨디션이나 기상 조건 등을 고려해 최대한 공정하게 조를 짜고 출발시간을 배정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흥행을 고려해야 하는 프로대회인 만큼 일정 범위에서 ‘탄력적인 조정’은 가능하다.
국내 남녀 프로대회는 투어별, 대회별 담당 위원회가 예선 라운드 조 편성을 한다. ‘3인 1조’를 기본으로 하고 크게 3개 그룹으로 나눈다. 관계자들은 이를 ‘방송조’ ‘스토리텔링조’ ‘랜덤조’라고 부른다. 메인 그룹은 TV 생중계가 되는 시간대(대개 오전 11시~오후 5시)에 플레이하는 방송조다.
특히 ‘챔피언조’가 핵심인데 KLPGA 투어의 경우 디펜딩 챔피언은 직전 대회 우승자, 상금 랭킹 상위 순위자 또는 세계랭킹 상위 순위자와 같은 조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 이 조를 중심으로 조 편성이 시작된다.
2라운드부터는 ‘크로스 후 상하 편성’ 원칙
3라운드 대회냐, 4라운드 대회냐에 따라 챔피언조의 첫날 배치도 달라진다. 3라운드 대회의 경우 챔피언조는 첫날은 오전 프라임 타임(오전 8시 30분 안팎)에, 이튿날은 오후 프라임 타임(낮 12시 안팎)에 배치되지만 4라운드 대회는 첫날 오후, 이튿날 오전 프라임 타임에 티오프를 한다.방송조에는 해당 시즌 우승자, 대회 주최사 초청 선수, 상금 랭킹 앞 순위자 등이 골고루 포함된다. 방송조보다 주목도가 조금 떨어지는 선수들을 모은 그룹이 스토리텔링조다. 예를 들어 올해 KLPGA 투어에서 신인왕을 다투는 황유민, 김민별, 방신실 등 ‘루키 빅3’를 묶거나 장타를 치는 선수들만 같은 조에 넣는 식이다.
방송조는 대개 10개 조(30명) 이내로 구성된다. 최근에는 스토리텔링조도 이 범위에서 운영된다. 두 그룹은 티오프 타임 배정에서 좋은 시간대를 받는다. 오전조 후반부, 오후조 전반부를 차지한다. 2라운드 그룹별 출발시간과 출발장소는 1라운드와 동일 그룹끼리 ‘크로스 후 상하 편성’이 원칙이다.
랜덤조는 두 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무작위로 오전조 전반부 또는 오후조 후반부에 배정된다. 불공정 시비를 피하기 위해 특수 프로그램이 활용된다. 선수들은 오후조 후반부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오전조 전반부를 부담스러워한다.
랜덤조 내에서도 형평성을 위해 그룹끼리 ‘크로스 후 상하 편성’이 적용된다. 1라운드 때 새벽 첫 조 1번 홀에서 티샷을 했다면 2라운드에서는 10번 홀에서 늦은 오후조 중 가장 앞서 티오프를 하는 것이다.
탄력적 구성이 가능한 1·2라운드와 달리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본선 라운드의 출발시간과 조 편성은 무조건 성적순이다. 성적이 가장 좋은 조(최종 라운드의 경우 챔피언조)가 1번 홀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한다. 반대로 성적이 가장 좋지 않은 선수들이 같은 시간에 10번 홀에서 시작한다.
만약 단독 1위가 있고, 공동 2위가 3명이라면 공동 2위 3명 중 1명은 챔피언조에서 빠져야 한다. 이 경우 연장 승부 없이 최종 순위를 가릴 때 활용하는 ‘카운트 백’ 방식이 적용된다. 먼저 후반 9개 홀 성적을 비교하고, 이것도 같으면 후반 6개 홀과 후반 3개 홀을 성적순으로 순서를 매긴다. 이마저도 모두 일치한다면 마지막 홀부터 1번 홀까지 역산으로 홀별 타수를 따진다. 공동 2위 3명 중 카운트 백에 따라 성적이 가장 좋은 사람이 단독 1위에 이어 챔피언조에서 두 번째로 티샷을 하고, 성적이 가장 나쁜 사람이 챔피언조에 앞서 출발하는 조에서 첫 티샷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