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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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김응룡의 의리

  • 장환수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zangpabo@donga.com

    입력2007-03-06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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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리즈 최종전이 열린 지난달 29일. 잠실구장에서 해태 성기영스카우트를 만났다. “으으으 응룡이가 해해해 해태를 떠나지는 않을 거야.”

    87년 롯데 감독을 지낸 성기영씨는 프로야구계에 몇 남지 않은 해태 김응룡감독의 선배.

    성기영씨는 김감독이 삼성으로 가지 않을 첫번째 이유로 ‘의리’를 꼽았다. 같은 날 삼성 감독 후보로 함께 물망에 오른 강병철전한화감독도 “김감독은 해태에 남을 것이다”고 공언했다.

    해태구단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걸쭉한 입심으로 유명한 윤기두홍보과장은 자신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우리가 알기로는 절대 안간다. 언론에서 왜들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후 예상했던 대로 각 스포츠전문지에는 김감독의 삼성행을 기정사실화하는 기사가 앞다퉈 실렸다. 왜 이렇게 혼선이 빚어졌을까.



    해답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복잡하다. 시즌 중 김감독을 따로 불러 재계약을 약속했던 박건배구단주는 분명 그의 잔류를 원했다. 그러나 해태 고위층의 누군가가 김감독의 삼성행을 오히려 부추겼다는 설이 나온 것이다.

    김감독과 박구단주의 ‘야구 우정’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구단주는 야구장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매일 해태의 스코어를 챙기면서 어느 새 김감독의 열성 팬이 돼버렸다. 카리스마가 트레이드 마크인 김감독도 박구단주 앞에선 얌전한 코끼리로 바뀐다.

    그러나 17년간 해태 유니폼만 고집하며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김감독은 이제 구단 사장도 함부로 못할 ‘거물’로 성장했다. 이에 주위에선 구단의 누군가가 김감독의 삼성행에 무게를 실어 언론에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 물론 김감독 본인도 삼성이 제시한 ‘팔자를 고칠 만한 거액’에 고뇌를 안했을 리 만무하다.

    85년 김영덕감독 재임 시절 전후기 통합우승을 한 것을 빼곤 한국시리즈에서 여섯번이나 고배를 마셨던 삼성으로선 새 밀레니엄 첫해인 2000년 시즌 우승을 위해 10억원대의 거액을 배팅했다는 후문이다.

    김감독은 4일 해태와의 3년 재계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무는 그대로 있으려는데 바람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며 그동안의 마음앓이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뼈가 있다는 분석이다. 즉 바람은 외풍(삼성)도 있었지만 내풍(해태)이 심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분석도 있다. 어쩌면 김감독은 삼성의 제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어차피 박구단주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속마음을 굳힌 바에야 해마다 시즌만 끝나면 들어오는 타구단의 ‘러브콜’에 귀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다음 재계약 때 유리한 위치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김감독의 ‘코끼리 속내’를 그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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