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2

2020.10.30

5G통신의 성패, 속도 체감에 달려 있다 [궤도 밖의 과학-32]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0-10-12 14: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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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G는 LTE보다 통신 속도가 20배 빠르다. [GettyImage]

    5G는 LTE보다 통신 속도가 20배 빠르다. [GettyImage]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익숙한 배경음과 함께 점프하는, 콧수염의 배 나온 남자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매년 찾아오는 핼러윈 행사에서도 주력 코스프레 의상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게임 속 캐릭터 슈퍼마리오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분이 굳이 모자를 쓰고 계신 이유가 궁금하다. 단순히 개성 있는 상징을 위해서라면 다른 요소로 차별화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마리오가 모자를 쓰게 된 원인은 당시 게임기가 갖고 있던 하드웨어적인 제약이 가장 컸다. 당시 슈퍼마리오의 개발자였던 미야모토 시게루는 어떻게 하면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까에 대한 고민보다, 그나마 사람처럼 보일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주인공에게 배정된 픽셀의 최대 크기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의 점묘화로부터 개념이 만들어진 픽셀은 쉽게 말해 게임 상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에 비견되는데, 픽셀이라는 점 하나에 겨우 한 가지 색만 칠할 수 있는 것이 한계였다. 그러다 보니 가로와 세로로 각기 16개의 점만 찍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작은 도화지 위에 얼굴을 표현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모자를 씌우면 아주 간단하게 머리카락이 해결되었고, 이마를 그리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 콧수염도 입을 그릴 필요가 없어진다는 장점으로 인해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모자나 콧수염, 단순한 패턴의 복장 등은 모두 과거의 제한된 상황 속에서 한계를 극복하고 가장 합리적인 효율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픽셀의 한계로 수염과 모자를 착용한 게임 속 캐릭터 마리오. [닌텐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1 캡쳐]

    픽셀의 한계로 수염과 모자를 착용한 게임 속 캐릭터 마리오. [닌텐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1 캡쳐]

    요즘이야 컴퓨터나 게임기의 부족한 성능 때문에 머리카락을 감추거나 콧수염을 달 필요는 없다. 하드웨어의 처리속도가 이제 꽤 많은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해진 요소가 있다. 바로 통신 속도다. 컴퓨터가 느려서 게임이 끊기거나 튕기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최신 게임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여전히 위급한 순간에 버벅거리는 통신망은 경험해본 적 없었던 격렬한 분노를 선사한다. 심지어 이제는 클라우드 게임이라는 새로운 방식도 등장했다. 인터넷이 연결된 상황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게임기가 필요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게임화면을 온라인으로 전송한 채로, 게이머가 조작하는 신호에 따라 반응하는 영상과 소리를 그대로 다시 전해주면 된다. 

    물론 게임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작하는 사람과 캐릭터의 반응 속도인 만큼, 조금이라도 지연된다면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전자기파 기반 통신의 물리적 한계로 인해 여럿이 접속하는 단체 게임이 아니어도 심각하게 느려질 수 있다. 여전히 슈퍼마리오를 즐기고 있다고 가정할 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복잡한 표정으로 댄스를 추는 마리오는 생각처럼 부드럽게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과연 마리오는 언제쯤 모자를 벗을 수 있을까?

    낯선 핵심 기술의 원리

    누군가의 모자를 벗기는 대신 5세대(5G)의 시대가 왔다. 무선인터넷이지만 유선이 전혀 부럽지 않은 속도를 인류는 들고 있던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만으로 충분히 느끼고 있다. 숫자 뒤에 세대를 의미하는 G를 붙이는 방식은 복잡한 이동통신 기술을 간단하게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아직 사용되고 있는 LTE(롱텀에볼루션)에 비해 개선된 5G는 속도가 20배나 더 빠르다. 



    보통 통신 속도의 위대함을 보여줄 때 주로 사용하는 용어는 처리율과 지연시간이다. 처리율은 일정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양의 데이터가 전송되는지를 말하는데, 20배 빨라진 속도가 이걸 의미한다. 예전엔 영화 한 편을 내려 받는 시간이 20초가 걸렸다면, 이제 1초면 끝난다. 어쩌면 처리율보다 중요한 건 지연시간이다. 대용량 파일을 좀 더 빨리 받는 건 양방향 소통이 핵심인 통신에서는 그리 큰 혜택으로 느껴지지 못한다. 주고받는 신호와 응답이 늦어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연애하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끝없는 선물 공세는 지나고 나면 익숙해지고 무뎌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얼마나 빠르게 상대방이 답장을 하거나 전화를 놓치지 않는지가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게 된다. 나에게 관심을 충분히 쏟는지는 사랑을 다질 때뿐만 아니라, 원활한 통신 속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도 특별한 증거가 된다. 마음이 떠나 답이 늦어지는 시간을 원인과 결과 간 지연시간이라 부르며, 5G는 이를 LTE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5G 성능을 높이기 위해 설치된 기지국. [삼성전자]

    5G 성능을 높이기 위해 설치된 기지국. [삼성전자]

    5G에는 처리율과 지연시간을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개별기술이 적용됐다. 그냥 넘어가기 아쉬우니 중요한 핵심 기술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 우선 ‘밀리미터파’라는 기존보다 높은 주파수를 쓴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주파수는 진동수와 비슷한 말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일정한 시간 동안 몇 번 반복됐는지를 의미한다. 주파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주기적인 현상을 많이 담을 수 있기에 더 많은 정보를 보낼 수 있지만, 투과력이 약해져 멀리까지 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좁은 간격으로 기지국을 촘촘하게 설치하기 위해 대형 안테나 대신 쉽게 부착할 수 있는 작은 기지국을 만들었다. 기지국은 크기는 작지만, 복잡한 다수의 양방향 통신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안테나를 갖고 있다. 많은 정보가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고 특정 방향을 향해 정확하게 갈 수 있도록 전송하는 빔 포밍이라는 기술도 쓴다.

    세계 최초보다 중요한 것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12월, 무려 세계 최초로 5G 무선이동통신이 상용화됐지만 “그다지 극적인 속도 향상을 체감하지 못하겠다”거나 “오히려 자주 끊긴다”는 얘기가 들린다. 심지어 기존에 사용 중인 통신망의 속도를 떨어뜨려 5G 속도를 상대적으로 올린다는 뜬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아쉽게도 초기에 일어나는 일부 변화는 기존 인프라에 편승하기에 이론적인 속도 증가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시기상조로 보기는 어렵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으며, 안정성을 극복한다면 꽤 많은 선택지가 등장할 수 있다. 더 나은 통신 속도가 보여줄 미래는 단순히 마리오가 모자를 벗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게임 속 마리오와 현실의 옆 친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소리로 치면 돌멩이로 두드리는 것처럼 단순하게 울리던 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는 지인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수준까지 정밀해지는 것이다. 완전한 통신의 자유를 통해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모두 풀리고 나면, 지금껏 접해보지 못했던 가상현실이나 홀로그램, 그 외의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개념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존재하는 형체 그대로의 모습으로 온라인에서 서로를 만나고, 다양한 센서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생활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대면과 비대면의 정의가 초고속 통신을 통해 새롭게 쓰일 것이다. 

    비로소 5G가 시작되고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은 그간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며 이미 6G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수천 개의 사물인터넷 기기가 동시에 연결되어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만물인터넷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5G에 이어 6G까지 빠르게 도입하기를 원한다고 밝혔고, 우리나라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어느 나라도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결코 놓치고 싶어 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앞서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많은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장점을 기반으로 한 공감대 형성이 아닐까. 무분별하게 퍼지는 근거 없는 소문이야말로 변화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과학소통과 문화적 확산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는 새로운 통신의 세계로 떠나볼 때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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