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2015.06.22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 전성영 사진작가 alisoo21@naver.com

    입력2015-06-22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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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개운포는 울산 울주군에 있던 포구(浦口)로 신라시대 국제 무역항이었다.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이 개운포에서 놀다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짙은 구름과 안개가 껴 앞을 볼 수 없었다. 이에 일관(日官 : 삼국시대 천문관측과 점성을 담당한 관원)이 “이것은 동해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행해 용의 노여움을 푸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왕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하니 곧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해가 모습을 드러내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됐다. 동해 용은 크게 기뻐하며 바다에서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춤을 췄다. 그중 한 명인 처용이 왕을 따라 당시 서울인 경주로 가서 아내를 얻고 급간(級干)이란 벼슬을 얻어 정사를 도왔다. 이때 처용이 나온 바위에 ‘처용암’이란 이름이 붙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처용가’는 자신의 아내를 탐한 역신을 처용이 굴복시키는 내용이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이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무릎을 꿇고 앞으로는 처용의 형상을 그린 것만 봐도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물러갔다는 처용설화가 전한다. 처용암의 밤풍경을 바라보면 신비로운 처용설화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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