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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주말여행 가이드’ ⑦ | 분주령 야생화 트레킹

하늘나리 반기고 초롱꽃은 눈인사

  • 양영훈 / 여행작가 www.travelmaker.co.kr

하늘나리 반기고 초롱꽃은 눈인사

하늘나리 반기고 초롱꽃은 눈인사

각종 활엽수와 다래덩굴로 울창한 금대봉 숲길. 숲에는 하늘말나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큰 사진).붉은색과 우아한 자태가 인상적인 하늘나리.

갑자기 가슴이 탁 트이고 머릿속까지 상쾌해지는 듯하다. ‘분주령 야생화 트레킹 코스’의 기점인 싸릿재 정상(1268m)에서 받은 첫 느낌은 하늘을 날 듯한 상쾌함이었다. 서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숲, 꼬리를 물고 산등성이를 타고 넘는 비구름, 온몸을 휘감는 서늘한 기운이 높고도 외진 백두대간의 한 고갯마루에 올랐음을 실감케 했다.

싸릿재는 매봉산(1303m)에서 금대봉(대성산, 1418m)과 은대봉(1442m)을 거쳐 함백산(1572m), 태백산(1567m)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허리를 가로지른다. 38번 국도의 정선군 고한읍에서 태백시까지의 구간도 바로 이 고개를 넘어간다. 하지만 두문동재터널이 완공된 뒤로 싸릿재 정상을 넘어가는 찻길은 퍽 한적해졌다.

싸릿재 고갯마루에서 백두대간의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은대봉, 함백산을 거쳐 만항재(1340m)에 이른다. 반면 이번 트레킹 코스에 포함된 금대봉과 분주령은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싸릿재에서 금대봉까지는 비포장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늘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서 차량으로 진입할 수는 없다. 환경부가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의 126만 평을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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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초입부터 제철을 만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노란 기린초(돌나물과)와 미나리아재비(미나리아재빗과), 황백색의 초롱꽃(초롱꽃과), 보랏빛의 배초향(방앗잎, 꿀풀과)….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시야가 훤히 트인 초원이 펼쳐진다. 무성한 풀밭에는 범꼬리(마디풀과)가 군락을 이루고, 빨간 하늘나리(백합과)가 듬성듬성 피어 있다. 하늘나리는 아무리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첫눈에 반할 정도로 빛깔이 화려하고 자태가 우아하다. 여기저기서 연신 “우와∼, 우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은 어여쁜 하늘나리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법석을 떨고, 몇몇 아이들의 손에는 몇 송이의 하늘나리가 쥐어져 있다.

하늘나리를 비롯해 우리 토종 나리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아무리 화려한 서양 백합도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에 널리 퍼진 서양 백합 가운데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섬말나리, 솔나리, 하늘나리 등의 유전자를 개량한 것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노란 섬말나리, 분홍 솔나리, 빨간 하늘나리는 그 어느 나라의 백합과 식물보다도 꽃 빛깔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늘나리 꽃밭을 뒤로 하고 나직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백두대간의 웅장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대봉도 손에 닿을 듯이 가깝다. 길 주변의 양지바른 풀숲에서는 산꿩의다리(미나리아재빗과)와 꽃쥐손이(쥐손이풀과)도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러고 보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은 사람들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닌가 보다. 움직일 수 없는 꽃과 나무들조차도 제 종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늘나리 반기고 초롱꽃은 눈인사

한강의 발원지인 고목나무샘. 공식적인 한강 발원지는 검룡소지만, 이 샘이 훨씬 상류에 있다(맨 위). 노란 태백기린초 위에 앉아 꿀을 빨아먹고 있는 은점표범나비(원 안). 인진쑥으로 뒤덮인 분주령에 당도한 일행.

싸릿재를 출발한 지 30여분 만에 금대봉 아래에 당도했다. 금대봉 기슭에는 우리나라 양대 강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다. 금대봉과 매봉산을 잇는 백두대간 능선의 북쪽에 위치한 고목나무샘은 한강의 발원지고, 능선 남쪽의 너덜샘은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줄곧 걸어온 길은 금대봉 아래 두문동재에서 끝나고, 여기서부터는 산비탈의 경사면을 가로지르는 비좁은 숲길이 시작된다. 온갖 활엽수와 다래, 머루 등의 덩굴식물이 빼곡한 숲은 하늘 한 뼘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하다. 장맛비가 온 뒤끝이라 길이 빙판처럼 미끄럽다. 숲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목나무샘을 만났다. 푯말만 없다면 무심코 지나쳐버릴 만큼 작은 샘이다. 그래도 한강의 물길이 처음 시작되는 곳답게 물이 차갑고 맛이 좋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활엽수림 사이에 간간이 낙엽송 숲이 형성돼 있다.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곳에 있는 걸로 봐서, 예전에 산골 주민들이 화전(火田)을 부쳐 먹던 곳으로 짐작된다. 강력한 화전금지정책이 실시된 지 30여년이 넘었으니, 이곳 낙엽송 숲의 나이도 최소한 그쯤은 되었을 게다. 낙엽송이 숲을 이룬 곳은 땅이 척박한 편이어서 다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부엽토를 자양분 삼아 산제비란과 하늘말나리가 곱게 피었다. 여느 산중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야생화다.

긴 숲 터널을 벗어나 다시 능선 길에 들어서자 인진쑥으로 뒤덮인 초원지대가 계속된다. 그윽한 쑥 향기가 진동한다. 쑥 향기 짙은 풀밭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듯하다. 그런데 몇몇 아줌마 아저씨들은 인진쑥을 뜯느라 정신이 없고, 산딸기와 오디(산뽕나무의 열매)를 따 먹느라 한동안 길을 막고 서 있다. 가이드 여행에서 보게 되는 꼴불견 중 하나다.

인진쑥 밭은 분주령(1080m)까지 계속된다. 말잔등처럼 움푹한 고갯마루가 온통 쑥밭이다. 여기서 검룡소 입구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비좁은 숲길만 걸어오다가 넓은 내리막길에 들어서니 발걸음이 약간 무거워진다. 잡초가 무성한데도 찻길의 흔적은 뚜렷하다.

검룡소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기 이전인 10년 전쯤, 검룡소를 찾아가다가 잘못 들어선 적이 있었던 그 길이 틀림없는 듯하다. 그때는 길이 또렷하고 노면상태도 좋아서 위쪽(분주령 쪽)으로 한참을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길 곳곳이 물길로 바뀌었다.

길과 나란히 이어지던 물길이 갑자기 넓어진다. 검룡소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물길 하나를 건너고 평탄한 낙엽송 숲길을 지나 15분 가량 걸어가면 ‘공식적인’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에 이른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검룡소는 그 옛날의 신비감을 물씬 풍기던 샘이 아니었다. 가는 길이 훨씬 넓어진 데다, 샘 주변이 휴일을 맞아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또 하나의 비경이 어느새 그렇고 그런 관광명소로 전락한 셈이다. 이런 경우를 맞닥뜨리게 되면 그 옛날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주간동아 396호 (p90~91)

양영훈 / 여행작가 www.travelma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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