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2

2008.07.01

끝없이 노골적인 명품 장려 ‘눈살’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6-23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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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노골적인 명품 장려 ‘눈살’

    ‘섹스 앤 더 시티’(위) ‘우아한 세계’

    뉴욕 전문직 여성들의 얘기를 그린 ‘섹스 앤 더 시티’. 이 영화가 여성들에게서 압도적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전문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에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만이 아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또 다른 주인공은 샤넬, 구찌, 프라다 같은 명품이다.

    명품에 대한 선망과 열광은 한국에서 특히 뚜렷한 사회현상이다. 이걸 나무랄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명품의 소유와 소비를 통해 부자에 대한 꿈을 꿔보는 걸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풍속의 역사’에서 “계급이 없어진 시대에 옷이나 치장이 새로운 계급의 표상이 돼가고 있다”고 했고, 경제학자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사치는 부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검색표”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어하듯, 부자들의 소비를 통한 과시행동을 따라하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나 명품 열기에도 적정선과 금도는 있어야 할 듯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명품 열기 문제는 도대체 끝 간 데 없이 노골화되고 장려된다는 데 있다. 부자들만을 위한 잡지, 부자들만을 위한 식당 등 부자를 위한 서비스와 재화는 이미 넘쳐나 있다. 게다가 지하철에 붙어 있는 ‘전 국민의 1%만 먹는 쌀’ 같은 광고까지 보게 된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 ‘국민의 3%에게만 권하는 자동차’ 광고도 있으니 대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와 쌀은 경우가 다르다. 누구든 먹지 않을 수 없는 양식을, 게다가 천하의 근본을 생산하는 농민들까지 이른바 귀족 마케팅의 강박으로 내몬다면 그건 적정선을 넘어선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는 20대 80의 사회를 넘어서 5대 95의 사회가 돼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혹여 우리는 95%의 국민을 국외자로 만들고, 5%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하면 패배자라는 걸 되새기게 하는 천박한 사회를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돈과 경제적 성공 외에는 어떤 것에도 둔감한 집단불감증 사회가 돼가는 건 아닌가.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분한 조폭의 중간 보스가 꿈꾼 우아한 세계에 대한 백일몽은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의 비루한 삶의 은유였다. 초라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그렇기에 명품은 아니지만 진짜 고귀한 삶이다. 1%, 3%의 귀족에 못 끼더라도 우아한 삶이다. 부디 우리 사회가 다수를 소수로 내몰지 말기를!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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