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9

2012.05.29

인문학 선도 대안대학 출판 이끌어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5-29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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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선도 대안대학 출판 이끌어
    베스트셀러를 꾸준히 내놓는 한 재야학자는 최근 사무실을 옮기면서 강좌를 개설했다. 강좌 12회를 끝낸 후에는 강의 내용을 책으로 묶을 계획이다. 출판사가 주축이 된 강의 개설도 늘고 있다. 4월 25일 1주년을 맞이한 ‘푸른역사 아카데미’는 저자들의 사랑방이 됐다. 수유너머와 공생하면서 바람직한 출판의 전범을 보여준 그린비출판사는 동영상 강의가 가능하도록 홈페이지의 네트워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학습과 출판의 연계를 강화한 한 출판사는 대안교과서, 교재, 콘텐츠, 오프라인 강의를 결합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강의실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다. 이러한 ‘대학 밖의 대학’(이하 대안대학)에서 학자(저자군)와 출판사가 연대해 출판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갈 태세다.

    10여 년 전 출범한 수유너머는 수유너머N, 수유너머문, 수유너머R, 인문팩토리 길, 남산강학원 등으로 세분화해가는 중이다. 350여 개의 인문학 동영상 강의로 정평이 난 아트앤스터디를 비롯해 철학아카데미, 대안연구공동체(CAS), 다중지성의 정원, 문지문화원 사이 등이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집단지성의 실험실 카이로스, 생활기획공간 통, 자유인문캠프, 돌곶이포럼, 인문연대 금시정, 연구모임 비상, 기술미학연구회, 세미나 네크워크 새움, 상상마당 아카데미 같은 인문연구공동체도 개설돼 가히 백가쟁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인문학 생산 및 소비에서 대학은 대안대학과 비교해 경쟁우위를 상실했다. 오히려 경희대의 후마니타스처럼 대학이 대안대학 모델을 수용해야 할 정도다. 대안대학을 이끄는 사람은 대학에 융합하지 못한 젊은 연구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비판적 안목이 신자유주의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학에 일침을 가하는 경우가 많아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대중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대학은 점점 빠른 속도로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학문과 진리탐구라는 대학의 기능은 진작 사라졌다고 봐야 옳다. 정보기술(IT) 혁명이 진행되면서 첨단기술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식을 세분화, 다양화했을 뿐 아니라 지식 간 융합도 이뤄냈다. 이렇게 새로운 유형의 지식이 끊임없이 탄생했지만 대학은 이런 변화에 조응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 이윤을 추구해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러한 몸부림이 거셀수록 대학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대학이 가진 인재양성 기능도 한계에 직면했다. 고도 성장기에는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실업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졸업생 중 약 5%가 ‘양질’의 일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들이 직장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조차 갈수록 짧아지면서 대학은 이제 말기암 상태에 접어들었다.



    2006년 대학 종사자들이 인문학 위기를 선언한 이후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이 대학에 상당한 액수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그렇게 자금지원을 받아 생산한 지식은 대학에 목숨 줄을 매단 학자들의 ‘수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하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필요한 교양 수준으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대학의 위기는 대학으로 가는 정거장으로 전락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교육 시스템마저 붕괴시켰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교육 불가능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인문학 선도 대안대학 출판 이끌어
    대학의 몰락은 좋은 기획 아이템을 내놓아도 써줄 만한 역량 있는 필자를 찾지 못했던 출판사로 하여금 자구책을 마련하게 만들었다. 대안대학이 출판과 긴밀한 접촉을 꾀하는 일은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기에 앞으로 그 접촉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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