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4

2010.05.04

인간은 그저 자연의 심부름을 할 뿐

‘사과가 가르쳐준 것 ’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10-04-26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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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그저 자연의 심부름을 할 뿐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김영사 펴냄/ 216쪽/ 1만 원

    썩지 않는 사과에서 인생의 기적을 이룬 사과의 명인, 일본 대기업 총수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인 기무라 아키노리의 에세이가 나왔다. 그의 책 ‘사과가 가르쳐준 것’에는 스물아홉 나이에 1년 반의 샐러리맨 이력으로 하기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 말했던 무농약 사과 재배에 도전, 사과 하나로 전 세계를 누비는 농부로 성장하기까지 정면승부로 점철된 인생 역정과 그 속에서 건져낸 100년을 내다보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밑바닥을 기는 가난 속에서도 즐거운 순간이 있었다. 예기치 못한 파란만장한 인생이 됐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기본과 원칙을 지켜라,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라,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으로 대화하라, 오래 지켜보고 관찰하라, 네가 믿는 길을 가라” 등 책에는 우리 귀에 익숙한 메시지가 인생의 고비마다 어떻게 평범했던 한 인간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었는지 선명히 드러나 있다. 무농약, 무비료 사과 재배에 도전한 이후 지금까지 농업에 관한 그의 흔들림 없는 철학과 자연과 인간을 향한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이 감동을 준다.

    기무라 씨는 다이홀탄과 석회보르도액 같은 독한 농약을 뿌리던 시절, 초알칼리성 화상을 입어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겪었다. 또 농약을 뿌린 아내는 한 달 이상 외출을 하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농약을 쓰는 기존의 농사 방식에 회의를 품게 됐다. 많은 책을 탐독했으나 무농약, 무비료 사과 재배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에 자신이 직접 무농약, 무비료 사과 재배를 하기로 결심, 농약과 비료의 살포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 매년 13회씩 뿌리던 농약을 절반인 6회, 3회로 줄여나갔다. 예상외로 사과 품질과 수확량이 그대로여서 무농약 재배에는 장점만 있다고 생각했고, 다음 해에 1회로 줄였는데 결과가 놀랍게도 좋았다. 무농약, 무비료 사과 재배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그 다음 해에 농약과 비료를 과감히 쓰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과나무가 반점 낙엽병에 걸려 8월 말 잎의 95%가 떨어졌고, 9월에 다시 사과꽃이 피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부터 기무라 씨의 10년 고난이 시작됐다. 해마다 잎이 떨어지고 수확이 없자, 무농약을 시도한 2~3년 후부터 이웃의 발길이 뚝 끊겼다. “가난해도 좋으니 길가의 돌같이 살라”고 격려하며 이른 새벽 이웃의 눈을 피해 쌀과 된장을 놓고 가던 어머니마저 늘어가는 빚을 감당 못해 외면했다. 돈벌이를 위해 그는 벌목작업, 신칸센 레일 보수 등을 하고 일용직 노동자, 파칭코 가게 점원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지만 토지가 압류되고 재산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위기가 계속됐다. 그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사죄하자고 결심, 죽기 위해 이와키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성공의 열쇠가 된 섬광 같은 영감을 얻었다.

    기무라 씨가 이야기하는 자연재배의 기본이자 완성은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10여 년의 시련을 통해 얻은 자연과 인간에 관한 가장 큰 깨달음은 ‘벼에 낟알을 맺게 하는 것은 벼이고,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게 하는 것은 사과나무다. 인간은 그저 자연의 심부름을 할 뿐’이라는 것. 그는 인간이 대지와 자연에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일절 말이 없는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오랜 관찰을 통해 자연의 변화를 지켜볼 줄 아는 인내와 벼, 채소, 사과 등 자연의 생산물을 내 몸과 마음처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연재배의 방식은 사람 만들기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기무라 씨는 자신의 자연재배를 농법이라고 하지 않는다. 농법은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을 이야기하지만 농업은 추상이 아니라 경제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없으면 그것은 농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법보다는 재배가 옳은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이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 자연재배는 농부에게 ‘나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긍지를 갖게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좋게 한다고 해서 먹을거리는 곧 식(食)이라고 한다. 먹을거리는 사람의 마음도 바꿀 수 있다. 그가 바보, 멍청이 소리를 들어가며 썩지 않는 사과 재배의 외길을 달려온 이유다. 그것을 위해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이러한 재배법이 보편화되도록 노력한 것이다. 자연재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수많은 젊은이에게 그는 “자연재배법이 가슴 설레게 하고, 꿈꾸게 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으려 하는 젊은이들의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상식을 뒤엎는 도전하는 삶, 한 가지 일에 매달려 느리지만 바르고 크게 성공하는 삶,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해법에 관해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는 인간 정신의 지침서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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