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9

2008.01.15

편견 바이러스 치료 예술은 시대의 백신

  •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입력2008-01-09 1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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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바이러스 치료 예술은 시대의 백신

    양철 병 건조대를 5단으로 연결해 서명만 한 후 출품한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Bottle Rack(1914)’.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나는 전설이다’에서 인류는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한다. 영화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네빌은 변종인간(좀비)들과 싸우면서 면역체를 가진 자신의 피를 이용해 백신을 만들고자 애쓴다. 좀 비약적인 설정이지만, 인류는 언제나 바이러스로부터 위협받아왔다. 얼마 전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온 세계가 긴장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양식을 모색하는 것도 편견이라는 정신 바이러스에 대한 일종의 백신을 개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시대나 인간은 정신적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이것은 시대마다 변종되지만, 이것에 감염되면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시키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좀비들처럼 폭력을 행사한다. 예술가는 이에 대한 면역체를 갖고 백신을 개발하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예술가들은 이미 만들어진 백신을 이용해 치료하고 판매하기만 한다. 하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현재로선 대책이 없는 신종 바이러스를 상대한다.

    마르셀 뒤샹이 상업용 변기를 가공 없이 전시장에 작품이라고 갖다 놓은 것은 ‘미술은 그리는 것’이라는 시대적 편견에 대한 백신이었다. 그는 그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하는 행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가 내놓은 ‘오브제’라는 백신 덕분에 오늘날 현대작가들은 고답적인 그리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백남준이 내놓은 비디오라는 백신 덕분에 다양한 영상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다. 따라서 어떤 작가를 평가할 때는 우선 백신의 개발자인지 판매자인지를 구분하고, 그것이 얼마나 유용할지를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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