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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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보험이 필요한 이유부주의로 인한 불 손해배상 청구 불가

  • 윤문수/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

    입력2005-02-24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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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보험이 필요한 이유부주의로 인한 불 손해배상 청구 불가

    화재로 빚어진 피해를 법적 다툼으로 보상 받기란 매우 어렵다.

    ‘화재(火災)’를 막기 위해서는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화재에 의한 법률적 문제란 대개 자신의 부주의로 화재가 났을 때가 아닌, 타인의 실수로 인해 예기치 않은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을 때 발생한다. 변호사를 찾아오는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질문은 “내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정말 없느냐”는 것. 변호사로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이 경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 비록 상대방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라 할지라도 피해를 입은 사람은 실화자(失火者ㆍ화재를 일으킨 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돼 있다.

    왜 이렇듯 상식에 반하는 법리가 존재할까. 상대방의 부주의로 그의 관리 영역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명백한 책임관계가 성립하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화재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의해서보다 경과실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경과실로 화재를 일으킨 사람은 ‘실화 책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실화 책임에 관한 법률’이란 경과실로 화재를 일으킨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하는 일반 불법행위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법률이다).

    일반적인 불법행위의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사소한 부주의가 있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실화 책임에 관한 법률’에서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일 경우에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책임을 제한하고 있다. 실화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주변으로 번져 예상치 못하게 피해가 확대되는 화재의 속성을 반영한 법의 배려라 할 수 있다. 결국 실화자의 책임이 과다하게 책정되는 점을 고려하여 그 책임을 제한함으로써 실화자를 지나친 부담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고의로 화재를 일으키지 않은 만큼 그 책임을 공동분담으로 돌린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실화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은 전무한가. 실화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실화자의 ‘중대한 과실’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해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중대한 과실로 인정될 수 있는가.



    화재 사건의 경우는 원인을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웃 목재소에서 벽에 세워놓은 목재 때문에 불이 옆 건물로 번졌다면, 그것은 중대한 과실일까 아닐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목재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인근 건물 벽에 세워놓은 목재를 통해서 그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화재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중대한 과실이 없다”고 봤다. 또한 “목재소 운영자가 화재가 발생할 경우의 연소 위험성에 대비해, 건물 외벽에 세워둔 목재를 치우지 않았다고 해서 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 내리기도 했다.

    중대한 과실의 유무는 화재 발생의 원인, 실화자의 화재예방 행위, 화재 발생 지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나 보통 사람을 기준으로 단순한 부주의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는 인정되지 않고, 고의로 보일 만큼 현저한 주의 의무를 위반해 화재가 발생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건물 등의 공작물 자체의 설치ㆍ보존상 하자에 의해 불이 났을 경우엔 ‘실화 책임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고, 경과실에 의한 화재라 하더라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경사로에 세워놓은 석유배달 차에서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해 보조잠금장치가 풀리면서 차가 움직여 인근 건물을 들이받고 불이 옮겨붙은 경우, 대법원은 “그 건물 화재는 공작물인 차량의 하자에 의해 직접 발생한 것이다”고 결론지었다.

    건물이나 주택이 인접하고 있거나 재래시장, 공장 밀집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특히 화재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거나 실화자의 경과실로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 피해자는 실화자에게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 물론 피해자가 화재보험에 들었다면 상당 부분 손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현실적으로 주택 등에 대한 화재보험 가입률이 매우 낮다.

    결국 이런 이유들로 인해 화재보험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화재보험이 필요한 이유부주의로 인한 불 손해배상 청구 불가

    윤문수/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

    중대한 과실이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통상인에게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ㆍ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이를 간과함과 같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가 있을 때를 ‘중대한 과실’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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