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2009.11.24

내 손으로 김칫광 짓기 선택과 집중의 즐거움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11-18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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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으로 김칫광 짓기 선택과 집중의 즐거움

    <B>1</B> 아이들과 함께 감을 딴다. <B>2</B> 필요한 도구를 잘 챙겨야 일이 쉽고 재미있다. <B>3</B> 감을 깎아 매단다. 일을 해봐야 일머리도 생긴다.

    감을 깎아 매다는 걸로 가을걷이는 대충 마무리했다. 한숨 돌리면서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따져봤다. 하루는 24시간. 계절에 따라 다르고 날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하루에 쓰는 시간을 대략 평균해보니 아래와 같다(숫자 단위는 시간).

    잠 : 8 / 농사 : 4 / 식사 : 2 / 요리, 청소, 빨래 : 1.5 / 집 돌보기, 땔감 하기 : 1 / 글쓰기, 사진 찍기 : 1 / 신문과 잡지 보기, 책 읽기, 인터넷, 기타 문화생활 : 1 / 이웃과 어울리기, 손님맞이, 강의, 여행 : 1 / 자녀교육 : 1 / 낮잠, 휴식 : 1 / 자기계발 : 1 / 식구들과 수다 : 1 / 산책, 운동 : 0.5

    잘 먹고, 잘 자는 일부터 자급자족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꽤나 가지가지다. 그러나 이를 조금 달리 해석해보면 아주 단순해진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을 유심히 보면, 하루의 대부분을 자고 먹는 일로 보냄을 알 수 있다. 농사도 자급자족 삶에서는 먹기 위한 게 일차 목표니까 그렇다. 그야말로 잘 자고 잘 먹는 게 일상인 삶이다. 10여 년 전, 첫 농사 지을 때와 견주면 엄청 달라졌다.

    당시는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농사일에 매달렸다. 그럼에도 일은 서툴고, 생산성도 떨어지고, 돈은 멀고, 몸만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올해는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농사일을 하지만 전에 견주면 효율이 더 좋다. 흙이 살아나고, 심고 거둘 때를 알고, 그때마다 필요한 도구나 거름을 미리 챙기면 한결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서 다른 일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이런 깨달음을 한마디로 말하면 ‘일머리’가 아닐까 싶다. 일머리, 참 좋은 우리말이다. 일을 오래 한다고 또 열심히 한다고 잘되는 게 아니다. 일하는 동기가 확실하면서도 일이 진행되는 전 과정을 어느 정도 꿰고 있어야 한다. 농사만이 아니라 요리 같은 집안일도, 집을 짓고 수리하는 일도 다 그렇다.

    자녀교육 같은 역동적인 일은 더 그런 거 같다. 요 며칠 겨울 준비의 하나로 김치 넣을 광을 짓고 있다. 우리는 김치를 땅속에 묻어둔 장독에 담아 겨울을 난다. 이런 독이 모두 4개. 김장독이 있는 곳은 해가 들지 않고 비가 들어가지 않게 해줘야 한다. 그동안은 대충 때우듯이 하고 지내다가 이번에 벽돌로 벽을 쌓고 지붕을 얹기로 했다.

    전체 크기라고 해봐야 폭 1m, 길이 3m, 높이 1m 남짓. 목수라면 하루도 걸리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나는 마냥 늘어지고 있다. 일머리가 부족하니 설계도 엉성하고, 자재 준비도 매끄럽지 않다. 각재(角材)는 길이가 안 맞아 바꿔야 했고, 못도 모자라 이웃집에서 얻어다가 메워야 했다. 허둥대며 망치질하다가 손가락을 조금 다치기도 했다.

    내 손으로 김칫광 짓기 선택과 집중의 즐거움

    <B>4</B> 마을 할아버지가 콩을 거두고자 줄기째 말리고 있다. 보기에는 쉬운 듯해도 막상 해보면 뜻대로 안 된다. <B>5</B> 이웃이 샘물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달리 뭐든 손수 해봐야 제 것이 된다.

    그럼에도 손수 하는 데는 중독에 가까운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목수는 하루 품값만 해도 20만원이 넘는다. 손수 하면 돈을 아끼는 것에도 보탬이 되지만 일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크다. 김치 넣을 작은 광 하나 짓는 데도 그 앞에는 무수한 선택이 있다. 얼마 크기로 지을 것인지, 벽은 무엇으로 쌓을 것인지…. 온통 생각할 거리다.

    내 손으로 김칫광 짓기 선택과 집중의 즐거움

    <B>6</B> 김치 넣을 광을 짓는다. 일머리가 부족하면 몸이 고달프다. <B>7</B> 땅에 묻어둔 김장독에서 총각김치를 꺼낸다. 사소한 일에도 순서가 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순간순간 선택하고, 그 일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 그림이 현실로 드러난다. 어떤 일을 앞두고 머리로 그림을 그릴 때는 빤해 보인다. 그런데 막상 몸으로 이를 이루자 하면 머릿그림이 얼마나 엉성한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다시 현장에 맞게 그림을 수정한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일이 차츰 몸에 밴다. 결국 머리와 몸이 하나가 될 때 제대로 된 일머리가 갖춰진다.

    일 찾아 하는 ‘삶의 CEO’

    일을 해본 사람은 일을 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도 넓어진다. 곡식을 직접 키워보면 마트에 진열된 농산물이 달리 보이고, 작은 집이라도 지어보면 흔한 아파트조차 예사로이 보지 않게 된다. 고구마 한 상자라도 팔아보면 영업사원이나 경영자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다.

    일머리가 늘어날수록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더 생긴다. 어찌 보면 세상천지 널린 게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슨 일을 선택하고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돈이 기준일 수는 없다. 또한 아무 일이나 한다고 일머리가 좋아지지도 않는다. 자신을 소모하고 망가뜨리는 일도 적지 않다. 일을 하되, 순간마다 스스로 주인이 돼야 한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삶의 CEO’라고 할까. 일과 하나 돼 일에 푹 빠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일머리도 좋아지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가 점점 준다고 한다. 안정돼 보이던 일자리도 어느 순간 흔들린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거 같지 않다.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자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일머리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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