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8

2015.03.09

예르비의 박진감 넘치는 지휘로 명성 재건

새 수장 맞은 일본 NHK 심포니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5-03-09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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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르비의 박진감 넘치는 지휘로 명성 재건
    지난달 명절 연휴 직전에 집안일로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며칠 푹 쉬다 오는 것이었는데, 막상 가니 또 클래식 공연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직업병 아닌가 싶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공연장은 시부야의 NHK홀이었다.

    올해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N향)는 우리와도 친숙한 에스토니아 출신 미국 지휘자 파보 예르비를 새 상임지휘자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2월 한 달 동안 예르비의 지휘 아래 3개 프로그램(A, B, C)으로 6회 공연을 소화했다. 새로운 수장의 취임식을 시리즈 공연으로 성대하게 치른 셈이다. 프로그램 A는 요즘 한창 각광받는 미국 여성 첼리스트 앨리사 웨일러스틴이 협연한 엘가 첼로 협주곡과 말러 교향곡 1번, 프로그램 B는 폴란드 피아니스트 피오트르 안데르제프스키가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5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 ‘영웅의 생애’로 구성됐다.

    필자는 2월 14일 오후에 열린 프로그램 C의 2일 차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 일본의 젊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 쇼지가 협연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 연주됐다. 티켓은 이미 매진. 당일 공연장 앞에는 티켓을 구한다는 쪽지를 든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어렵게 구한 자유석 티켓을 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참고로 NHK홀 내부 구조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연주는 아쉽게도 기대에 못 미쳤다. 쇼지는 시벨리우스 악곡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채 다소 힘겹고 늘어지게 연주했으며, 지휘자와 악단도 그에게 맞추느라 짜임새가 헐겁고 실수가 적잖은 앙상블을 들려줬다. 반면 쇼스타코비치에서는 예르비의 강점이 발휘되면서 자못 박진감 넘치는 연주가 전개돼 이들 파트너십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호른 수석을 비롯해 나이가 든 솔로이스트들의 실수가 간간이 발목을 잡았다.



    당일 단원들의 컨디션이 안 좋았던 탓인지, 아니면 최근 연주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가 들리곤 하는 이 악단의 고질적 난점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적어도 그날 들었던 연주는 ‘일본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으로 유명한 N향의 이름값에 걸맞은 수준은 아니었다. 어쩌면 공연장 탓을 할 수도 있다. 소리의 전달력 면에서 세종문화회관보다 낫다 해도 NHK홀의 음향(3층 자유석이라는 자리 탓도 있었겠지만)은 여전히 메마르고 공허했다. 돌이켜보면 과거 이 홀에서 접했던 공연 대부분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나치게 큰 공연장에 둥지를 튼 악단은 기복이 심한 연주를 들려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편 예르비는 지난해를 끝으로 독일 헤센 방송교향악단에서 물러났고, 파리 오케스트라도 내년 여름 놓기로 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브레멘의 도이체 캄머 필하모니와 N향을 활동의 두 축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유럽과 극동을 오가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려는 예르비의 야망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그가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절 보여준 ‘앙상블 빌더’ 기질을 다시 한 번 발휘하고, 특유의 변화무쌍한 해석으로 단원들을 끊임없이 자극한다면 N향의 기량과 명성을 재건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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