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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쿠바 국교정상화 환호하는 아바나를 가다

20년 통제형 개혁·개방으로 체제 유지 자신감…달러 유입 기대 부풀어

  •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환호하는 아바나를 가다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환호하는 아바나를 가다

쿠바 아바나 국회의사당 앞.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쿠바에 가보라는 회사 지시를 받은 직후 늘 하던 대로 미국 버지니아 주 한인 밀집지역 애넌데일에 있는 한인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가능한 한 빨리 쿠바 아바나에 갈 수 있는 비행기 표를 알아봐주세요.”

“어디요? 쿠바요?”

“예, 마이애미에서 아바나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을까요?”

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동안 말을 못 하다 이렇게 입을 열었다.



“미국 여행사들은 국제 항공권 발급 전산시스템에서 아예 쿠바 국가코드를 칠 수 없어요. 당연히 미국에서 쿠바로 바로 갈 수도 없고요. 캐나다나 멕시코, 파나마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죠.”

설명을 듣고서야 내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나라가 국교정상화에 합의했지만 아직 바뀐 것은 없었다. 두 나라는 정치, 경제적으로 아직 단절 상태인 것이다. 별 수 없이 서울로 전화를 걸어 한국 여행사를 통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마이애미와 쿠바는 60~7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워싱턴에서 멕시코시티를 거쳐 아바나를 오가는 먼 길을 돌아야 했다.

아직은 험난한 여정

불편은 이뿐이 아니었다. 쿠바에선 미국 은행이 발급한 신용카드를 쓸 수 없다. 어떤 외화도 직접 사용할 수 없다. 달러나 유로를 현금으로 싸들고 가서 현지 환전소에서 바꿔야 한다. 쿠바는 1달러를 1태환페소(CUC)로 바꿔준다. 외국인은 어디서나 CUC만 쓸 수 있다. 1CUC와 현지인이 사용하는 불태환페소(CUP) 비율은 1 대 24. 쉽게 말해 쿠바 원래 돈의 달러당 환율은 24CUP인 셈이다. 그런데 쿠바 정부는 CUC로 환전해주면서 수수료를 뗀다. 비교적 사이가 좋은 유럽연합(EU)의 유로나 캐나다달러는 수수료로 3%만 떼는 데 비해 앙숙이던 미국달러는 13%나 뗀다. 쉽게 말해 100캐나다달러를 주면 97CUC를 받지만 100미국달러를 주면 87CUC가 전부다.

차라리 미국에서 달러를 유로로 바꿔가는 게 이익일 것 같았다. 1000달러를 미국 댈러스 공항 환전소에 내미니 590유로를 줬다. 이걸 쿠바 환전소에 내밀자 835CUC로 바꿔 준다. 달러를 직접 환전한 것보다 더 낮은 가격이다. 직원에게 따졌더니 최근 CUC 대 유로 가치가 떨어졌다는 답이 돌아온다. 반면 미국 환전소는 급하게 환전하는 최고 환율로 기자에게 바가지를 씌웠던 것이다. 미국과 쿠바 사이 복잡한 통화 관계 때문에 순식간에 호주머니가 홀쭉해졌다.

마지막 하나 더. 미국에서 구매한 아이폰5는 멕시코시티까지는 자동으로 로밍됐다. 하지만 쿠바 영토에 들어서자 완전 먹통이다. 아바나에 들어간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 동안 기자는 극심한 ‘분리불안’을 느껴야 했다. 민박집에서는 인터넷 서비스가 안 됐고, 그나마 가능했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아바나 무역관의 인터넷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아바나 가는 길’의 험난함을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쿠바 체류기간 중인 1월 15일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가 발표한 양국관계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이제 곧 많은 불편이 해소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쿠바 출신자의 고향 방문이나 교육·문화교류 등 12개 항목에 해당하는 사유를 내건 미국인의 쿠바 방문 신청에 대해 일반 면허(general license)를 발급해 허용하기로 했다. 일반 관광은 여전히 금지되지만 12개 항목 핑계를 댄 ‘사실상의 관광’ 기회가 늘어난다. 취재도 그 한 가지다. 이들을 쿠바까지 ‘모시는’ 미국 여행사들의 항공기 좌석 티케팅 같은 서비스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정부는 또 자국 내 은행 등이 쿠바 금융기관과 연계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럼 미국인이 쿠바 현지에서 미국 금융회사들이 발급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현금을 싸들고 갈 필요도, 미국과 쿠바 환전소에서 거액을 뜯길 이유도 사라진다. 쿠바 환전소가 13%의 고액 수수료를 얼마나 내릴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당연히 미국 휴대전화의 쿠바 로밍 서비스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두 나라 정부는 쿠바의 낙후한 인터넷망과 휴대전화 서비스를 개선하고자 미국 업체의 쿠바 진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기로 약속했다. 미국 업체가 들어가 깔아놓을 인터넷망과 휴대전화 서비스의 최우선 수혜자는 바로 미국인 방문자들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환호하는 아바나를 가다

쿠바 곳곳의 민간경제 현장. 개인 소유 식당과 농민시장, 예술품 거래 장터(왼쪽부터).

미국이 열었나, 쿠바가 열었나

쿠바 현지의 돈 있는 주민들은 이미 최첨단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쿠바 정부가 정보 유통으로 인한 체제 불안을 우려해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을 정치적 이유로 막을 것이라는 가설도 설득력 없어 보였다. 다만 쿠바가 지불할 돈이 있는지가 문제였다.

미국에서 쿠바로 들어가는 돈은 얼마나 늘어날까. 서정혁 KOTRA 아바나 무역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내 쿠바인은 지금도 제한 없이 쿠바에 돈을 보낸다. 이를 포함한 미국의 연간 쿠바로의 송금은 20억 달러 정도라고 미 국무부는 밝힌 적이 있다. 미국 거주 쿠바인이 아닌 보통 미국인의 송금 한도는 분기당 500달러에서 2000달러로 4배 늘어난다. 가족 송금이 아닌 인도적 지원이나 교육·문화교류 관련 송금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가 관건인 셈이다. 정훈 KOTRA 아바나 무역관 부관장은 “미국 내 쿠바인이 미래를 대비해 현지 가족에게 송금을 더 늘려 부동산투자 등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래저래 미국에서 쿠바로 들어가는 달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아바나 현지에서 확인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두 나라 지도자가 밝힌 대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것은 물론 미국인의 쿠바 방문과 송금 확대, 미국 기업의 쿠바 진출 확대 등이 현실화되는 데 큰 장애물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미국 여행사들에는 쿠바 관광을 문의하는 전화가 폭주하고, 미국 기업들은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쿠바 내 거점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당국 허락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지난해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역사적 국교정상화 발표 당일부터 환영 입장을 밝힌 상태다.

기자는 ‘북한과 쿠바의 경제위기와 개혁’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2007년 11월에 8박 9일간 쿠바를 방문한 적이 있다. 두 번째 방문을 앞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미국이 쿠바를 받아들인 건가, 쿠바가 미국을 받아들이는 건가. 누가 누구에게 걸었던 빗장을 푸는 건가. 그렇다면 무엇을 노린 건가.

자료 조사와 현지 상황을 종합해보니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당장 경제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빤하지만 장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쿠바에 대한 빗장을 푼 것이다. 반면 쿠바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해 빗장을 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1월 10일자에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쿠바는 미국에 팔 것도 적고 미국 물건을 살 돈도 별로 없다. 하지만 주미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아메리카대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그동안 섬으로 남겨져 있던 쿠바를 영향력 아래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이슬람국가(IS)에게 호된 시련을 겪은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전 외교 업적을 남기기 위해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손을 잡았다는 정치공학 차원의 설명보다는 훨씬 심오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쿠바는 어떨까. 1898년 끝난 미국-스페인 전쟁을 통해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뒤 1959년 혁명 때까지 이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지독한 정치적 종속과 경제적 수탈을 경험했다. 1961년 단절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과거 같은 대미 종속이 재현되는 것은 물론, 쿠바공산당 독재체제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정치적 도박이다. 하지만 1990년대 소련의 체제 전환으로 초유의 경제위기(쿠바인은 이를 ‘특별한 시기’라고 부른다)를 거치는 동안 쿠바는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전 세계 관광객 및 투자자에게 이미 상당한 수준의 개방을 진행한 바 있다. 여기서 쌓은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인과 자본을 받아들여도 체제 유지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환호하는 아바나를 가다

활기 넘치는 쿠바 아바나 거리 풍경. 개인이 운영하는 택시가 곳곳에서 눈에 띄고,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비롯한 명소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비하다(위부터).

아바나 현장은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줬다(‘동아일보’ 1월 20, 21일자 기사 참조). 7년 2개월 만에 다시 찾은 쿠바는 말 그대로 ‘자영업 천국’이었다. 2008년 2월 형인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권좌를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는 2011년 4월 6차 공산당대회 이후 민간경제 활성화에 나섰다. 그 전해인 2010년에는 택시 등 자영업 가능 업종을 201개로 확대하고 각종 규제도 철폐했다. 급기야 2013년 12월에는 자영업자들이 가족이 아닌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허용하기도 했다. 비효율적인 사회주의 정부 부문에서 100만 명을 구조조정하는 대신 자영업으로 살아갈 길을 열어준 것이다.

지난해 8월 현재 쿠바 정부 추산 자영업자는 47만2000여 명. 2007년 13만8000명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난 수다. 불법 자영업자는 이보다 4~6배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총인구가 1100만 명인 쿠바의 경제활동인구를 500만 명으로 잡으면, 많게는 절반 정도가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국가에 세금을 바치는 자본주의 경제 방식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미국인이 밀려들어오면 이들 자영업자들에게 숙박과 요식업, 교통 등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유도해 달러를 벌어들이고 국가는 세금 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쿠바공산당 정부는 이미 1992년부터 군부 소유 국영기업을 내세워 관광산업의 80%를 장악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고급 상점뿐 아니라 미국에서 송금받는 쿠바인이 이용하는 외화상점 역시 국가 소유다. 미국인이 들어와 쿠바의 명소를 둘러보고 상품을 많이 사갈수록 이익금은 군부 손으로 들어가 국방을 튼튼히 하고 쿠바공산당 충성 지지계층의 배를 불리는 시스템을 깔아둔 것이다.

진짜 싸움이 시작된 이유

쿠바 독재정권은 1990년대 경제위기와 그 극복 과정을 통해 불가피한 개혁·개방의 범위 및 심도를 통제하면서도 수익성이 높아진 부분을 지배세력에게 나눠줘 충성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힘을 강화해왔다. 세계 관광객에게 쿠바 곳곳을 보여주고 자영업자에게 이들을 재우고 먹일 수 있게 허용해도, 체제 불안은커녕 국가와 민간이 모두 달러를 더 벌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두렵겠는가.

아바나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 조치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쏟아냈다. 예외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환영 일색이었다. 말레콘 방파제에서 만난 화가 부부도, 통상변호사도, 아바나대 교수도, 민박집 주인도, 택시운전사도 “이제 체제 유지를 걱정하지 않고도 미국인을 마음껏 받아들여 달러를 벌 준비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서 내린 잠정적 결론은 빗장을 연 것은 미국이라기보다 쿠바다. 그 자신감은 지난 20여 년간 이어진 ‘국가통제형 개혁·개방’의 성과에서 나왔다. 앞으로도 쿠바는 미국인과 미국 돈을 자기들 방식으로 받아들였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문을 닫는 ‘문지기 국가’의 행태를 계속 보일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열린 문을 더 열고 쿠바 민주화와 인권 개선이란 정치적인 목적을 노릴 것이다. 미국과 쿠바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주간동아 2015.01.26 973호 (p48~50)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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