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2015.01.26

부익부-빈익빈 세제 개편, 이대로 둘 건가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은 부유세 도입…우리만 고소득층 과세 강화 안 하고 ‘마이웨이’

  • 구재이 세무사·한국세무사고시회장

    입력2015-01-26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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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첫 세법 개정안은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가만 둬도 10조 원 넘게 발생하는 세수 부족 상황에서 최소 135조 원의 재정 수입이 필요한 복지공약을 발표해 국민의 기대를 한껏 모은 데다 어떻게 필요한 재정을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의외였다. 봉급생활자가 소득금액을 계산할 때 필요경비로 공제받는 의료비, 교육비 등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일률적으로 12~15%만 공제해준다는 기발한 방법을 발표하면서 조세형평성을 위해 소득이 높은 사람이 소득공제 혜택을 많이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세 부담이 늘어나게 될 봉급생활자와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반대 여론까지 들끓자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까지 나서 연봉 5000만 원 이하 중산층과 서민은 세금이 인상되지 않게 하는 수정안을 마련하는 등 세법을 보완해 국회에서 겨우 통과됐다. 하지만 개정 세법은 의료비, 교육비 등 필요경비성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에 그치지 않고 근로소득공제를 대폭 줄이고 다자녀 공제 등 각종 공제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유리지갑 터는 게 재정 대책?

    봉급생활자의 필요경비성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은 급증하는 재정 수요를 충족할 충분한 대안도 못 되지만 조세형평성 측면에서 보면 더 심각한 것이었다. 의료비, 교육비 등 필요경비성 소득공제는 봉급생활자의 과세소득에서 제외하는 사회보장적 효과를 갖고 있기에 근로자의 과표는 진정한 담세력(조세부담 능력)에 접근했다. 의료비나 교육비는 대부분 봉급 크기와 관계없이 소득자가 자유롭게 조절하기 어려운 지출인 데다, 소득공제 시 개별공제한도는 물론 총액공제한도까지 두고 소득공제를 하는 것이 조세원리와 국제규범에도 맞는 것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도 대부분 의료비 등 필요경비를 소득공제해주는 것은 물론, 기본공제만 수만 달러에 달하고 물가변동액까지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두고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거나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개정을 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의료비, 교육비 등의 필요경비성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각종 공제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등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를 과세 대상으로 선택한 박근혜 정부의 첫 세법 개정에서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봉급생활자의 과표는 실제 담세력과 달리 크게 높아졌고,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들에 대한 ‘세금폭탄’ 논란만 가중했다.

    정부가 조세형평성과 세수 때문이라면 과세 없는 소득과 담세력을 가진 계층에 대한 과표 구간 및 세율 조정, 상장주식 양도차익과세, 토빈세 도입, 광범위한 부가세 면세거래의 과세 전환, 비과세·감면 대상에서 대기업 제외 등 손댈 만한 것이 수두룩한데 왜 정교하게 설계하거나 국민에게 설명한 시간도 없이 세입과 조세형평성에 별 실효성도 없는 ‘극약처방’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부익부-빈익빈 세제 개편, 이대로 둘 건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당정협의를 갖고 있다.

    어려울수록 조세형평성이 우선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조세제도 개편을 통한 증세 요구에 맞서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무조사 강화’ 등 세무행정을 강화하면 충분히 부족한 세수를 채울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 재정과 경제 등 우리 사회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지하경제 양성화가 얼마나 달성됐고 세수로 연결됐는지 브리핑해주는 정부 당국자도, 묻는 국민과 전문가도 없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두 번째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팍팍한 서민의 기호품 담배에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고 금연운동에 쓰는 건강기금도 아닌 일반 재정에 충당하는 개별소비세를 신설해 국회 추산 5조 원의 세입을 늘리고, 기업 유보를 줄이면서 배당, 급여 등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와 경기를 부양하는 ‘가계소득증대 3대 패키지’세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추진해온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과 봉급생활자에 대한 세금 늘리기에 이어 앞으로 3년간은 법인세율 인하 덕에 1000조 원에 달한다는 유보자금을 쌓아둔 재벌 등 대기업과 자산가에게 세금을 더 징수하기는커녕 오히려 깎아줘 그들의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내수가 살아나고 세수도 자연스레 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증세’ 논란에 대해 ‘국민 혈세’로 예산을 충족하는 증세는 고려하지 않는다면서 규제를 풀고 투자를 활성화하면 세수가 자연스럽게 늘 것이라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다.

    1월 20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자본 이득과 무상 부의 이전에 대한 과세를 대폭 강화하는 등 상위 1%에 대한 부유세를 도입하고 중산층의 세금은 인하하겠다고 밝히며 “몇몇 소수에게만 특별히 좋은 경제를 계속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질문하면서 부유층에게 걸맞은 담세를 해 불평등을 초래하는 세금구멍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등 선진국은 대부분 부유세를 도입하는 등 복지재정 수요 충족과 재정 안정을 위해 고소득층에게 세 부담을 늘리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같은 상황에 놓인 우리나라만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 강화를 시작으로 한 실효성 있는 세입 확충 대책도 없이 마이웨이다.

    지금 봉급생활자가 ‘13월의 세금폭탄’이라고 분노하는 것은 그들의 세금이 감당할 수 없이 늘어서라기보다, 그들보다 소득과 재산이 훨씬 많아 담세력이 높은 자산가나 대기업의 자본이득과 법인과세에 세금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깎아주는 ‘세금천국’에 눈이 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위기 상황에서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하려면 먼저 공평한지를 살피고 고쳐주는 것은 필수이지 결코 선택사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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