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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 공개투표 논란

상급자 지켜보는데 일부 재투표…문제의 핵심은 통상임금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 공개투표 논란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 공개투표 논란
“너희끼리 서명하면 안 된다.”

아시아나항공 소속 승무원 A씨와 B씨는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에 서명한 뒤 파트장 X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승무원끼리 자율적으로 서명해서는 안 된다. 투표를 무효화하겠다”는 얘기였다. 두 승무원은 결국 파트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서명했다.

파트장이 두 승무원의 서명을 무효로 한 이유는 뭘까. 자율적으로 서명했기 때문에? 이유는 따로 있다. 처음 서명에서 두 승무원은 ‘동의하지 않음’에 V표를 했던 것. 하지만 파트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한 두 번째 서명에서는 ‘동의함’에 V표를 했다. 도대체 아시아나 직원들은 무엇을 동의하지 않은 것일까.

아시아나항공이 취업규칙을 변경하려 한 것은 ‘통상임금’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5월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노조)이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고 낸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은 정기성, 고정성, 일률성이 인정되는 통상임금”이라며 원고 손을 들어줬다. 그에 앞서 대법원은 통상임금 판결에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취업규칙 변경에서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해 정기상여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된 것.

아시아나항공 노조 관계자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면 연간 100억 원 가까이 회사 부담이 줄어든다고 한다”며 “회사로선 경비 절감이 되겠지만, 직원들은 그만큼 받아야 할 수당 등을 덜 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직원 간 임금 격차가 심해져 위화감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취업규칙 변경은 임금체계 형평성과 일관성을 적용하고자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급 안 할 생각이냐”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 공개투표 논란
취업규칙 변경 내용에 대한 노사의 입장 차가 큰 가운데, 취업규칙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부당한 회유가 있었다’며 노조는 감독관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2014년 12월 1일부터 17일까지 ‘취업규칙 변경’을 둘러싸고 아시아나항공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승무원 C씨는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 서명을 거부했다.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상 공개투표로 진행되는 방식에 대해 투표 거부로 항의한 것. 그러자 C씨의 상급자는 “서명을 왜 안 하느냐”며 투표 참여를 종용했다. C씨는 “하기 싫은데 계속하라고 하면 ‘동의하지 않음’에 표시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그룹장 Y가 C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서명을 계속 거부하면) 팀에 부담이 되니 자제해달라”는 얘기였다. 통화 말미에 Y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진급 안 할 생각이냐.”

취업규칙 변경 서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4년 12월 중순, 비행에 앞서 승무원들이 브리핑룸에 모였다. “서명 안 한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나가 있으라”는 상급자의 지시가 떨어졌다. 브리핑룸 밖에 파트장이 서 있는 가운데 취업규칙 변경에 서명하지 않은 승무원들은 회의실에 남아 서명을 해야 했다. 대부분 ‘동의함’에 표시했다. 그러나 끝까지 서명을 거부한 이도 있었다. 파트장은 “네가 투표하지 않더라도 이미 ‘동의’로 기울었다”며 재차 서명을 요구했다. “이미 동의로 기울었으면 서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버티자 “그래도 서명하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 간부들이 소속 직원들에게 집요하게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 서명을 채근한 이유는 뭘까. 승무원들은 “서명을 안 하는 것이 곧 ‘비(非)동의’ 의사 표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승무원은 “(간부들이) 영업 실적을 높이려는 듯 직원들의 취업규칙 변경 동의 비율을 높이려 했다”고 말했다.

승무원뿐 아니라 일반직 사원도 사실상 공개 서명을 하기는 마찬가지. 영업부서 직원 D씨는 “팀장과 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업규칙 변경에 서명했다”며 “이름과 직급, 사번까지 기록하고 동의와 부동의를 표시하는데, 간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동의하지 않음’이라고 기표할 간 큰 직원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는 ‘회사 관리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율적 토의를 거쳐 본인 의사를 아래와 같이 제출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이 같은 문구는 “실제 서명과 투표가 진행된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았다.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 공개투표 논란

공개투표 논란이 일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왼쪽).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조합원 행동지침.

동의하지 않으면 격려금도 없다?

아시아나항공 취업규칙은 직원 과반(67.7%)의 ‘동의’로 변경됐다. 그러나 투표 후에도 여진은 계속됐다. 노사화합격려금 지급을 둘러싸고 회사가 직원을 회유하려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 아시아나항공은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한 직원에게 2014년 12월 24일, 노사화합격려금 명목으로 상여금의 75%를 지급했다. 그러나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격려금 대신 ‘격려금을 받고 싶으면 의사표시를 하라’는 e메일을 보냈다. 회사는 e메일로 ‘격려금을 수령하겠다’고 의사표시한 직원에게 12월 말 추가로 격려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취업규칙 변경에 반대하거나 응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1월 8일 현재).

몇몇 아시아나항공 직원은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했는지 동의하지 않았는지, 또 투표에 참여했는지 참여하지 않았는지를 회사가 구분해 e메일을 별도로 보내고, 격려금까지 차별적으로 지급한 것에 놀라워했다.

아시아나항공 한 직원은 “사실상 공개투표로 취업규칙 변경에 서명을 요구한 것도 온당치 않은 일인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만 빼고 격려금을 지급한 처사도 옹졸하기 그지없다”며 “결국 격려금을 받고 싶으면 회사 요구에 굴복하라는 것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는 ‘노사화합격려금 수령을 거부하라’는 조합원 행동지침을 내렸다. 조종사 노조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2014년 12월 22일자로 ‘APU(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는 과반 노조로 단협을 근거로 끝까지 투쟁한다’는 팝업창을 띄워놓고 있다.

한 노무 전문가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게 한 것은 회사가 부당하게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라며 “취업규칙 변경에 대해 회사가 직원 개개인의 의사표시를 파악해 별도로 대응하는 것은 개인정보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 조용기 지부장은 “불이익이 돌아가는 취업규칙 변경은 회사의 지배나 개입, 지휘권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취업규칙 변경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며 “불이익 변경 투표를 강요하고 진급 운운하며 회유했다는 제보가 많아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남부지청)에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해 진정서를 접수했다”고 말했다. 남부지청 감독관은 “현재 진정서가 접수돼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제기된 문제에 대해 노조와 사측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취업규칙 변경 절차의 진행과 관련해 관련법(근로기준법)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했다”며 “(취업규칙 변경 때) 충분한 자유토론을 거친 뒤 개인의 자유의지가 반영된 투표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한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동의절차 진행 시 기명방식의 연명부 서명은 노동부에 제출해야 하는 증빙자료로, 법적 자문을 받은 결과 절차상 문제가 전혀 없으며 대다수 회사에서 취업규칙 변경 시 이용하는 방식”이라면서 “인사팀은 취업규칙 개정을 주관하는 부서로 전 직원 과반수 찬성의 요건을 확인하기 위해 연명부 서명 결과를 취합할 뿐, 그 결과는 다른 어떤 용도로도 활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15.01.12 971호 (p32~33)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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