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4

2014.04.21

고비마다 철수, 지지율도 철수

안철수 대표 민주적 과정 무시 ‘CEO형 리더십’ 논쟁 촉발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4-04-21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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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비마다 철수, 지지율도 철수

    3월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창당대회에서 안철수(오른쪽), 김한길 공동대표가 수락 연설을 한 후 손을 잡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공동대표는 4월 17일 전남 목포 한국병원을 방문해 세월호 침몰 사고 부상자들을 위로했다. 병실을 돌며 부상자를 만나 일일이 상태를 묻거나, 5세 여아를 무사히 구조한 김종황(59) 씨의 손을 꼭 잡으며 “좋은 일하셨다. 어서 쾌차하시길 바란다”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진정성과 부드러운 리더십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 대표의 정치 리더십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일주일 전 그가 통합 신당의 명분이던 ‘기초선거 무공천’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그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신당 창당을 통해 “새 정치를 위한 더 큰 그릇을 만들게 됐다”고 했지만, 국민은 그의 말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지율은 급락했다.

    보름여 만에 약속 뒤집기

    6·4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혁 공천’을 내세웠고, 최종 후보 심사를 공동대표와 최고위원회의에서 주관하도록 했지만 “안 대표 쪽 사람을 챙기는 것이 새 정치냐”(정청래 의원)는 반발에 직면했다. 안철수·김한길 ‘투톱 리더십’도 도전받고 있다.

    새정치연합 중앙당 창당을 목표로 시도당 창당준비위원회 구성에 매진하던 안 대표는 3월 2일 오전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앞서 “야권연대는 없다”던 안 대표가 통합 신당 창당을 선언한 것. 안 대표의 멘토이자 전략가였던 윤여준 전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은 4월 2일 한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은 ‘충격적’이라고 했다.



    “독자 신당 창당을 강력히 주장했고, 민주당을 바로 전날까지 낡은 정치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런 세력과 하룻밤 사이 힘을 합쳐 당을 만들기로 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중략) 의사결정구조가 정해져 있는데, 이 과정을 무시한 거다.”

    안 대표는 기자회견 한 시간 전인 오전 9시 공동위원장단에게 신당 창당 결정을 알렸다. 당시 독자 신당 창당에 골몰하던 이들은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합당이 아닌 제3지대에서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라는 안 대표 주장을 추인했다. 김성식 공동위원장은 “심각하게 고민하겠다”며 자리를 뜬 뒤 ‘꿈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Dream)’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 블로그에 남기며 안 대표와 결별했다.

    ‘안철수 독자 신당’에 합류하려고 민주당을 탈당한 시도 의원들은 분노를 쏟아냈고, 안 대표는 다음 날 “미리 상의하고 충분한 의견을 구하지 못해 사과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혼란은 계속됐다. 안 대표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공격하던 민주당과 전격 손을 잡은 명분으로 ‘기초선거 무공천’을 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4월 10일 새정연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결과(공천 찬성 53.4%, 반대 46.6%)가 나오자 급선회한다. 무공천을 명분으로 민주당과 손잡은 지 보름여 만에 창당 명분과 자신의 결정을 뒤집은 것. ‘약속을 지키는 게 새 정치’라던 안 대표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사과드린다”며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은 ‘또 철수(撤收)’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그에게 달았다. 물론 무공천 철회가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안 대표 핵심 측근의 설명이다.

    효율성 중시하는 기업인 스타일

    “신당 창당과 무공천 번복 과정을 보면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 분명 (안 대표가) 정치적 결정을 하기 전 주변 사람의 얘기는 많이 듣지만 결단은 지독하게도 혼자 하는 스타일이다. 4월 4일 기초공천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려고 청와대 민원실에 간 일도 혼자 생각하다 진정성 있게 간 거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통합 신당 창당 역시 현실적으로 열 걸음 가지 못하니 다섯 걸음부터 가야겠다고 외로이 판단한 거다.”

    따지고 보면, 안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결정을 전격 번복했다. 안 대표의 결단은 다양한 해석을 낳거나 불필요한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11년 9월 안 대표는 박원순 당시 변호사와 만난 후 전격적으로 “후보직을 양보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론조사에서 50%대 지지율을 보이던 그가 5%대 지지율의 박 변호사에게 자리를 내준 ‘결단’이었다(상자기사 참조). ‘아름다운 양보’라는 해석도 있었지만, 라면 TV 광고에 빗대 ‘서울시장 자리가 라면이냐, 양보하게’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양보가 아닌 후보 사퇴라는 주장이 나왔다. 윤 전 의장은 당시 한 주간지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안 대표가 ‘저 서울시장 하면 안 됩니까’ 하기에 ‘빨리 결심해서 발표하라. 질질 끄는 것은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3일 후 아버지의 결사반대를 이유로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빠지더라도 명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변호사가 시민후보라는 전제에서 양보하고 빠지면 그래도 명분이 서는데, 그냥 안 한다면 비난이 나온다.”

    안 대표는 1년 후 대통령선거(대선) 때도 ‘전격 양보’를 한다. “국민에게 의사를 묻겠다”며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하던 안 대표는 2012년 11월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직을 내려놓겠다”며 사퇴 선언을 한다. 대선을 25일 앞둔 시점이었고, 이날 후보등록 서류를 발급받은 상태였다. 안철수 캠프 극소수 관계자 외에는 사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충격에 빠진 캠프 관계자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한 자원봉사자가 “이러시면 안 됩니다”고 말하며 뛰어드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그는 선거 당일 결과도 보기 전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를 두고도 또 다른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캠프 상황실장이던 홍영표 새정연 의원은 ‘비망록 : 차마 말하지 못한 대선 패배의 진실’에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돕는 조건으로 차기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양보를 받은 문 후보 역시 혼돈스러워했다는 점이다. 문 의원은 자신의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안 대표의 후보 사퇴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썼다. 정작 양보를 받은 당사자도 그 이유를 모른다니, 이것이야말로 안 대표 특유의 양보인 것이다.

    반복강박 그리고 흙탕물

    고비마다 철수, 지지율도 철수
    안 대표의 반복되는 ‘전격 철수’에 대해 전문가들은 ‘CEO(최고경영자) 리더십’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국민이 이해할 때까지 설득하고 이해 득실을 따진 후 발표하는 정치인 스타일이라기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인 스타일이기 때문이라는 것.

    윤 전 의장은 “(안 대표가) 아직은 CEO 마인드가 있어 보인다”며 “기업 CEO는 기업 이윤을 위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생명으로 하지만 정치는 민주적 과정이 중요하다. CEO 눈으로 보면 그 과정을 생략하고 싶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치평론가인 이종훈 박사는 “(안 대표가) 벤처 창업 등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시스템에 익숙해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형 CEO 리더십’을 보이는 거 같다”며 “‘무공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미련 없이 대표직을 던졌다면 새 정치 화두는 이어갔을 텐데, CEO 리더십으로는 그게 쉽지 않다. 안 대표가 당내에서 자기 세력, 개혁 공천을 명분 삼아 친안파(親安派)를 밀어 넣고 옛 민주당 현역들과 싸우려면 전투적이고 스킨십 강한 한국형 정치인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인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으로 안 대표를 설명한다.

    “어릴 적 행동양식을 어른이 돼서도 반복적으로 하는, 일종의 반복강박이 작용하는 거 같다. 불쾌한 상황에서도 무의식중에 되풀이하고, 그 원인이 해결될 때까지 반복하는 특징을 보인다. 안 대표 역시 서울대 의대 입학부터 회사 창립, 대학 교수, 정치인까지 자신의 판단으로 개인적 성취를 이뤘다. 따라서 특정 세력의 지지를 얻거나 사람 마음을 얻기보다 자신의 통찰을 통해 ‘이게 맞다’ 싶으면 모범생이 돼 그 일을 추진한다. 이 경우 사회적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

    반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일련의 정치적 회군은) 이상주의자인 안 대표가 정치적 내공과 현실 정치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현실 정치에 부딪혀 흙탕물이 튀는 과정”이라며 “장점만 보이다 현실 정치에서 단점이 부각되는 만큼 단점을 보완하고 방어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정연 관계자는 “안 대표의 리더십은 지방선거에서 평가받을 것”이라며 “‘일방적 리더십’ ‘리더십 없는 리더십’ 등 비판은 있었지만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바람이 불면 2016년 총선까지 리더십이 유지될 테고, 반대의 경우 당장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리더십과 지지율 분석

    정치적 결단 때마다 지지자들 등 돌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mikebay@empas.com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공동대표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 지지율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안 대표가 현실 정치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먼저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후 사퇴하면서 ‘안철수 열풍’이 뜨겁게 휘몰아쳤다. 야권 내 유력 후보가 보이지 않자 안 대표가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떠올랐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안 대표는 40% 가까운 지지율로 압도적 1위에 오른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5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비마다 철수, 지지율도 철수
    2012년 9월 장고 끝에 무소속 후보로 대통령선거(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의 지지율은 소폭 하락한 30%대 초반 정도였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양자대결에서는 근소하게 앞서거나 박빙 결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념대결로 점철된 선거과정에서 안 대표의 ‘새 정치’ 프레임은 인상적인 이슈로 부각하지 못했고, 급기야 야권 단일화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채 2012년 11월 23일 전격 사퇴한다. 사퇴 시점 안 대표의 지지율은 문재인 대선후보와 비슷한 20%대 초반이었다. 정치적 결단을 보였지만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다.

    대선 후 ‘대선 불복’ 논란 등으로 여야 정쟁이 심화하자 안 대표의 정치적 공간이 열렸다. 2013년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자, 안 대표의 지지율은 40% 가까이까지 올랐다. 개표 결과 60% 넘는 득표를 올리며 그는 화려하게 귀환했다.

    그러나 국회 입성 뒤 ‘정치 신인’ 안 대표의 의정 활동은 주목받지 못했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에서는 1위를 유지했지만 2위인 문재인 당시 민주당 의원과 격차를 벌이지는 못했다. 보궐선거 당선 시점의 지지율이 다시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명분으로 삼아 민주당과 신당을 만들면서 “새 정치를 담을 큰 그릇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은 10%대 중반으로 확 떨어졌다. 안 대표의 지지율 하락은 새정연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안 대표의 강력한 지지층은 2030세대, 학생, 수도권의 화이트칼라, 중도성향 유권자층이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안 대표 지지층이 상당수 이탈했다. 특히 중도성향 유권자의 이탈은 뼈아프다. 물론 그들이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부동층을 형성했고, 안 대표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거나 ‘안철수 현상’을 대변할 새로운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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