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9

2013.10.21

한국 온 태풍 왜 더 매울까?

인·물적 피해 일본보다 훨씬 커…자연재해 대응력 갖추지 못한 것이 주원인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uwon@hri.co.kr

    입력2013-10-21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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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온 태풍 왜 더 매울까?

    제24호 태풍 다나스가 제주 지역까지 북상한 10월 8일 오전 서귀포시 법환포구에 집채만한 파도가 치고 있다. 이날 제주 일대에는 초속 30m 안팎의 강풍이 불고 100mm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렸다.

    한반도를 덮치는 다양한 자연재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단연 태풍이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가운데 태풍에 의한 인명 손실(사망 및 실종)이 전체 자연재해의 62%를 차지할 정도다. 같은 기간 태풍으로 발생한 재산피해 규모 역시 전체 자연재해 피해의 65%에 달한다.

    이 기간 우리나라를 지나간 태풍은 모두 16개로, 그중 2002년 루사(Rusa)와 2003년 매미(Maemi)는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혔다. 루사는 인명피해 246명과 이재민 6만3000명을 발생시키고 약 7조 원의 재산피해를 입혔으며, 매미는 인명피해 131명과 이재민 6만2000명을 낳고 5조6000억 원 안팎의 재산피해를 남겼다.

    개당 한국 8635억, 일본 7271억 피해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우리 못지않은 나라가 바로 옆 나라 일본이다. 우리나라가 2002~2011년 총 16개, 연평균 1.6개 태풍의 영향을 받은 반면, 일본은 총 41개, 연평균 4.1개의 태풍에 길을 내줬다. 그로 인한 피해 규모 총량을 보면 2011년 원화 기준 우리나라는 연평균 1조3816억 원의 손실을 당했고, 일본은 2배가 넘는 3조537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언뜻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바다 쪽에 치우쳐 있어 태풍의 영향에 한결 직접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태풍 피해의 절대적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태풍 개수다. 일본은 워낙 태풍이 많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절대적 피해 규모 역시 크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인구수가 중요하다. 태풍이 지나가는 길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당연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인명피해 규모가 커질 공산이 크다. 경제규모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 인프라 자산이 많이 구축된 선진국일수록 자산가치도 높기 때문에 피해규모는 한층 더 커진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와 일본의 상대적 태풍 피해를 다시 계산해 비교해보자. 먼저 태풍 한 개당 피해액을 보면 우리나라는 약 8635억 원으로 일본의 7271억 원보다 높게 나타났다. 인명피해를 인구수로 나눈 비중은 더욱 심각하다. 인구 10만 명당 태풍에 의한 사망자 수가 우리나라는 연평균 0.09명으로 계산되지만, 일본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0.04명에 불과하다. 태풍에 의한 피해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눠보면 우리나라는 0.11%로 일본의 0.06%보다 2배가량 높았다. 결과가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우리나라의 태풍 피해 규모 상대치가 일본보다 훨씬 크다는 결과가 자못 뜻밖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나라가 인구나 경제 규모에 걸맞은 자연재해 대응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가 재해방재 시스템의 문제 때문인지 사회간접자본(SOC) 같은 자산의 내구성 문제 때문인지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 대비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불충분한 지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가끔 지나가는 태풍에 대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투자 행위에는 기회비용이 있게 마련이며, 태풍에 대비하려고 무한정 자원을 쏟아부을 수도 없다. 문제는 그 적정 수준이 어느 지점인지 하는 점이고, 그 첫 번째 기준은 앞서 본 인구 규모와 경제 규모를 비롯한 상대적 피해 정도에 맞추는 것이 합리적인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단순히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자연재해 대비 능력 목표치를 설정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자연재해 피해는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서 재해위험 관리 강화를

    한국 온 태풍 왜 더 매울까?
    세계기상기구(WMO)는 태풍을 △TD(열대 저압부, 중심 부근 최대풍속 17m/s 미만) △TS(열대 폭풍, 17~24m/s) △STS(강한 열대 폭풍, 25~32m/s) △TY(태풍, 33m/s 이상) 등 네 단계로 구분한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17m/s 이상이면 태풍으로 규정한다. 그동안 한반도에 상륙했던 태풍 강도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국토에 많은 피해를 입히는 STS와 TY의 비중은 1980~90년대 30% 내외에 불과하던 것이 2000년대 이후 70%로 크게 높아졌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최근 우리나라 근해의 기온이 상승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찾아온 태풍 다나스(Danas)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10월에 내습한 태풍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민 생명과 경제활동의 밑바탕이 되는 국부(國富)를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하려면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재해위험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기상청이나 소방방재청 등 유관기관의 기능을 강화하고 그 활동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으로 인프라에 대한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 주요 시설물에 대한 안전 점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새로 건설하는 인프라의 경우 내구성 기준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한반도가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만큼, 도로나 교량 같은 사회간접자본은 물론 건축물의 내구성 기준을 높여가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민간부문도 자연재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 초보단계인 기상산업을 적극 육성해 기업도 기상정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높여야 한다. 금융시장에서도 날씨보험이나 재해보험 같은 관련 상품을 적극 개발함으로써 가계나 기업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자연재해는 말 그대로 자연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재난과 피해를 뜻한다. 하늘의 뜻인 만큼 인간 의지만으로 완벽하게 막을 순 없겠지만, 노력한다면 피해를 줄일 방법이 적지 않다. 사람 힘으로는 자연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지혜로 자연을 다스릴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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