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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주년 특집 | 휴전선 155마일을 가다 ② 강원 인제·양구

피로 지킨 이 고지 저 능선 한 치의 소홀함 있을쏘냐

  • 조성식 월간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피로 지킨 이 고지 저 능선 한 치의 소홀함 있을쏘냐

피로 지킨 이 고지 저 능선 한 치의 소홀함 있을쏘냐

○○소초에서 내려다본 4000개 계단 철책길.

공교롭게도 강원 인제군의 육군 12사단(을지부대)을 찾은 날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63년째 되는 날이었다. 세대가 두 번 바뀌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쟁 위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설악산 대청봉, 백담사 등이 위치한 인제는 산이 깊고 험한 곳이다. 군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군인 사이에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노래처럼 구전됐을까. 여기서 인제는 강원 인제군을, 원통은 인제군 북면 원통리를 뜻한다. 12사단 본부가 있는 곳이 바로 원통리다.

# 故 박정희 대통령의 발자취

12사단은 6·25전쟁 중 854고지 및 812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용맹한 부대다. 12사단이 싸워서 확보한 삼팔선 이북 지역은 강원도 면적의 4분의 1이나 된다고 한다. 사단 책임지역의 85%가 산악지형이고 1000m 이상 고지가 49개다. 평균 고도 740m에 평균 경사도 47도로, 전군에서 가장 험준한 지역을 맡았다고 자부하는 부대다. 지난해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12사단의 협조로 향로봉 일대에서 6·25전쟁 중 전사한 국군 유해 44구를 발굴했다. 올해는 산머리곡산 일대에서 79구를 수습했다.

이 부대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52년 인제에서 3군단 포병여단장으로 근무했다. 또한 57년 9월~58년 6월 7사단장을 지냈는데 사단 주둔지가 바로 12사단 자리였다. 12사단 화생방지원대 대대장 집무실이 박 전 대통령의 집무실로 추정된다.



12사단장 장경석 소장과 환담한 후 오후 3시쯤 전방 GOP(General Outpost·일반 전방초소) 부대로 향했다. 사단 정훈참모 문홍식 중령이 안내를 맡았다. 목표지점은 사천리중대 ○○소초. 사천리는 마을 이름이다. 전쟁 전에는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 중 하나였다고 한다. 사천리중대는 ‘4000개 계단’으로 유명하다. 소초와 소초 사이에 있는 특정 철책 구간이 계단 4000여 개로 구성된 것이다. GOP 체험 코스로도 활용한다는 이곳에 대해 사단장과 정훈참모는 “한 번 가보면 알게 될 것”이라며 은근히 겁을 줬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입구인 평촌검문소를 지나자 고구려시대 토성이라는 서화성벽이 나타났다. 이어 첩첩산중. 지형은 험하지만 도로는 포장이 잘된 편이었다. 포장도로는 유사시 병력 투입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원활한 보급선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2014년까지 50여km를 포장할 예정이다.

연대 정훈과장이 중간에 합류했는데 그가 탄 차는 규정 속도인 시속 30km를 단 한 번도 위반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사천리중대 입구인 ○○관측소까지 가는 데 예상시간보다 20분쯤 더 걸렸다. 차에서 내려 걷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길 왼쪽으로는 철책이 이어지고 오른쪽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다. 관측소에 오르니 전방에 북한군 초소와 경작지가 보인다. 좌우로 적 GP(Guard Post·경계초소)가 포진해 있다. 운무가 짙어 금강산은 보이지 않았다.

# 차로 들어가지 못하는 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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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오지 ○○소초 병사들이 저녁식사 후 TV 드라마에 빠져 있다.

오후 5시. 1차 목표지점인 ○○소초에 도착했다. 산 아래 중대본부를 연결하는 우회도로가 포장이 안 된 탓에 철책을 따라 시멘트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위험지역이라고 해서 철모를 쓰고 군용조끼를 입었다. 30분쯤 걷자 GP 출입문인 통문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근무한 지 한 달 됐다는 정석현 이병은 신병답지 않게 표정이 여유로웠다. 공기와 경치가 좋아 이곳 근무가 맘에 든다고 했다. 도중에 만난 2인1조 순찰조는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인사했다. 철책을 지키는 최전방부대 병사들의 인사말로는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사단의 공식 인사말이란다. 다시 생각해보니, 딱딱한 군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사천계곡 입구에 곰처럼 덩치가 큰 개가 취재진을 보고 짖었다. 적병 탐지견이라는데 생김새와 몸집이 자못 위협적이다. 오후 5시 45분. 드디어 4000개 계단 철책 탐방에 나섰다. 가히 고난의 행군이라 할 정도로 계단은 길고 험했다. 철모 속 머리에서 열이 나고 등에 땀이 배기 시작한다. 앞장선 정훈 병사가 “GOP는 매일 와도 가는 날까지 적응이 안 된다고 한다”고 농을 건넸다.

초소 병사들과 잠깐씩 얘기를 나누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신세대 장병의 특징인지 몰라도 다들 표정이 밝다는 점이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이준명 일병은 “애인이 면회 오느냐”고 묻자 “사귀던 여자친구들을 다 정리하고 들어왔다”며 웃었다. 그 건강한 웃음을 GOP 근무 기간 내내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 해맑은 젊은이들이 이 험한 곳에서 왜 이토록 모진 고생을 해야 하는지. 참으로 엄청난 국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이 되면 다 걷어내야 할 철조망이고 다 철수해야 할 병사들이 아닌가. 남북한이 하나가 되면 중국, 러시아와 맞닿은 국경지대만 지키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휴전선에 쏟아 붓는 돈을 주변 강대국에 대한 억제전력 구축과 사회복지로 돌리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오후 7시 20분. 목적지인 ○○소초에 도착했다. 1973년 10월 23일 북한군 3명이 침투했다가 1명이 사살되고 2명이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이곳은 휴전선 일대 소초 중에서 유일하게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격오지’다. 도로를 닦지 않아 차로 접근할 수 없는 소초가 몇 군데 있기는 한데, ○○소초처럼 완전히 산속에 고립된 경우는 없다고 한다. 부식을 비롯한 보급품은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을 이용해 공급하고, 겨울철 난방과 온수에 필요한 유류는 헬기로 실어 나른다. 소초장 김석현 중위는 “가장 열악하지만 가장 중요한 곳”이라며 “병사들은 군사적 요충지를 지킨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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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계등이 켜진 가운데 4000개 계단을 걷는 기자(왼쪽 뒤편). 4000개 계단의 끝을 알리는 숫자판(오른쪽).

인터뷰 | 육군 12사단장 장경석 소장

“적 포격 도발? 즉각 응징 자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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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본부(합참) 합동작전과장을 지낸 12사단장 장경석 소장은 군내에서 알아주는 합동작전 전문가다. 한미연합작전계획 작성에 참여하고 군 상부구조 개혁 작업의 실무장교로도 활약했다. 지난해 5월 부임한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GOP 부대 진입로 포장이다. ‘도로가 곧 복지’라는 신념으로 험하기 짝이 없는 비포장 산길에 아스팔트를 깔았다.

“도로가 좋으면 병력이 신속히 이동할 수 있고 보급품 공급도 수월하다. 폭우나 폭설이 내리면 병사들이 도로 보수나 제설작업 하느라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 포장도로는 그런 수고를 덜어준다. 부임 직후 ‘격오지 부대’인 사천리중대를 방문했는데, 그 힘든 계단길을 병사들이 매일 오르내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

12사단이 가장 중점을 두는 훈련은 적의 포격도발에 대응하는 훈련이다. 장 사단장은 “질적으로는 우세하다. 전혀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적 포탄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곧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응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신세대 병사들의 정신력에는 문제가 없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언뜻 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책임감과 자존심이 강해 임무를 명확히 알려주기만 하면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예절교육도 그가 역점을 둔 업무 중 하나다. 병사들에게 지속적으로 언어순화 및 인성교육을 한 결과 지난해 동기(同期)에 비해 군기사고가 절반이나 줄었다고 한다.


# 제4땅굴과 가칠봉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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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 병사들이 키우는 화분.

시설을 둘러보니 과연 열악하다. 워낙 비좁아 전방 병사들의 낙(樂)이라 할 만한 족구할 공간도 없다. 상황실, 식당, 생활관 등 모든 시설이 일반 소초보다 작다. 침상도 2층 침대가 아닌 구형 마루다. 저녁식사를 마친 병사들이 옹기종기 앉아 IPTV로 ‘구가의 서’라는 드라마를 시청했다. 이 드라마 여주인공인 수지는 요즘 병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많은 배우다. 야간근무하는 병사는 새벽 5시에 돌아와 조식 후 잠을 잔다. 이동혁 상병은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잠을 끊어 자는 것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취재진은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 선반에 모든 병사의 이름과 사진이 붙은 화분들이 놓여 있다. 대대 차원에서 벌이는 ‘1인 1생명 가꾸기’ 캠페인이다. 김 중위는 “병사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 대화와 소통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오후 8시가 넘자 완전히 어두워졌다. 주간 오후 근무자들이 귀대할 즈음 취재진은 다시 계단을 걷기 시작했다. 10여 분 걷자 마침내 ‘4000’이라고 적힌 계단이 나타났다. 여기서 회군하기로 했다. 되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잠시 후 경계등이 하나둘 켜지며 철책 주변 어둠을 몰아낸다. 불꽃의 향연.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경계등의 행렬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불사다리 같다. 그것이 분단의 절망을 통일의 희망으로 바꾸는 예광탄이길 소망한다.

내리막 계단이 이어지는 하산길은 조금 힘들었다. 허리 근육이 땅기고 무릎이 욱신거려 걸음을 천천히, 그리고 옆으로 내디뎌야 했다. 병사들은 이 계단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오르내리건만…. 멀리서 야간사격 소리가 들려온다.

밤 10시 7분.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사천계곡 물소리가 우렁차다. 중대본부에서 차를 타고 10분쯤 가다가 포장공사 중인 도로 입구에서 내려 20분쯤 걸었다. ○○소초 앞에 다른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숙소인 천도회관 입구에 도착하니 자정이다. 일행은 인근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서 마신 후 헤어졌다.

다음 날 오전 연간 10만 명이 방문한다는 안보관광지 을지전망대에 올랐다. 남쪽으로는 6·25전쟁 격전지인 펀치볼(Punch Bowl)이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모택동 고지, 스탈린 고지 등 북한 지역 고지들과 GP들이 눈에 들어온다. 펀치볼은 전쟁 중 외국인 종군기자가 이 지역 형상이 화채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가칠봉, 대무산, 도솔산 등 1000m 이상 산들에 둘러싸인 폐쇄형 분지로, 크기는 여의도 면적의 4배다.

점심식사 후 양구에 주둔하는 21사단(백두산부대)으로 넘어갔다. 마중 나온 공보장교 서용수 중위의 차에 동승해 제4땅굴부터 방문했다. 전역을 이틀 앞둔 서 중위이기에 이번 취재 지원은 마지막 임무나 다름없었다. 입구에 충견 헌트 추모탑이 있다. 화약탐지견 헌트는 땅굴 탐지 과정에 지뢰사고로 죽었다. 수중 지뢰라 냄새를 못 맡았던 것이다. 헌트의 희생으로 병사 11명의 사상을 막을 수 있었다. 군 당국은 헌트를 소위로 추서했다.

길이 2052m인 제4땅굴은 1990년 3월 남방한계선 남쪽에서 발견했다. 땅굴 안은 바깥 더위를 한순간에 날릴 만큼 서늘했다. 천장은 낮고 양쪽 벽은 암반이다. 천장과 벽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전동차는 남방한계선까지만 운행했다. 그 안쪽은 비무장지대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반인 접근이 차단된다. 새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양구군 펀치볼 마을

인삼 등 재배…집집마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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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볼 경작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왼쪽). 김원배 이장.

펀치볼이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양구군 해안면에는 약 450가구 1800명이 산다. 원래 민통선 안쪽에 있었으나 민통선이 북상(北上)하는 바람에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일부 지역은 여전히 군 작전구역에 포함돼 건물 신축이 제한된다. 8세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김제운(54) 씨는 “등화관제가 없어지고 영농한계선이 올라가는 등 과거에 비하면 불편함이 많이 해소됐다”면서도 “아직도 불필요하게 접근을 막는 곳이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지역 경작물 중 수익이 높은 것은 인삼과 하우스 과일이다. 집집마다 일손이 달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특히 태국인이 많다. 규정대로라면 고용노동부에 신청해 합법적으로 채용해야 하지만 절차가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불법 체류자도 종종 고용한다. 김원배(52) 현2리 이장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수시로 나와 잡아간다”며 “당국에 신청해봐야 인력 공급이 잘 안 된다”고 고충을 호소했다.

전쟁 상흔이 깊은 지역이라 그런지 주민들은 통일에 대해 별 기대감이 없다. 김제운 씨는 “통일하면 나라 경제가 더 후퇴할 것”이라며 “차근차근 준비해 천천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원배 이장도 “통일비용을 남한이 다 부담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통일보다 현 상태로 평화를 유지하는 게 더 좋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 산 정상에서 미스코리아 선발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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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땅굴 추적과정에서 죽은 탐지견 헌트 소위.

오후 2시. 가칠봉에 올랐다. 해발 1242m인 가칠봉관측소는 동부전선 GOP 부대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인근 을지전망대와 마찬가지로 이곳은 원래 비무장지대 내 아군 GP였다. GP가 관측소로 바뀐 이유는 북한군이 북방한계선을 남쪽으로 추진한 것에 대응해 남방한계선을 북쪽으로 밀어 올렸기 때문이다. 가칠봉관측소 후방으로는 펀치볼이, 측면으로는 그 유명한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이 자리 잡고 있다. 정면으로는 김일성 고지, 모택동 고지 등 북한 지역 군사요충지가 보인다.

1951년 6월 휴전회담이 시작된 후 이 지역에서는 땅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야말로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는 혈전이었다. 펀치볼 전투에서는 국군 1해병 연대와 미군 제1해병사단이, 가칠봉 전투에서는 국군 5사단이, 피의 능선 전투에서는 국군 5사단 36연대가 미군 2사단에 배속돼 싸웠다. 미군 2사단이 주도하고 프랑스군이 참여한 단장의 능선 전투는 6·25전쟁 중 미군이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싸움으로도 유명하다. 양측 사상자가 3만여 명에 이르고 미군이 쏜 포탄이 20만 발이 넘었다니 그 치열함을 짐작할 수 있다.

가칠봉관측소를 지키는 ○○대대 ○○중대장 이강윤 대위는 전투훈련을 지휘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는 애로사항을 묻자 “외롭고 쓸쓸한 곳이지만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며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적의 도발이 없어 응징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한국군 장교의 기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칠봉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시설이 있다. 1990년대 초반 미스코리아 후보들이 심사를 받았던 야외수영장이다. 후보들은 이곳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북한군의 넋을 빼앗았다. 일종의 대북심리전이었던 셈. 안내를 맡은 장교는 “당시 북한군은 물론이고 우리 병사들도 난리였다”고 귀띔했다. 이 별난 행사는 이진삼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행사에 참여했던 미스코리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배우 이승연 씨다. 수영장은 현재 병사들이 족구장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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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후보들이 대북심리전을 벌였던 가칠봉 야외수영장(왼쪽). 적을 향해 포를 겨눈 가칠봉소초 병사들.

# 내 심장은 철책선 위에서 뛴다

방탄조끼를 입고 천봉관측소와 가칠봉관측소 일대 철책을 따라 걸었다. 21사단은 기자가 대학 2학년 때 전방입소훈련을 했던 부대이기도 해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그때는 그렇게 무섭게 보이던 초병들이 지금은 얼마나 앳되게 보이는지.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다. 철책길 바닥에 양철판을 깔아놓은 게 눈에 띈다. 야간에 적이 철책을 침투할 경우 양철판 소리로 그 징후를 알 수 있다. 북한군 초소와의 거리는 가깝게는 750m밖에 안 된다. 지난해 9월 투입됐다는 한 초병은 “날씨 좋은 날엔 적군 말소리도 들린다”고 했다. 이재석 일병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이런 데서 근무해봐야 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광개토소초 외벽에는 피탄 흔적 2개가 있다. 적 초소에서 날아온 총탄 자국이다. 플래카드에 적힌 ‘내 심장은 철책선 위에서 뛴다’는 구호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복도 게시판에 붙은 모범용사(홍성연 일병) 소감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앞으로 적을 찾고 잡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운무가 눈사태처럼 북한 쪽 고지들을 차례로 덮어간다. 이곳에 안개가 완전히 걷힐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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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칠봉관측소에서 내려다본 펀치볼 마을. 왼쪽 철책길 너머 멀리 을지전망대가 보인다.





주간동아 2013.07.08 895호 (p44~48)

조성식 월간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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