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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권

나는 냄새 맡는다, 고로 존재한다

‘욕망을 부르는 향기’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나는 냄새 맡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냄새 맡는다, 고로 존재한다

레이첼 허즈 지음/ 장호연 옮김/ 뮤진트리/ 284쪽/ 1만5000원

길고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면서 온몸에 달라붙을 듯한 눅눅한 습기가 공기와 함께 실려 온다. 장마가 오랫동안 이어지면 곰팡이 냄새도 계속해서 난다. 어느 곳에 가든 이 냄새를 맡으면 비가 많이 오는 계절임을 알아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의 기억은 오감을 자극하고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냄새는 그 어떤 감각 경험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기쁨과 분노를 안겨주고,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을 아프게 하며, 공포에 떨게 하고 욕망으로 안달하게 만든다. 일상의 냄새가 우리의 감정에 놀라운 영향을 미치고 기분을 바꾸어놓는다.”

20여 년간 냄새와 감정, 인지에 대해 연구한 저자는 책에서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된 ‘욕망의 감각’인 후각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과학적으로 다룬다.

냄새는 아직까지도 과학이 정확히 해명하지 못한 수수께끼 영역이다. 하지만 후각 기능이 떨어질수록 건강엔 적신호가 켜진다. 단백질, 칼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부족해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냄새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전조라고 볼 수 있다. 집안 어르신이 밥이나 국이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지구상에 수많은 냄새가 있듯,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도 다르다. 낙엽이 타는 그윽한 커피 향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컹크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샴푸 냄새를 유독 좋아하는 남자가 있고, 땀 냄새를 미친 듯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 냄새를 접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좋다’ 또는 ‘나쁘다’는 평가다. 좋은 냄새가 나면 가까이 접근하고, 나쁜 냄새가 나면 피한다.



냄새와 감정의 관계는 뇌 진화의 결과물이다. 냄새 입자는 공기 중에 섞여 있다가 콧구멍으로 들어온다. 콧구멍 속 후열이라는 좁은 통로를 지나고 후각수용체 약 2000만 개와 만나면서 파악된 냄새 정보는 뇌의 여러 부위로 확산돼 다른 중추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음식 냄새뿐 아니라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음식을 더 맛나게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냄새는 수백 년 동안 사람의 심신을 치유해왔다. 히포크라테스도 “매일 아로마 목욕을 하고 향기 마사지를 받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며 냄새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무엇이 좋은 냄새이고 나쁜 냄새인지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달랐다. 문화적으로 좋은 냄새로 분류된 향기는 치유력이 있다고 여겨졌고, 나쁜 냄새로 분류되면 해로운 것으로 인식됐다.

오늘날 향기요법은 항균 및 소염 작용 외에도 기분과 행동을 바꿔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으로 각광받는다. 백단향은 불안, 우울증, 불면증 치료에 좋고, 라벤더는 기운을 북돋우면서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증을 줄여준다. 페퍼민트는 정신이 들게 하고 원기회복에도 좋다고 알려졌다.

“페로몬은 냄새가 날 수도 있고 전혀 안 날 수도 있다. 후각계가 아니라 ‘서골비기관’이라는 별도의 구조물에서 포착하고 처리하기 때문이다.”

냄새는 성(性)과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특히 페로몬은 ‘흥분을 운반하는 매체’로 은밀하게 유통돼왔다. 한 동물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이 같은 종에 속한 다른 동물들의 생리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쉽게 설명이 안 된다.

현대인에게 냄새는 음식과 함께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정 음식을 두고 문화마다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치즈에 구역질을 내는 아시아인, 청국장에 코를 막는 유럽인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보통 냄새를 두 번 맡는다. 먼저 음식을 입에 가져갈 때 코로 냄새를 맡는데 이를 ‘정비측 후각’이라 한다. 그리고 음식물을 입안에 넣었을 때 냄새가 입천장을 통해 거꾸로 비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후비측 후각’이라고 한다.

과학 발달에 힘입어 후각의 기본적인 해부·생리 구조는 대부분 밝혀졌지만 냄새 마법의 실체 규명은 아직 초보 단계다. 향기로운 냄새가 사라진 세상? 생각만 해도 삶이 허전하고 팍팍한 느낌이다.



주간동아 893호 (p72~72)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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