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3

2013.06.24

외아들 잃은 남모를 상처 약물 오·남용 방지로 승화

할리우드 배우 폴 뉴먼

  • 고영 소셜컨설팅그룹 대표 purist0@empas.com

    입력2013-06-2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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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은 어느 정도일까. 외아들일 경우 슬픔은 배가되고 쓰라린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부모에게 아픔이요, 치욕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폴 뉴먼(1925~2008)은 놀라운 답을 했다. 그를 할리우드 영화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의 숨겨진 두 이야기를 안다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듯하다.

    1980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뉴먼은 샐러드드레싱을 만들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흥얼거리며 만든 샐러드드레싱은 아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렇게 만들고 남은 샐러드드레싱을 이웃과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는데, 이것을 먹어본 작가 친구가 판매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샐러드드레싱 사업 시작

    뉴먼은 어리둥절했지만 재미 삼아 사업 아닌 사업을 시작했다. 샐러드드레싱을 병에 담아 팔기로 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제품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100% 천연재료로 만든 샐러드드레싱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폴 뉴먼이란 유명 배우가 만들기도 했거니와 방부제가 없는 몸에 좋은 샐러드드레싱은 첫해에만 92만 달러(약 10억 원)의 판매액을 달성했다. 그는 곧 배우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뉴먼은 예상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첫해부터 ‘해마다 모든 수익금을 기부하고 재투자를 받는다’는 원칙을 세운 뒤 이를 실행에 옮겼다.

    사업 품목은 스파게티 소스, 레모네이드, 애완동물 간식으로 확대됐고, 급기야 미국 전역에서 ‘뉴먼스 오운’이란 상표를 붙인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뉴먼의 손과 땀으로 만든 믿을 수 있는 제품 ‘뉴먼스 오운’은 이후 수많은 대형마트로부터 콜을 받는다. 초상권을 포기한 뉴먼은 자신이 직접 만든 제품 상표에 자기 얼굴을 내걸었다. 그가 노력한 만큼 매출과 수익도 늘어났다.



    외아들 잃은 남모를 상처 약물 오·남용 방지로 승화

    폴 뉴먼은 제품 상표에 자기 얼굴을 내걸고 스파게티 소스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후 뉴먼은 어린이들에게 그 많은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남모르는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뉴먼스 오운’이 탄생하기 4년 전인 1978년 뉴먼의 외아들 스콧이 약물남용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비통함에 잠긴 채 수년을 보낸 뉴먼은 일 생일대의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돈으로 1980년 청소년 약물 오·남용을 예방하는 재단인 스콧 뉴먼 센터를 만들었고, 2년 뒤 설립한 ‘뉴먼스 오운’을 통해 얻은 수익 전액을 청소년 약물 오·남용 방지 프로그램에 기부한 것이다.

    “저는 지금까지 남다른 행운을 누려왔습니다. 반면 일부 어린이는 운명의 가혹한 장난으로 특권을 박탈당한 채 살고 있습니다. 우연히 특권을 누리게 된 우리가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이제까지 누려보지 못한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완성된 인간으로 존경받다

    1985년 뉴먼은 늘어난 판매 수익금으로 ‘벽 속의 구멍 갱단(Holl in the Wall Gang) 캠프’를 만든다. ‘벽 속의 구멍 갱단’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나왔던 은행강도들의 비밀 은신처 이름.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려고 붙인 이름으로, 병마와 싸우느라 고통 받는 어린이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였다. 특히 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산골짜기 캠프는 뉴먼이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급격하게 성장한다. 이후 이 캠프는 8년 만에 미국 31개 주와 해외 28개국에 지부를 둔 거대한 국제 아동 지원기구로 발전했다.

    뉴먼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뉴먼스 오운’에서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 그가 ‘뉴먼스 오운’에서 벌어들여 기부한 금액은 3억7000만 달러(약 4000억 원)에 이른다. 미국 내 전문 식품회사보다 더 많이 기부한 것이다. 뉴먼은 “다른 명사들이 자신의 기사가 실린 신문을 스크랩할 때 나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뉴먼이 그렇게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믿고 지지해준 아내의 공이 컸다.

    “집에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데 왜 밖에서 햄버거를 먹겠느냐”는 유명한 말을 남긴 뉴먼. 그는 반세기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종종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모든 성공은 가정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했고 미국의 높은 이혼율을 질타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10회와 두 차례 수상,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베를린국제영화제 연기자상, 2006년 미국 배우 조합상 TV영화·미니시리즈 부문 남자연기상, 2006년 제6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TV 부문 남우조연상 등을 수상한 그는 이 모두 결과가 아내와의 화목한 관계 속에서 가능했다고 말해왔다.

    뉴먼은 누구보다 더 많이 누리고, 더 큰 영예를 얻으며, 더 호화롭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가난하고 헐벗은 자를 위한 친구로 기억되길 원한다”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캠프에서 보내며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배우로서의 직업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활용해 아이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늘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멋진 아버지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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