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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형 연재소설

아홉 마디 @오메가

제3화 섹스 앤드 뮤직

아홉 마디 @오메가

# 삼 년 전이지만 아직 생생하다.

“한 대리,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 김 부장의 질문이었다.

“일 년 지났습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혹시 말이야, 2세 계획 없어?” 그는 다시 물었다.

“글쎄요. 서로 바빠서…. 견우와 직녀 신세인걸요.”



“그래? 좋은 선물 하나 보내줄게. 유용하게 써봐!”

“제게요?”

“아니, 오서방에게.”

김 부장이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그의 습관이다. 오서방은 한방미의 남편이다. 김 부장과 오서방은 나이 차이는 있지만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란다.

“하실 말씀이라도….”

“아니 됐어. 가봐.”

방미는 그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그리고 남편에게 보낸 선물이 뭔지 지금까지 알지 못한다.

# 생각의 시계바늘은 시공을 초월한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고, 순간이동도 마다 않는다. 현재 시간은 오후 2시, 장소는 방미의 자동차 안이다.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곡을 타고 과거가 비집고 들어온다.

그날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잔잔한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선 채로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남편이 거실 저편에서 걸어왔다. 방미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자기 오늘 멋지다.”

테이블 위에는 장미향이 나는 바바 로제타 와인이 놓여 있었다. 남편은 오븐에서 라사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와인 잔으로, 치얼스! 방미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은 그윽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한 입, 그리고 와인 잔을 다시 채우고 거실로 향했다.

음악은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로 바뀌어 있었다. 남편에게 그런 낭만적인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재즈는 섹스를 위한 음악이라고 했던가. 방미의 손이 그의 손을 찾고 있었다. ‘이 멋진 세상에서(What A Wonderful World)’가 끝나기도 전에 남편 어깨에 얼굴이 기울어졌다.

루이 암스트롱의 ‘그것보다 뜨겁게(Hotter Than That)’로 넘어간다. 남편이 방미의 손을 잡고 마주 본다. 그의 얼굴이 방미를 향해 다가온다. 방미는 훅 하고 숨을 빨아들인다. 그의 입술이 방미의 입술에 닿는다. 둘은 음악과 하나가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키스해주세요 빨리(Kiss Me Quick)’가 거실을 떠다니며 분위기를 달군다.

키스해주세요, 빨리(Kiss me quick)… 너무 사랑하니까요(Because I love so)… 내 마음을 미치게 만드는군요(Make my heart go crazy)… 키스는 천국의 문을 열어요(Kiss will open heaven’s door)….

방미와 오서방의 옷이 소파 아래로 하나 둘 떨어져 내린다. 촛불 조명이 켜진다. 둘 사이로 부드럽게 ‘사랑해줘요(Love Me Tender)’가 흐른다.

부드럽게 사랑해줘요(Love me tender)… 달콤하게 사랑해줘요(Love me sweet)… 오래오래 사랑해줘요(Love me long). 당신은 내 사랑이라고 말해줘요(Tell me you are mine)….

둘은 음악에 맞춰 황홀한 밤을 보냈다. 그 한 방의 사랑으로 멋진 작품이 나왔다. 그 녀석 이름은 오한방! 우리 나이로 네 살이다.

# 아이들 뛰노는 모습은 천진스럽다. 계집아이 하나가 그네로 향한다. 사내아이는 미끄럼틀을 탄다. 착지하면서 살짝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 재밌다!”

그네 타던 아이도 미끄럼틀로 향한다. 번갈아 미끄럼틀을 몇 바퀴 돌다가 사내아이는 자동차로 향한다. 페달을 밟고 놀이터의 작은 도로 위로 자동차를 몬다. 교차로가 보이자 차를 세운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친다.

“초- 록- 불-.”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진다. 아이는 다시 신나게 페달을 밟는다. 향한 곳은 작은 집이다. 오한방. 그의 문패가 붙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뛰어든다. 책을 집어 들고 문밖을 나선다. 한쪽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던 여자가 박수를 친다.

“오한방, 참 잘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돌린다.

“아, 엄마다!”

달려오는 폼이 씩씩하다. 엄마에게 덥석 안긴다. 그는 마음과 몸이 유난히 뜨겁다. 녀석의 체온이 다시 시계바늘을 삼 년 전으로 급하게 돌린다.

아홉 마디 @오메가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 주판수는 회사를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문자메시지 한 번, 전화 한 통 없었다. 익히 알았지만 그는 나쁜 남자다. 방미에게 주판수와 함께한 직장은 일터 이상의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었다.

전화 한번 해볼까, 하다가 그만둔 적이 수없이 많았다. 그 덕분에 그가 앉던 책상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점심 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청바지 차림의 낯선 여직원이 눈에 띄었다. 그녀가 방미의 책상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손세미입니다.”

“반가워요. 수익률 게임에서 1등한 아마추어 고수, 손세미 맞지?”

“고수라뇨. 멀었습니다.”

“금융시장의 미래를 어떻게 봐?”

“흐름을 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 유망 종목은?”

“사모펀드를 모아 블루오션을 찾으면 대박 날 것 같은데요.”

“손세미 멋지다. 사모펀드, 그게 답이구나!”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세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미는 중얼거렸다. 사회적기업을 사모펀드로, 그게 블루오션이구나. 세미, 쟤 무섭다, 정말!

# 테이블 위 휴대전화가 요동친다. 전화를 받는 순간 생각의 시계바늘이 과거에서 현재로 귀환한다. 창가 저 너머에서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방미 쪽으로 걸어온다.

“크로스 신문 강다림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유아원에 들러 아이들 뛰노는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느낌이 어땠어요?”

“문자 그대로 생활형 유아원이더군요.”

“그렇죠? 우리 유아원에선 강제로 공부를 시키지 않습니다. 놀면서 저절로 학습하는 콘셉트를 활용하죠.”

“교사 가운데 엄마나 아빠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그분들은 아이들 행동을 코칭하면서 공부도 가르쳐요.”

“생활형 유아원을 더 세울 계획은요?”

“투자자들과 의논하고 있어요. 돈벌이가 아니라 철학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게 사모펀드입니다. 유아원을 더 만들지, 유치원을 세울지 투자자들과 의논해봐야죠.”

“사모펀드, 힘들지 않으셨어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요. 근데 잘나가는 사모님 한 분을 모시자 순식간에 49명이 모였어요. 학습형 유아원이 아니라 생활형 유아원임을 외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였다고 들었는데, 유아원을 세우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임신으로 떼밀려 회사를 떠나야 할 분위기였죠.”

“임신하면 그만둬야 했나요?”

“회사에서 내게만 그 e메일을 보냈거든요. 임신 사실만 확인되면 육아휴직 조기 신청이 가능하다고요. 임신 사실은 혼자만의 비밀이었는데…. 남편도 몰랐어요.”

“회사에서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게 미스터리예요. 하늘의 별을 봐야 아기가 생기잖아요? 그날 그의 별은 환상적이었어요. 남편의 말이, 꿈을 샀다나요? 꿈을 좇아 한 거라고요.”

“꿈을 사셨다고요?”

“네, 잠잘 때 나타나는 그 꿈이요. 꿈을 산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요?”

“꿈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잘 아는 벤처기업인데 좋은 사람들이에요. 한 번 만나보시겠어요?”



주간동아 2013.06.17 892호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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