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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 여걸’ 열전

아들 셋 키워낸 억척 싱글맘

당금애기

  •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아들 셋 키워낸 억척 싱글맘

아들 셋 키워낸 억척 싱글맘

‘당금애기’ 공연 중 당금애기가 어머니와 재회하는 모습.

국내 입양아동의 90%는 싱글맘 자녀라고 한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124만 가구 이상이 싱글맘을 가장으로 두고 있다. 이들 싱글맘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은 물론 경제적 지원일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싱글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가족의 전폭적 응원이 아닐까. 남편이 없더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아이를 키운다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임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따뜻한 가족의 품. 그것이야말로 싱글맘의 든든한 의지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서사무가 ‘제석본풀이’ 속 주인공 당금애기에게는 바로 그 가족의 응원이 끊겨버렸다.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하게만 자란 그녀가 싱글맘이 되자, 고명딸이던 그녀를 끔찍이도 귀여워하던 아버지와 오빠들은 노발대발하며 당금애기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당금애기 내 딸이야. 어여쁘구나 귀엽구나. 아무쪼록 잘 놀아라 잘 있거라.” 당금애기 아버지가 딸을 볼 때마다 주문처럼 읊조리던 대사다.

아들 9형제와 딸 하나, 10남매를 곱게 키우던 당금애기 부모에게 어느 날 갑자기 흉사가 닥친다. 간신들이 아버지를 모함해 귀양을 가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눈물을 흩뿌리며 집을 떠난 후, 어머니 역시 아버지 귀환을 비는 3년 기도를 드리려고 집을 떠난다. 당금애기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이때 서천 서역국 금불암에서 온 제석(석가여래)이 팔도강산을 구경하다가 당금애기가 눈물로 쓴 글귀를 발견한다.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하니 산심야심(山深夜深)에 객수심(客愁心)이라.” 제석은 아름다운 문장과 글씨에 반해 그녀를 찾는다. 자신에게 쌀을 시주하면 부모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설득하는 제석에게 당금애기는 군말 없이 쌀을 시주하겠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온실 화초에서 밑바닥으로 추락



제석의 바랑에 쌀을 집어넣으려 하니, 바랑 밑이 빠져 쌀이 줄줄 샌다. 쏟아진 쌀을 비질해 담아주니, 비질한 쌀은 절대 안 받겠다면서 당금애기가 직접 쌀을 하나하나 젓가락으로 집어 담아줘야만 시주를 받겠다고 한다. 제석은 당금애기에게 자꾸 괴로운 미션을 제안하면서 계속 자신을 ‘신경 쓰이는 존재’로 만든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밤이 되자 잘 곳이 없다며, 꼭 이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제석의 빤한 술수. 얌전한 규수로 자란 당금애기는 ‘부모의 무사귀환’을 무기 삼아 온갖 사탕발림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제석의 현란한 화술에 넘어가고 만다.

그날 밤 당금애기 꿈에는 온갖 에로틱한 상징이 총출동한다. “천상선관이 내려와서 구슬 세 개를 주기에 그걸 받아 보니, 몸두 곱고 빛두 좋아 손에 담뿍 쥐여두 보고, 입에 담뿍 물어두 보구, 옷고름에 넣어두 보고, 허리춤에 넣어두 보다 깨어 보니 꿈이더라.” 제석은 자기 이름과 주소를 밝히며, 언젠가 자신을 꼭 찾아오라고 당부하고는 당금애기 집을 떠난다. “나는 서천 서역국 금불암에 사는 중이오. 이름은 석가여래, 나이는 갑자생, 생일은 사월 초팔일 오시 탄생이니 잊지 말구 찾이시오.”

그날 밤 당금애기가 꾼 꿈은 바로 태몽이었다. 이후 제석의 약속대로 부모는 무사 귀환했지만, 딸의 임신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안색을 싹 바꿔 그녀를 핍박한다. 아버지는 당금애기를 “당장 죽여버리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 오빠들도 노발대발하며 당금애기를 동생 취급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머니만은 “그다지 어엿버라 구여워라 하던 딸을 죽이랴구”라며 당금애기를 감싼다. “금수도 제 새끼를 제가 아니 죽이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내 자손을 내 손으로 살해하시렵니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구슬려 당금애기를 토굴에 숨긴다.

“당금애기 처량하도다. 후원별당을 버리구서 후원동산 토굴 속에 가서 누워 생각하니 기맥히도다. 그러나 저러나 한편 생각하니 편하기가 한량없다. 죽기 않으면 살기로다. 살기 않으면 죽기로다. 단지 두 가지 마음밖에 없으니 편하기가 한량없네.”

아들 셋 키워낸 억척 싱글맘

‘당금애기’ 공연 중 당금애기가 토굴에서 아들 셋을 낳는 장면.

호의호식하며 고생 모르고 살아왔던 당금애기는 졸지에 싱글맘이 됨으로써 세상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온갖 고민을 끌어안고 살다가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는 경지. 그녀는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된다. 아버지 몰래 토굴로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에 힘입어 당금애기는 아들 셋을 한꺼번에 낳아 열심히 키운다.

세 아들이 자라 아버지를 찾자 당금애기는 그제야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아들들은 먼저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당당히 따진다. “나는 딸이 없는 사람이라 외손도 없단다”고 주장하는 외할아버지에게 당금애기 아들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머(너무)허셨지요. 어찌 사람을 토굴에 몇몇 해를 살구신단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이 나라를 누리고 계신 왕이라면서, 그다지 하시면 백성들이야 더욱 말할 것 있습니까?” ‘오직 내 말만 들어야 진짜 딸’로 인정하는 아버지, ‘내 말을 거역하면 딸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매트릭스에서 당금애기는 자기 힘으로 탈주한다.

천신만고 끝에 가족 상봉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명산대천 금불암을 찾아가서 보니, 제석이 홀로 도를 닦으며 염불을 외고 앉아 있다. 세 아들을 모른 척하며 염불만 외는 제석을 보자 그녀는 눈물이 핑 돈다. “너무하시는구려. 무슨 품앗이요? 앙갚음이요? 분명히 내가 살아 여기까지 찾아오느라고 고생을 얼마쯤 하였는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들을 낳아서 칠년 동안 고생한 생각을 하여서두 그다지 못하리다.”

그제야 당금애기와 세 아들을 알아본 제석은 자신의 무심함을 뉘우치며 자식들을 껴안고 당금애기 손을 맞잡는다. “칠 년 동안 고생 많이 하셨구려. 그 죄는 모든 죄가 내 죄로다. 용서하시오.”

구전되는 지역마다 결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천신만고 끝에 상봉한 가족은 신성을 부여받아 인간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당금애기로서는 자신을 딸로 받아주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 아버지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세 아들을 무사히 키우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기적이었다. 이 이야기의 감동은 고통을 견뎌낸 당금애기의 ‘고요함’에서 흘러나온다. 심리학자 프리츠 쿤켈은 “끝없이 고통 받는 사람을 끌어낼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어떤 고통은 혼자서 견뎌내야만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기적이 만들어지는 시간, 영혼의 마그마가 조용히 들끓는 시간이다.

사진 제공·마당극패 우금치



주간동아 2013.02.18 875호 (p60~61)

정여울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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