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5

2013.02.18

20세기 호피선지(虎皮宣紙) 완당이 사용할 턱이 있나

김정희 선생 종이 선택도 깐깐…표백제 뿌려 시대 위조 수두룩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3-02-18 11: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0세기 호피선지(虎皮宣紙) 완당이 사용할 턱이 있나

    그림1 20세기 빈랑호피선지에 쓴 김정희의 가짜 ‘연식첩’.

    서울에 인사동이 있다면 중국 베이징에는 류리창(琉璃廠)이 있다. 중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것이다. 미술품 감정을 공부하는 필자에게 그곳은 살아 있는 교실이나 다름없었다. 1993년 가을부터 줄곧 류리창을 찾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많은 중국인과 친구가 됐다. 당시 류리창 롱바오자이(榮寶齋)에 근무하던 슝보치(熊伯齊) 선생에게 서화작품에 찍는 도장 파는 법(전각·篆刻)을 배우기도 했다.

    류리창에는 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대부분 있었다. 미술품 경매회사, 화랑, 골동품 가게, 문방사우 상점, 전각 돌 가게, 서점…. 그래서 공부하기에 딱 좋았다. 물건을 사기 전에는 반드시 도판이 많이 실린 관련 전공 책을 샀다. 그런데 종이, 붓, 먹과 관련한 책은 찾기가 쉽지 않았을 때라 상점에서 직접 실물을 보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중국산 화선지도 많이 봤고 구매도 했다. 그때 산 것 가운데 하나가 중국에서만 생산한, 종이 문양이 호피(虎皮)와 비슷한 ‘호피선지(虎皮宣紙)’다.

    20세기 호피선지(虎皮宣紙) 완당이 사용할 턱이 있나

    그림2 빈랑나무 종자를 자른 단면.

    미술사가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김정희(1786~1856)의 좋은 종이 고르기가 “사람을 질리게 한다”면서 2002년 쓴 ‘완당평전2’와 2006년 쓴 ‘김정희 :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완당(김정희)은 종이 선택에도 매우 섬세하게 신경 썼다. 자신의 작품에 걸맞은 아름다운 종이를 고르기도 했고, 붓에 잘 받는 종이, 먹을 잘 받는 종이를 그때그때 면밀히 검토해보곤 했다. 완당이 좋은 종이를 얼마나 좋아했고, 중국제 화선지를 얼마나 애용했는가는 그의 ‘연식첩’(그림1)이라는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얼렁뚱땅하는 거장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동아시아의 위대한 서예가 김정희도 예외 없이 까다로웠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식첩’이 중국에서 1910년경부터 생산한 호피선지 변종인 ‘빈랑호피선지’에 쓰였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가 생전에 이 종이를 썼을 리 만무하다. 빈랑호피선지는 무늬가 마치 빈랑나무(betel palm) 종자인 빈랑자를 자른 단면(그림2)과 비슷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빈랑자는 우리나라에서는 한약재로 쓰며, 대만에서는 합법적으로 통용되는 마약 일종이다.



    그러니 ‘연식첩’은 20세기 위조자가 김정희의 글씨 쓰는 습관을 모르고 만든 가짜다. 김정희는 글씨를 쓸 때 예민했다. 준비한 종이와 붓, 먹물이 잘 어울리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는 언제나 잘 갈아놓은 먹물로 글씨를 썼다. 먹물도 쓸 때마다 깨끗하게 씻은 벼루에 새로 길어온 맑은 샘물로 먹을 직접 갈아 만들었다. 그러나 위조자는 호피선지가 먹물이 스며들지 않는 ‘명반을 진하게 입힌 종이’인 숙지(熟紙)라는 점을 모른 채 옅은 먹물로 글씨를 썼다.

    20세기 호피선지(虎皮宣紙) 완당이 사용할 턱이 있나

    그림3 방금속산장경지와 호피선지 비교. 그림4 20세기 중국 북방지역과 남방지역의 호피선지 비교.

    중국산 ‘호피선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져 어디에 쓰인 종이인가. 전해지는 설에 따르면, 호피선지는 청나라 때 종이 만드는 공방에서 한 일꾼이 실수로 황색 종이에 백회(白灰)물을 튀게 해 우연히 탄생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얘기다. 호피선지는 사실 누가 만들었는지보다 왜 유행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필자는 청나라 건륭제(재위 1735~1795)가 관지국(官紙局)에 명해 만든 ‘방금속산장경지(倣金粟山藏經紙)’를 민간에서 모방한 게 바로 호피선지라고 본다(그림3). 방금속산장경지는 주로 황궁에서 불경을 베끼는 데 사용했다. 방금속산장경지는 송나라 시대 최고급 종이인 ‘금속산장경지(金粟山藏經紙)’를 온갖 방법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종이다. 검증에 합격한 종이에만 빨갛게 ‘건륭년방금속산장경지(乾隆年倣金粟山藏經紙)’라는 도장을 찍었다.

    20세기 호피선지(虎皮宣紙) 완당이 사용할 턱이 있나

    그림5 20세기 호피선지로 만든 제첨. 그림6 1909년 생산한 빈랑호피선지에 쓴 글씨. 그림7 20세기 빈랑호피선지에 쓴 김정희의 가짜 ‘서원교필결후’ 중 제24면. 그림8 20세기 빈랑호피선지에 쓴 섭지선의 가짜 ‘서찰’.

    20세기 호피선지(虎皮宣紙) 완당이 사용할 턱이 있나

    그림9 20세기 빈랑호피선지에 쓴 조희룡의 가짜 ‘녹조안’.

    호피선지는 가공할 종이 위에 표백제를 뿌려 만든다. 문양은 북방과 남방이 조금 다르다. 대체로 북방지역은 두꺼운 종이에 명반 물을 표백제로 사용해 은은한 데 비해, 남방지역은 얇은 종이에 찹쌀 물을 표백제로 사용해 명쾌하다(그림4). 일꾼이 한 손에 표백제를 묻힌 솔을 잡고, 나무 조각을 든 다른 한 손으로 솔을 가볍게 두드려 준비된 종이 위에 표백제를 뿌린다. 이를 말리면 표백제가 묻은 부분이 퇴색해 마치 호랑이 가죽 같은 무늬가 만들어진다.

    호피선지는 붓글씨뿐 아니라 서화작품 표구, 제목을 종이에 써서 표지에 붙인 ‘제첨(題簽)’ 등으로도 쓰였다. ‘그림5’는 1911년 중국 상하이 유정서국(有正書局)이 ‘오창석인보’의 제첨으로 호피선지를 사용한 것이고, ‘그림6’은 1952년 오세창(1864~1953)이 1909년 생산한 빈랑호피선지에 글씨를 쓴 것이다.

    20세기 생산한 빈랑호피선지에 위조된 가짜는 상당히 많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정희의 ‘서원교필결후’ 중 제24면(그림7), 영남대 도서관이 소장한 섭지선(葉志詵·1779~1863)의 ‘서찰’(그림8), 2004년 제86회 서울옥션 100선 경매에 조희룡의 ‘서간’으로 나왔다가 표구를 바꿔 2008년 서울 예술의전당 기획 명가명품 시리즈 아라재컬렉션 조선서화 ‘보묵’전에 나왔던 조희룡의 ‘녹조안’(그림9)이 그렇다.

    분명한 것은 작가가 죽은 뒤 생산한 종이에 쓴 작품은 가짜라는 점이다. 우리는 베이징 류리창에서 옛날 종이와 비단, 먹, 안료는 물론, 옛날에 표구한 빈 족자까지 구할 수 있다. 필자도 오래된 종이와 비단을 갖고 있다. 옛날 종이나 비단에 그린 그림이나 글씨라고 해서 반드시 옛날 것은 아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