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7

2012.12.17

위법 절차로 녹음, 증거능력 없어

선관위 함정 단속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2-12-17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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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4·11 총선 과정에서 선거운동 봉사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자원봉사자가 받은 400만 원이 유급사무원 월급 명목이라고는 하나, 유급사무원 업무 가치가 400만 원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는 부분은 선거운동에 따른 금품으로 볼 이유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단순한 호의에 의한 선거봉사가 아니라 묵시적으로 금품 제공 약속을 받고 선거운동을 했다고 본 것이다.

    한편 검찰은 당초 이 국회의원에게 기부행위 약속 혐의도 적용했는데,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선거관리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위법한 절차에 따라 얻은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일종의 ‘함정단속’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제보를 받은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측이 제보자에게 범죄혐의를 담은 통화 내용을 녹음하도록 했다고 한다. 한 언론에 보도된 선관위 직원과 제보자 간 대화 내용이다.

    선관위 직원 : 그러면 ‘한 2년 동안 넣어주실 겁니까? 어떻게 할 겁니까?’ 물어봐야지. ‘그래, 그러면 3000만 원 들어간 것 내가 그동안 봉급을 줄게’ 이 얘기가 딱 들어가야 돼.

    제보자 : 알겠습니다. 제가 녹음을 해오겠습니다.

    선관위 직원 : 그게 제일 좋은 증거예요, 제가 볼 때는.



    이에 대해 선관위 측은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려고 제보자를 안내했을 뿐이라면서도 향후 선거사범 단속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함정수사란 범죄의사가 없던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죄의사를 유발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수사방법이다. 수사기관이 관여한 것을 전제로 판례에서 인정한 개념이지만, 이미 범죄의사를 가진 자에게 범행을 저지를 기회를 주어 검거한 경우는 함정수사가 아니다. 하지만 기소된 범죄행위 자체가 함정수사로 유발된 것이라면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가 돼 공소가 기각된다. 또한 이미 발생한 범죄행위에 대한 증거수집에 함정수사가 동원됐다면 위법한 수집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어지고, 그 외 다른 증거가 없으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관위 함정단속 사례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함정수사는 마약범죄 등 조직범죄 수사에 주로 이용되지만, 함정수사로 판단돼 공소기각이 선고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필로폰을 매수하거나 밀수입할 의사가 전혀 없었는데, 수사기관으로부터 필로폰을 좀 구해달라거나 필로폰을 구입해오면 검찰에서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구매 자금까지 받아 필로폰을 매수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경찰관이 노래방 도우미 알선영업 단속실적을 올리기 위해 그에 대한 제보나 첩보가 없는데도 손님으로 가장하고 들어가 도우미를 불러낸 경우 또한 위법한 함정수사로 규정하고 공소를 기각한 판례가 있다.

    반면 오로지 공무원을 함정에 빠뜨릴 목적으로 직무 관련 형식을 빌려 공무원에게 금품을 공여했는데 그 공무원이 금품과 직무 관련성을 인정하고 받은 경우, 함정수사가 아니라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 수사기관이 정보원을 이용해 범인을 검거장소로 유인하거나, 범죄사실을 인지하고도 범인을 바로 체포하지 않고 추가 범행을 지켜보다 범죄사실이 늘어난 뒤 체포하는 것도 함정수사로 보지 않는다.

    범죄행위를 적발하거나 증거수집이 매우 곤란한 대형 조직범죄 수사에서는 일부 함정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수사담당자의 실적 때문에 무리한 수사가 횡행한다면 공권력의 위신이 실추되고 오히려 범죄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 등 여러 문제가 일어날 공산도 크다. 따라서 일정 요건을 벗어난 함정수사는 위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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