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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만리(茶香萬里)

부부가 한 잔씩 ‘합환주’로 딱 좋아

차술

  •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부부가 한 잔씩 ‘합환주’로 딱 좋아

부부가 한 잔씩 ‘합환주’로 딱 좋아
몸에 좋고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차술은 술과 찻잎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만들 수 있다. 좋은 차와 알코올이 어우러진 차술은 세계적인 명주가 부럽지 않다.

차꾼이 차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평소 즐기는 차 농도가 진해진다. 이를 두고 차를 “짜게 마신다”고 표현한다. 아마 술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차술은 차꾼과 술꾼의 ‘만남의 광장’일 것이다.

지금은 차술이라고 해서 따로 녹차소주를 내놓아 주당들에게 인기를 끌지만, 녹차소주를 마실 때마다 늘 좀 짰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차향 반, 소주향 반이어야 할 것이 차향이 따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좀 짜게 마시고 싶다면 복잡할 게 하나도 없다. 두 홉들이 소주의 경우, 마시기 10~20여 분 전 소주병을 따고 녹차를 2티스푼가량 넣은 뒤 뚜껑을 막아뒀다가 차가 우려졌다 싶을 때 마시면 된다. 녹차가 없다면 녹차 티백 한두 개를 통째로 병 속에 넣으면 된다. 아무래도 녹차 생잎이 더 좋겠지만.

맑은 소주에 우러나온 차색은 누르스름하기도 하고 파르스름하기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돋운다. 한 잔을 마시기 전 향기에 먼저 취한다. 차가 지닌 수십 가지 향, 그 형용할 수 없는 진향(眞香)에 알코올 향이 어우러져 코끝을 간질이는 매력이 있다.



차술은 뒤탈이 없다. 주독(酒毒)을 차가 해독해주기 때문에 깨고 나서도 머리가 맑고 간장에도 부담이 없다는 것이 주당들의 찬사다. ‘술을 깨고 잠을 적게 한다(醒酒少眠)’라는 문구를 여러 차 책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과하면 쇠한다고 했다. 차술은 어지간히 마셔도 얼큰한 취기가 계속돼 오래 흥취를 즐길 수 있다. 그 대신 만취가 돼야 술을 마신 것 같다고 여기는 주당은 차술을 피하는 것이 좋다. 차술로 만취 상태까지 가려면 평소 주량보다 2~3배는 더 마셔야 한다. 그럼 취한 상태가 오래가서 잘 깨지도 않고 숙취도 더하다. 적당히 마시면서 차술 자체를 즐겨야지, 차술로 만취를 바란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이게 차술이 가진 흠이라면 흠이다.

마찬가지로 온더록(on the rock)이라는 것이 있다. 40° 넘는 독한 양주를 얼음으로 만들어 먹거나 양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기도 한다. 독한 술을 희석한다는 원리겠지만, 차술로 얼음을 만들거나 차술에 얼음을 넣어 마셨다가는 역시 화를 당한다. 웬만큼 마셔도 취기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술은 차와 알코올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독특한 향이 좋아 어쩌다 한 번 마시는 것이 좋다.

차 산지에서는 생엽을 바로 소주에 넣고 차색이 우러나면 마신다. 이슬 맛처럼 신선하고 청량하다. 붉은색의 술을 즐기려면 발효차나 홍차를 넣으면 된다. 찻잎이 작기로 유명한 중국산 군산은침이나 벽라춘 같은 것을 술에 넣으면 잎에 달린 하얀 털이 술잔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해 마치 인어가 헤엄치는 듯하다. 백조의 호수인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선조는 회춘제로 차술을 담가 마셨다. 물론 약으로 마셨으니 폭음이 있을 리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 부부가 한 잔씩 했다. 한 되짜리 소주에 녹찻잎 30g, 설탕 30g을 넣고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한다. 일주일쯤 지나면 술이 차색을 띠고 차향이 난다. 찻잎은 건져내고 맑은 술만 마신다. 오래 두면 차향이 없어지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차에서 비타민 E, C 등이 우러나 기력을 돕는다고 한다. 굳이 이 술에 이름을 붙이라면 합환주(合歡酒)가 제격일 것이다.



주간동아 2012.12.17 867호 (p75~75)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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