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7

2012.12.17

누가 갇힌 자고 누가 위로받나

록밴드 블루잉크,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 합창단과 합동공연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2-12-17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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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갇힌 자고 누가 위로받나
    충북 청주시 흥덕구 청주여자교도소. 12월 10일 오후 국내 유일의 여자교도소인 이곳이 환호와 함성으로 뒤덮였다.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들이 주축을 이룬 록밴드 블루잉크의 두 번째 교도소 공연이 열린 것. 개그맨 출신 뮤지컬기획사 대표 백재현 씨가 11월 서울남부교도소 공연에 이어 또 한 번 재능기부 형태로 진행을 맡았고, 가수 진미령 씨와 신인 보이그룹 원더보이즈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재소자들 반응은 시작부터 폭발적이었다. 원더보이즈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에 소녀팬들처럼 “꺄악” 소리를 질러댄 이들은 블루잉크가 노래할 땐 두 팔을 높이 들어 물결을 만들거나, 빠른 박자에 맞춰 맹렬하게 손뼉을 쳤다. 진미령 씨가 서산대사의 해탈시에 멜로디를 붙여 만들었다는 ‘인생’을 들려주자 일부 재소자는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허물없는 사람 없고,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노랫말에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모니 합창단과 앙코르곡 함께

    이날 공연 하이라이트는 블루잉크와 재소자 합창단 ‘하모니’가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록 버전으로 바꿔 앙코르곡으로 함께 부른 장면이었다. 마지막엔 블루잉크 리드보컬의 ‘지시’에 따라 모든 재소자가 4팀으로 나눠 목이 터져라 ‘내일은 해가 뜬다’를 외쳐댔다.

    이에 앞서 ‘하모니’는 ‘I’ll follow him’ 외 3곡을 불렀다. 동명의 영화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합창단 ‘하모니’는 재소자들의 안정적인 수형생활을 도우려고 1997년 창단한 이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등 교도소 밖에서 수차례 공연을 했다. 2006년부터 하모니를 지휘해온 조성근 목사(사진·충북 보은 백석교회)는 “합창엔 삶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면서 “합창에 필요한 협동과 절제, 조화는 재소자들에게 바른 삶의 길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합창단원 33명의 맑고 고운 목소리와 행복해 보이는 표정에서 묘한 전율이 느껴졌다. 블루잉크와 하모니가 음악으로 하나 된 그 순간, 누가 갇힌 자고 누가 위로를 받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재소자 합창단이 록 밴드와 공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누가 갇힌 자고 누가 위로받나

    ‘하모니’ 지휘자 조성근 목사.

    공연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재소자들과 호흡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들을 보면서 지금의 삶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조 목사의 말이 떠올랐다. 공연 중 재소자들에게 “여러분은 나중에 복 받을 것”이라고 말했던 블루잉크 리드보컬 조성식 주간동아 차장은 “재소자들의 밝고 해맑은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재소자는 400명이 넘는다. 전체 수용인원 600여 명 가운데 하루 8시간을 일해야 하는 재소자를 제외하면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다 본 셈이다. 교도소 내 공연 관람은 재소자 선택사항이다. 교도소 측은 “이제껏 이렇게 많은 재소자가 관람한 공연은 없었다”며 “재소자 반응도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청주여자교도소는 여자 죄수들이 모인 곳이고, 특히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현행법상 여자 재소자가 18개월 이하 아이를 두거나 수감 중 아기를 낳을 경우 생후 18개월이 될 때까지 교도소 내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 12월 10일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선 재소자 10명이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도소 안에서 영화를 찍고 여러 방송 프로그램도 촬영해서인지, 많은 사람이 청주여자교도소 하면 교도소의 험악한 이미지와 달리 유연한 분위기를 상상한다. 실제로도 교도소 환경이 무척 쾌적하고 재소자들의 표정도 밝았다. 교도관도 대부분 여성으로 230여 명 직원 가운데 남성은 51명. 간부급과 보일러기사, 운전기사 등을 빼면 재소자를 상대하는 남성 교도관은 2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재범률 낮춰 가정 해체 막아야

    최제영 청주여자교도소장은 “유일한 여자 교도소이다 보니,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중죄인까지 재소자의 죄질이 다양하다”면서 “형기가 짧은 재소자의 경우 계속 들고 나기 때문에 큰 변동이 없지만 무기수를 비롯한 장기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도 30여 명 수감돼 있다. 보이스피싱에 가담하거나 마약 밀매 등에 관여했다가 죗값을 치르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교도소 측은 얼마 전 6개 국어별로 직원들을 특별 채용했다. 청소년 범죄가 증가하면서 18세 미만 재소자(소녀수)도 20여 명이나 된다.

    재소자 유형과 처지에 따라 수감생활은 교육, 출력(노동), 치료로 구분된다. 봉제, 미용, 꽃꽂이, 한식 조리, 제빵 등 출소 후 취업전선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가 하면, 정해진 시간 동안 노동하고 일정 수입을 챙기는 재소자들도 있다. 하모니 합창단원들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간씩 연습하며, 그 외 서예나 미술, 다도 등에 참여하는 재소자들도 있다.

    죗값을 치르면서 무슨 교육을 받고 취미 활동까지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밥 한 끼 챙겨먹기 힘든 사람이 보기엔 교도소 내 쾌적한 환경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호사로 보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교도소 측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일정 공간에 갇혀 자유를 억압받는다는 점에 상당한 응보의 의미가 있다. 재소자를 엄하게만 다룬다고 범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들의 사회 적응을 더 어렵게 만든다”며 “따뜻한 교정행정과 엄정한 수용질서의 비율을 적절히 맞추는 것이야말로 교정자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여러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지켜본 한 교도관은 “여자 재소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자기 절제를 잘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정이 깨지고 아이들이 고통 받는 데 대한 죄책감을 크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교도관은 “가정 있는 남자가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가면 아내가 아이들을 건사하며 가정을 지키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가 수감되면 그 가정은 거의 깨진다”면서 “그런 점에서 여자들의 범죄 발생률을 줄이고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 가정 해체를 막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최제영 청주여자교도소장

    “재소자 심성 순화…사회적응 밀알 기대


    누가 갇힌 자고 누가 위로받나
    청주여자교도소에 부임한 지 5개월여 지난 최제영 소장(사진)은 “교정의 가장 큰 목적은 재소자들이 사회에 나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는 “블루잉크 공연을 통해 재소자들이 오랜만에 왁자지껄 웃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감사하다. 향후 이런 제안이 또 있으면 흔쾌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교정행정에서 응보와 교화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울 것 같다.

    “교도소 내 규율을 잘 따르도록 재소자들을 지도하면서 오늘 같은 공연 관람이나 재소자 장기자랑 등을 추진한다. 재소자 심성을 순화해 사회 적응을 원활히 하려는 목적에서다. 무기수나 장기수들은 수감생활 초기부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데, 합창 활동 등을 통해 노래하며 동료들과 어울리거나 종종 밖에 나가 공연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경기침체 영향이 교도소에서도 나타나나.

    “지금 뚜렷하게 드러난 바는 없지만, 외환위기 때는 수용인원이 지금보다 200∼300명 더 많았던 것으로 안다.”

    본성이 나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나.

    “환경 탓이지 사람 본성이 나빠서 죄를 짓는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소녀수들을 보면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들어왔다. 하지만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환경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교정행정을 통해 재소자들이 마음을 다잡았다가도 사회에 나가면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현재 전국 교도소 수감 인원이 4만7000여 명이다. 이들이 출소 후 재범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과 5범 이상이면 사회부적응자로 여기는데, 우리가 바라는 바는 단 한 명의 재소자라도 사회에 나가 다시는 범죄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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