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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신이여, 수도원 생활 어찌하오리까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의 ‘신의 소녀들’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신이여, 수도원 생활 어찌하오리까

신이여, 수도원 생활 어찌하오리까
2005년 6월 유럽 전역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루마니아에서 벌어졌다. 그리스정교회 소속 수도원에서 십자가에 묶인 23세 수녀가 입에 재갈이 물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 결국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신부와 동료 수녀들이 “악령을 쫓는다”며 퇴마의식을 벌이다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더 컸다. 당시 BBC 보도에 따르면, 죽은 수녀는 고아원 출신으로 다른 수도원에서 지내다 죽기 3개월 전 친구를 만나려고 사건이 벌어진 곳으로 옮겨왔다.

죽은 수녀는 살아생전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으며, 신부와 수녀들은 그것을 보고 “악령이 씌웠다”고 판단했다. 결국 퇴마의식을 주도한 신부는 살인죄로 14년 감옥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에 가담한 수녀 4명은 5~8년형에 처해졌다. 그리스정교회는 이 일을 “끔찍한 사건”이라고 표현하며 사제들에 대한 정신감정을 포함해 개혁을 약속했다. 바티칸 교황청은 1999년 “현대 정신의학을 중요하게 고려해 퇴마의식 실행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며 ‘엑소시즘(exorcism)’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BBC 기자 타티아나 니쿨레스쿠 브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죽음의 고백’을 펴냈으며, 그것을 영화화한 것이 ‘신의 소녀들’이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라는 작품으로 200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출신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했다. ‘신의 소녀들’ 역시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 등 2개 부문을 석권했다.

종교적 폭력과 억압

영화는 실제 사건과 원작 소설의 얼개를 그대로 가져오되 집단과 개인 문제, 자유의지와 종교적 계율의 충돌, 세속적 욕망과 종교적 윤리가 빚어내는 갈등을 깊이 있는 성찰로 확장했다. 이 작품에서 종교는 신 이름으로 자행되는 끔찍한 폭력과 억압의 체계로 그려진다.



도시에서 멀리 벗어나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루마니아의 한 수도원이 배경이다. 20대 젊은 여성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투르 분)가 이곳에서 수녀가 된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 분)를 만나러 오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두 여성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로,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이자 동성 연인이다. 알리나는 고아원을 나온 뒤 돈을 벌려고 독일로 떠났다가 친구를 데려가려고 루마니아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 지낸 긴 세월만큼 두 사람은 상당히 변해 있었다. 알리나는 세속 욕망과 삶의 자유를 추구하는 반면, 보이치타는 이미 신이 내린 사명에 평생을 바치기로 한 상태다.

알리나는 자신의 우정과 사랑이 보이치타에게 외면받자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킨다. “딴 사람은 필요 없어. 나한테는 네가 전부야”라며 옛 관계를 회복하고자 끊임없이 보이치타에게 접근하는 알리나. “신은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걸 주셔”라며 알리나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는 보이치타. 두 사람 사이에서 형성되는 긴장과 갈등이 조용하던 수도원을 흔들어놓고, 알리나의 발작 증세는 점차 도를 더해간다. 수도원을 운영하는 신부와 수녀들은 알리나에게 회개와 복종을 강요하지만, 알리나는 보이치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이를 말리는 다른 수녀들에게까지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신부와 수녀들은 알리나를 나무판에 쇠사슬로 묶어놓고 퇴마의식을 벌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결국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계속해서 퇴마의식을 받던 알리나는 탈진으로 숨을 거둔다.

자본주의 위기와 구원

신이여, 수도원 생활 어찌하오리까
루마니아 영화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은 1980년대 말 차우셰스쿠 정권하의 루마니아 사회를 배경으로 한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서 전체주의 망령을 불러냈다. 낙태가 불법이던 당시 임신한 여대생이 임신중절수술을 받으려고 친구와 함께 의사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비극을 그렸다. 돈과 성을 탐하는 의사와 가난한 여성을 통해 도덕과 금욕을 명분으로 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파국적인 탐욕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를 표현했다.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은 ‘신의 소녀들’에서 다시 한 번 충격적 방식의 사건 전개와 어둡고 냉정하며 극사실주의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정치라는 세속 체계가 가져온 비극이라면, ‘신의 소녀들’은 종교라는 성(聖) 제도가 불러온 파국에 대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알리나는 세속 세계인 독일에서 출발해 고립된 성지인 수도원을 찾는다. 그는 친구와 함께 독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곳에서라고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가난한 두 여성이 행복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위기 세상을 바라보는 거장의 근심이 있다고 할 것이다. 상업영화 최전선인 할리우드가 판타지를 통해 대중을 위안하는 동안 예술영화 거장들은 동시대를 근심한다.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는 거장 감독들의 신작을 통해 예술영화의 ‘현재’와 ‘시대의 영화적 반영’을 확인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이 3대 영화제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이슈를 보자.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디터 코슬릭 집행위원장은 “사회적 격변과 정치적 각성이 올해 중심 주제”라고 말했다. 5월 열린 칸영화제에서는 자본의 탐욕이 불러온 세계 위기와 지구 곳곳에서 삶이 붕괴되는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더 나아가 종교와 섹스,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제기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선보였다.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도 세계 예술영화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결국 올해 3대 영화제를 통해 거장들이 던진 질문은 하나로 요약된다.

“탐욕과 착취가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자본주의 위기 시대, 우리에게 구원은 있는가. 종교는 우리를 나락으로부터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12.12.10 866호 (p64~65)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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