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1

2012.11.05

겉모습만 보고 옮겼다 발등 찍을라

외국계 기업 환상

  • 김경화 커리어케어 수석컨설턴트

    입력2012-11-05 0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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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여가시간, 영어로 대화하는 글로벌한 분위기,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업무환경….’ 이직 희망자가 외국계 기업을 선호하는 대표적인 이유다. 외국계 기업은 조직 구성과 업무 체계 등 여러 면에서 국내 기업과 차이가 있다. 또한 외국계 기업끼리도 업종과 직무에 따라, 심지어 어느 나라 기업이냐에 따라 기업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좇아 향후 커리어를 결정하는 건 곤란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소속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A씨. 30대 중반으로 과장급 엔지니어였던 그는 10년 가까이 비슷한 업무를 해오던 중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국내 다른 기업에서 관련 분야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엔지니어 경력이 있는 기획 담당자를 찾고 있어 A씨에게 제안했다. 기획 업무 자체에는 관심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이란 취지에도 부합했지만 A씨는 ‘자유롭고 여가시간을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외국계 기업으로 가고 싶다며 고사했다. 그러나 필자가 외국계 기업에서 하고 싶은 업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었을 때는 “내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며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A씨는 결국 외국계 반도체 기업의 기술 서비스 담당으로 이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외국계 기업의 선진 교육과 자유로운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해당 업무의 유일한 담당자였던 A씨는 입사 다음 날부터 바로 실무에 투입됐다. 정신없이 고객사 미팅과 출장을 반복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밀린 업무를 정리하느라 야근에 시달렸다. 갑과 을이 뒤바뀐 업무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여가시간은 오히려 전보다 줄었다. 예전처럼 함께 어려움을 얘기할 동료나 사수도 없었다. 외국계 기업을 동경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A씨는 결국 6개월 후 다른 국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 유수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 구매 담당자로 근무했던 B씨 경우도 비슷하다. 외국어에 관심이 많고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해온 그는 이직할 곳으로 외국계 기업만 고려했다. 국내 기업은 위계질서를 너무 중요시해 윗사람 눈치를 보는 것이 싫고,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업무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외국계 기업에도 위계질서가 있고 영어는 국내 기업이라도 업무에 따라 많이 사용할 수 있으니, 먼저 자신의 커리어 목표상 어떤 직무에 관심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권했지만 B씨는 외국계 기업에 합격하자 주저 없이 이직을 결정했다.

    그러나 B씨의 새로운 상사는 이전 상사보다 더 보수적이었고, B씨는 그제야 국내에 있는 외국계 기업은 극소수의 임원만 외국인일 뿐, 함께 근무하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B씨가 맡은 업무가 국내 기업을 주로 담당하는 터라 아무리 외국계 기업이라도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간혹 주고받는 영어 이메일을 통해서나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새로운 커리어를 고려할 때 ‘국내 기업 vs 외국계 기업’이라는 막연한 이분법적 기준은 버리는 것이 좋다. 자신이 추구하는 확실한 커리어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먼저다. 그다음으로 커리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업무인지,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기업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 자체가 커리어 목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 확실한 방향을 정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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