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4

2012.09.10

‘농사짓고 연금 받고’ 효자보다 낫다

농지연금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9-10 09: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농사짓고 연금 받고’ 효자보다 낫다
    이제 곧 한가위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자녀로선 명절 때마다 치러야 하는 귀성전쟁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부모를 뵐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짧은 명절연휴가 끝나고 다시 부모 곁을 떠나야 할 때면, 부모가 정성껏 싸준 명절음식의 무게 이상으로 자녀의 마음 한구석은 무거워진다. 해가 다르게 늙어가는 부모를 고향에 남겨두고 떠나오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은 고사하고 용돈을 넉넉히 드리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답답할 뿐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권태준(43) 씨는 추석을 앞두고 ‘농지연금’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 건강이 요즘 들어 부쩍 나빠졌기 때문이다. 어머니 혼자 아버지를 보살피기가 어려워져 지난달에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셨는데, 병원비로 매달 70만~100만 원이 들어간다. 권씨는 “아버지가 단기간 입원하는 거라면 적금을 깨거나 대출을 받아서라도 병원비를 마련하겠지만, 앞으로 얼마 동안 입원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겠다 싶어 농지연금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농지연금이란 고령 농민이 농사짓던 땅을 담보로 다달이 연금을 지급받는 제도다. 지난해 처음 국내에 도입돼 1년 8개월밖에 안 됐으나 가입자 수가 2000명에 육박한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농지연금 가입자 수가 매달 100명꼴로 꾸준히 증가해 7월 말 기준 1914명에 이르렀다”며 “추석을 전후해 농지연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가입자 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지가격보다 더 많은 연금 받을 수도

    ‘농사짓고 연금 받고’ 효자보다 낫다

    농민이 농사짓던 땅을 담보로 매달 연금을 지급하는 농지연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지연금이 이처럼 짧은 기간 내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농지를 담보로 대출받을 경우 다달이 이자와 원금 중 일부를 상환해야 하지만, 농지연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연금을 받으면서도 농사를 계속 짓거나 농지 임대가 가능해 연금 외에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다. 앞서 권씨의 경우, 아버지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농지를 팔면 당장 어머니 생계가 문제일 수 있다. 농지연금을 받으면, 매달 받는 연금으로 아버지 병원비를 대고 농사를 짓거나 농지를 임대해 어머니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부부 두 사람이 모두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권씨의 경우 농지가 아버지 명의로 돼 있어도,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 어머니가 농지연금을 승계하면 어머니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농지연금을 받을 수 있다.



    연금채무 상환방식도 가입자에게 유리한 편이다. 부부 두 사람이 모두 사망한 다음 연금채무를 상환하려고 담보 농지를 처분하는데, 채무를 상환하고도 돈이 남으면 상속인에게 돌려주지만 설령 모자라도 부족분을 청구하지 않는다. 농지연금을 신청한 다음 평균수명보다 오래 살아 농지가격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더라도 자녀가 부족한 금액을 갚아야 하는 부담이 없는 것이다.

    농지연금은 이렇듯 장점이 많은 대신 가입 조건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농지연금에 가입하려면 부부 두 사람이 모두 만 65세 이상이어야 하고, 5년 이상 영농경력이 있어야 한다. 소유한 농지 넓이는 3만㎡(약 9000평)를 넘으면 안 된다. 단, 영농경력은 반드시 연속 5년일 필요는 없고 농사지은 기간을 전부 합해 5년만 넘으면 된다. 담보로 맡길 수 있는 토지는 실제 영농에 사용하는 농지여야 하며, 근저당이나 압류가 설정돼 있으면 안 된다.

    ‘농사짓고 연금 받고’ 효자보다 낫다
    가입자 평균 연령 75세, 월 평균 87만 원 수령

    농지연금 가입자는 매달 연금으로 얼마나 받을까. 연금수령액은 담보로 맡긴 농지가격과 연금수령 방식, 가입자 연령 등에 따라 다르다. 담보 농지가격은 공시지가로 결정하는데, 공시지가가 높을수록 연금수령액도 높아지지만 월 300만 원 한도다. 연금수령 방식은 ‘종신형’과 ‘기간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종신형 가입자는 죽을 때까지, 기간형 가입자는 자기가 정한 기간(5, 10, 15년) 동안 다달이 일정 금액의 연금을 받는다. 가입자 연령은 부부 두 사람 중 어린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 종신형의 경우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가입자 나이가 많을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 1억 원 상당의 농지를 담보로 설정할 경우 65세는 33만 원, 70세는 39만 원, 75세는 47만 원 정도를 받는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현재 농지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5세이며, 70대 가입자가 전체 가입자의 66%를 차지한다. 가입자들은 평균 5000㎡ 농지를 담보로 맡기고 월 평균 87만 원을 연금으로 받는다. 연금수령액 규모별로 살펴보면, 50만 원 미만이 826건(43%)으로 가장 많고, 50만~100만 원을 수령하는 사람이 475명(25%)으로 그다음을 차지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 등 다양한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도시근로자에 비해 농민은 상대적으로 노후 준비가 덜 돼 있는 만큼, 농지연금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다만 농지연금이 지금보다 활성화하려면 가입자와 그들 자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먼저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상속에 대한 가치관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부모가 90세까지 살면 자녀 나이도 환갑이 넘는다. 그제야 집이나 땅을 물려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보다는 자녀가 한창 자식 키우느라 여유가 없을 때 부모 부양 부담이라도 덜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집이나 땅이 아니라 부모가 마지막까지 마음 편히 살다가 가는 모습이다. 자녀들도 부모덕을 볼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부모 재산은 애당초 부모가 다 쓰고 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가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귀성길에는 부모에게 드릴 선물과 함께 농지연금 안내 책자도 함께 준비해가면 어떨까.

    ‘농사짓고 연금 받고’ 효자보다 낫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