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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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넘긴 마누라 그냥 확…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2-05-21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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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통기한 넘긴 마누라 그냥 확…
    무미건조한 다큐멘터리 같은 미혼의 삶에 ‘장르’의 세례를 내려주는 것이 결혼이다. 혼인서약과 동시에 삶은 비로소 예측 불가능해지고, 일상은 다양한 장르의 표정을 얻는다. 연애 시절에 했던 행복한 상상은 결혼 예고편이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초강력 스펙터클 블록버스터 3D 에로틱 판타지. 많은 관객이 예고편에 낚여 극장을 찾듯 숱한 젊은이가 연애의 달콤한 마법에 걸려들어 결혼에 이른다.

    달콤 쌉싸래한 로맨틱 코미디이자 경쾌한 에로 영화였던 신혼이 지나면 결혼생활은 블랙코미디로 변한다. 사랑의 밀어는 점차 냉소 어린 농담으로 대체되고,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유머도 꼴불견이 된다. 블랙코미디까지는 결혼이라는 드라마가 전개되는 일반 공식이자 양상이다. 이 단계를 지나면 주인공의 성격과 가치관, 계급적 정체성, 정치적 성향, 사회적 환경이 장르를 좌우한다.

    말보다 행동,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의 남녀는 집 안 소품을 적극 활용해 활극이나 액션영화를 찍고, 고도의 심리전과 내면연기에 능한 부부는 상대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는 스릴러 혹은 미스터리 장르의 쾌감을 선사한다. 집 밖 술자리에선 날아다니다가 집에만 들어오면 소파 위 ‘좀비’가 되는 남편, 그리고 가사와 육아에 찌들어 창백해진 ‘쌩얼’을 두꺼운 메이크업으로 치장하는 아내. 이들의 결혼생활은 공포와 법정 드라마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죽이지 못해 사는 부부?

    스크린에서 연애는 늘 판타지지만, 결혼은 많은 경우 악몽이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슬린 터너 주연의 ‘장미의 전쟁’(1989), 박중훈과 최진실 주연의 ‘마누라 죽이기’(1994)는 초대형 부부싸움의 고전이다.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주연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 설경구와 김태희 주연의 ‘싸움’(2007)도 온갖 무기와 전략, 격투기를 동원한 부부싸움의 ‘블록버스터’를 보여준다.



    대저택을 배경으로 한 쌍의 부부가 이혼을 위한 전쟁을 벌이는 ‘장미의 전쟁’에는 온갖 치사하고 비열한 방법에서부터 위험천만한 대형사고까지 상상할 수 있는 부부싸움의 극단적인 예가 수없이 등장한다. 남편은 아내의 요리에 오줌을 싸고, 아내는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반려견을 ‘간식’으로 식탁에 올린다. 아내는 남편의 도자기를 눈앞에서 깨뜨리고, 남편은 아내가 아끼는 구두의 굽을 톱으로 친히 잘라준다. 상대방이 타는 자동차를 묵사발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왜 이럴까. 한때 죽고 못 살던 두 남녀가 왜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사이가 됐을까. ‘사랑의 유통기한’ 때문이다. 독일 여성 감독 도리스 도리가 만든 ‘내 남자의 유통기한’(2005)이라는 영화에선 마법에 걸려 어항 속 잉어가 된 노년 부부가 화자다. 이들은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다 결국 저주를 받았다. 잉어의 몸을 하고도 아내는 “무능하다”며 남편을 욕하고 남편은 “싸가지 없다”며 아내를 비난한다. 이들이 저주를 풀고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3년 동안 사랑이 변치 않는 커플을 만나는 것이다. 최근 발표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이혼 건수 중 혼인 지속 기간이 ‘4년 이하’인 사례가 29.9%로 가장 많았다.

    5월 17일 개봉한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부부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한참 넘긴 결혼 7년차다. 이들의 사랑도 처음엔 낭만적인 판타지였다. 지진이 일어난 일본 나고야. 무서워 벌벌 떠는 유학생 정인(임수정 분) 앞에 건축가 지망생 두현(이선균 분)이 나타난다. 식당 탁자 밑에 몸을 숨긴 여자에게 남자는 프러포즈를 한다. 몇 개월간의 연애는 아름다운 ‘삽화’였지만, 결혼 7년차 부부의 일상은 지리멸렬하고 시끄러우며 더러운 몰골을 감추지 않는 ‘다큐멘터리’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다 그렇게 되는 법이다.

    “아내를 유혹해주세요”

    유통기한 넘긴 마누라 그냥 확…
    아내 정인을 보자. 그도 처음엔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며 섹시했다. 게다가 완벽한 요리 실력까지 갖춰 남편 두현을 위해서라면 매일 밤낮으로 상을 차렸다. 더없이 좋았던 그의 말과 몸과 요리는 7년 후 조금씩 악몽으로 변했다. 아침마다 대령하는 주스와 건강식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이 여자, 화장실 문을 덜컥 열더니 큰 일 보는 남편에게 컵을 내민다. 그것을 군말 없이 벌컥벌컥 들이켜야 하는 남편은 자신이 재갈 물린 소, 사료 먹는 닭처럼 느껴져 진저리친다.

    신혼 시절에야 볼 때마다 짜릿하고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게 아내 몸이지만, 이제는 아무 데서나 훌렁훌렁 벗어젖히는 통에 남편이 눈을 돌린다. 하루 종일 말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남편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아내의 입은 쉴 줄 모른다. 더욱이 아내는 부조리한 일은 아무리 사소해도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시비를 따져야 하는 성격이다. 식당에서건 부부동반 회사모임에서건 한번 ‘울컥’하면 자리를 들었다 놓으니 남편은 아내와 어디 나가는 것이 두렵다.

    남자는 수없이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내가 두려워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아내와 떨어져 살려고 지방근무도 자청해보지만 그마저 수포로 돌아간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으니 바로 이웃 남자다. 백인과 흑인, 아랍계, 라틴계, 아시아계 등 다국적 여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눈물 흘리며 사랑을 고백하는 희대의 카사노바. 남편은 아내와 헤어지려고 묘안을 짜낸다. 바로 아내로 하여금 바람이 나게 하는 것.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카사노바 성기(류승룡 분)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의뢰한다.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결혼생활에서 누구나 느낄 법한, 특히 남자가 가질 만한 정서와 감정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 설득력이 있고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속사포 같은 대사를 쏘아대고 예측불허의 엉뚱한 면모를 보여주는 임수정의 호연도 볼만하다. 류승룡은 요샛말로 손발이 오그라들 만한 대사나 행위를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게 구사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객석에선 크고 작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세 주연배우의 균형과 앙상블이 영화 완성도를 높였다. ‘러브 픽션’에 이어 ‘건축학개론’ ‘은교’를 거쳐 ‘내 아내의 모든 것’까지 최근 잇따른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는 슬픔이든 유머든 한국 영화가 남녀 간 사랑을 성숙하고 능란하게 다룰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나 갖자니 귀찮고, 남 주자니 아깝게’ 돼버린 아내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비겁하고 속물적인 남자의 반성으로 끝나는 영화다. 뻔한 결말이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남편 혹은 아내인 당신, 혹시 유통기한을 넘기진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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