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7

2011.12.19

글 한 줄에 위로받고 양극화와 불의에 분노하고…

2011년 출판계 베스트셀러 키워드 5

  • 이지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12-19 11: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글 한 줄에 위로받고 양극화와 불의에 분노하고…
    2011년 출판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이 젊은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낸 책이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내년 선거의 해를 앞두고 정치 관련 서적도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은 출간 세 달 만에 50만 부 이상 팔렸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정의를 앞세운 책도 지난해에 이어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2011년 베스트셀러를 분석하면서 ‘공감’ ‘안철수 열풍’ ‘스티브 잡스’ ‘자본주의 비판’ ‘정의’를 올해 출판계를 대표하는 다섯 개 키워드로 꼽았다.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감과 위로를 갈구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20대 청춘을 잘 아는 멘토가 그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여주며 위로를 건네는 책”이라며 “젊은이가 공감할 수 있는 조언과 어록이 넘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 책에 대해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난관을 돌파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해결책이 없으며, 인문학적 성찰도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위로와 공감의 힘은 150만 부 이상 판매라는 경이로운 결과를 낳았다.

    공감

    올여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함께한 ‘청춘콘서트’의 기록을 담아낸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리더스북)의 인기 역시 공감과 위로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를 더했으며, 젊은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 한류를 일으킨 소설가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창비)의 인기도 공감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엄마라는 보편적 소재를 통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인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낸 것. 특히 시점을 달리해 펼치는 엄마에 대한 회상은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안철수 열풍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거대한 돌풍이 된 ‘안철수 열풍’은 올 하반기 출판계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서른, 안철수처럼’(북씽크), ‘안철수의 착한 성공’(비전코리아),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메디치미디어), ‘안철수 대통령’(소금나무),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열다섯의공감), ‘안철수 바람개비’(커뮤니케이션북스) 등 안철수 열풍을 분석한 책이 다수 출간됐다.

    한기호 소장은 “경제적 불평등과 생존 불안에서 비롯한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안철수 열풍을 낳았다”며 “취업조차 어려운 20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30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40대의 일상적 불안이 계속되는 한 2012년에도 안철수 열풍은 계속될 것이고, 이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정치판을 그려보는 출판계의 움직임도 여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하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닥치고 정치’(푸른숲)도 비슷한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는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파한 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시민 스스로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웃음이 픽픽 나오게 하는 재미와 함께 전파했다는 것. 윤평중 한신대 교수도 이 책이 “답답한 현실에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제도정치권의 무능을 꼬집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를 조롱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정치가 가진 순기능조차 매도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윤 교수는 “기존 정치인을 싸잡아 희화화함으로써 공동체가 직면한, 정말 중요한 정치 문제에 대응해야 할 ‘정치 리더십’을 부정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스티브 잡스

    올 하반기 출판계를 이끈 것은 최근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 평전 ‘스티브 잡스’(민음사)다. 잡스의 투병과 죽음이라는 드라마가 겹쳐 전 세계적인 대박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멘토를 갈구하는 청춘의 욕구와도 맞아떨어졌다.

    정지훈 관동의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IT융합연구소장)는 “잡스를 스마트 기술혁명을 이끈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고 인간적인 면모와 실패담까지 담았다. 잡스만의 철학과 감수성에 공감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잡스의 철학인 미니멀리즘과 정반대되는 커다란 크기,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애플 제품과 달리 ‘소장용’인 듯한 분위기, 일목요연한 메시지 부재는 이 책의 단점으로 꼽힌다.

    자본주의 비판

    2008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경제위기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불을 댕긴 책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0월 발간된 이 책은 올해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은 “자유주의 경제와 관련해 큰 화두를 던지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상식적 수준의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논란이 커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너무 한쪽으로만 편중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특정 역사적 사실을 과대포장해 일반화한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문제의 원인을 자유주의 경제학으로만 귀착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정의 열풍’은 꾸준히 계속됐다.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는 이제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대표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법치주의 국가 구현에 필요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치와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이 책을 끝까지 읽기 어렵다.

    소설에 이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소설 ‘도가니’(창비)도 정의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2009년 6월 출간된 이 책은 올해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45만 부 이상 팔렸다. 묻혔던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수면 밖으로 꺼냈는데, 이게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도가니’는 일명 ‘도가니법’(장애인과 아동에 대한 성폭행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문제가 된 해당 학교의 폐쇄까지 이끌어냈다.

    글 한 줄에 위로받고 양극화와 불의에 분노하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