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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짠물 경영… 그래도 ML 우승 반지 꼈다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짠물 경영… 그래도 ML 우승 반지 꼈다

짠물 경영… 그래도 ML 우승 반지 꼈다
“‘머니볼’이라는 유령이 메이저리그를 배회하고 있다. 득점 없는 안타는 맹목이고 승리 없는 득점은 공허하다. 출루율은 타율에 앞선다. 타자는 출루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제까지 메이저리그는 단지 선수를 거래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승리를 사오는 것이다. 야신(야구의 신)은 죽었다. 이제 야구를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통계학자, 그리고 컴퓨터다.”

철학자들이 2000년대 초중반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지켜봤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머니볼’(감독 베넷 밀러)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메이저리그의 가장 가난한 팀 중 하나였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일으킨 돌풍을 그린 작품이다.

애슬레틱스가 일군 기적 뒤에는 구단장(구단 최고경영자)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머니볼 이론 신봉자였다. 머니볼이란 경기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한 뒤 이를 기반으로 적재적소에 선수를 배치함으로써 승률을 높이는 야구 게임 이론이다. 핵심은 연봉만 높은 선수를 몸값 대비 과소평가된 선수로 대체함으로써 가장 싼 값으로 가장 강하고 효율적인 라인업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빌리가 철저한 머니볼 전략을 구사해 꼴찌를 전전하던 작은 팀을 최강 팀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빌리 인생에는 병마도, 장애 극복기도, 가슴 미어지는 가족 이별사도 없다. 오롯이 야구 이야기뿐이다. 재미없을 가능성이 높은 조합이지만 영화는 보기 좋게 예측을 벗어난다.

‘머니볼’은 야구 규칙에 문외한인 사람도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메이저리그 마니아나 열혈 야구팬에게는 매 장면이 짜릿한 향연으로 다가올 것이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스타가 된 오사다하루(왕정치)는 “야구란 체력이 떨어지면 두뇌로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빌리 에게는 “돈이 떨어지면 수학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돈도 없고 ‘빽’도 없으면 머리가 좋거나 부지런해야 이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밥벌이라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2001년 애슬레틱스의 구단장 빌리가 맞이한 상황은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는” 상황이었다.

짠물 경영… 그래도 ML 우승 반지 꼈다
선수 연봉 총합이 4000만 달러에 불과한 애슬레틱스는 2001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선수들 연봉 총합이 1억4000만 달러에 달하는 뉴욕 양키스와 맞붙어 2승 뒤 3연패로 탈락한다. 다음해 우승을 위해서는 팀 전력을 보강해도 모자랄 판에 빌리는 거액 연봉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팀의 간판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내보낸다. 빌리는 “메이저리그에는 부자 구단과 가난한 팀이 있고, 그 밑에 우리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하게 ‘짠물 경영’을 한다.

머니볼 신봉자인 빌리는 예일대 경제학도 출신의 피터 브랜드(요나 힐 분)를 부단장으로 임명한다. 야구 마니아이자 컴퓨터를 끼고 사는 통계전문가인 피터는 그라운드 경험이 전혀 없는 20대 중반의 무명 청년이다. 빌리와 피터는 팀 내 스카우터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각 팀의 과소평가된 선수나 유망주를 찾아 나선다. 두 사람은 사람 됨됨이나 ‘감’을 믿지 않는다. 그 대신 무조건 숫자를 신봉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출루율이다.

일본 출신 메이저리거 스즈키 이치로는 “좌전 안타나 내야 땅볼안타나 다 같은 안타”라고 말했다. 사구든, 사사구든, 안타든 무조건 출루를 잘하는 선수가 최고라는 뜻이다. 빌리는 수백만 달러를 받는 3할대 타율에 30홈런을 치는 스타선수를 팔고 고작 수십만 달러의 싸구려 선수를 사온다. 연봉 낮고 출루율만 된다면 한물간 퇴물이든, 마약쟁이든, 경기 후 스트립 바를 찾는 망나니든, 팔이 망가져 공을 던지지 못하는 반쪽 플레이어든, 팀이 버린 선수든 전혀 상관없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게임이고 야구는 홈을 밟아야 점수를 얻는 경기다. 홈을 밟으려면 무조건 1루로 나가야 한다. 빌리는 “이제까지 구단들은 야구를 잘못 이해해왔고 구단주들은 팀을 잘못 운영해왔다. 선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사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는 첫머리에서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스타 미키 맨틀의 말을 인용한다.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리는 놀랄 만큼 무지하다.”

드디어 2002년 시즌이 개막한다. 10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애슬레틱스는 시작은 초라했으나 그 끝은 장대한 ‘혁명’을 일으킨다. 시즌 초반 연패를 거듭하며 꼴찌를 맴돌던 애슬레틱스는 팀을 재정비한 후 승승장구해 미국 야구사를 새로 쓴다. 전 국민적 관심 속에 20연승을 이뤄내며 아메리칸리그 신기록을 세운 것. 그해 애슬레틱스가 거둔 승수는 최고 부자구단인 양키스와 같다. 돈으로 환산하면 1승당 애슬레틱스는 26만 달러를 썼고 양키스는 14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것이 바로 머니볼이다.

일본 출신 메이저리거 노모 히데오는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고 말했다. ‘머니볼’은 특수한 야구 전략 이론에 대한 영화지만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이야기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약자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야구팬이 아닌 관객에게도 통쾌하고 따뜻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일말의 씁쓸함이 남는다. 저비용 고효율만이 유일무이한 원칙인 ‘머니볼’에서 인간의 온기를 잃어버린 야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경쟁과 효율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우리 자신도 얼마든지 더 저렴한 부품으로 갈아 끼워질 수 있는 ‘나사’ 같은 부속품이 돼버렸다는 자화상을 이 영화에서 엿보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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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813호 (p72~73)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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