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7

2011.10.10

지역의 먹을거리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가

로컬푸드 유감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1-10-10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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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먹을거리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가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로컬푸드의 범위는 어디까지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최근 ‘로컬푸드’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지역 생산자단체에서 자기 지역의 농수축산물이 ‘로컬푸드’라며 마케팅한다. 그런데 무엇이 로컬푸드인지 개념이 모호하다. 로컬푸드와 슬로푸드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슬로푸드와 마찬가지로 로컬푸드도 운동성을 포함한다. 즉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지향한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를, 로컬푸드는 글로벌푸드를 반대한다.

    글로벌푸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의 먹을거리를 말한다. 따라서 글로벌푸드는 대체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모르는 정체불명의 먹을거리’다. 글로벌푸드는 가공 및 유통업체의 이익 확보가 가능한 한도에서 그 재료와 완제품의 운송 거리를 무시한다. 또 비용 절감과 시장 확대를 위해 획일화한 가공법을 택한다. 그러니까 글로벌푸드는 원거리 농수축산물, 패스트푸드, 인스턴트푸드, 그리고 각종 공장제 식품을 두루 일컫는다.

    이 글로벌푸드에 맞선 개념인 로컬푸드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소비자가 알 수 있는 먹을거리’를 말한다. 또 재료와 완제품의 운송 거리를 이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거리’에 로컬푸드의 방점이 찍히는데, 그 외 부분은 슬로푸드 개념 또는 운동성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에서 로컬푸드는 슬로푸드에 비해 좀 더 구체적으로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슬로푸드는 ‘조리된 음식’이라는 관념이 강한 반면, 로컬푸드는 지역의 농수축산물, 그러니까 ‘조리되기 전 음식재료’라 생각한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농수축산물을 소비자가 손에 쥐려면 직거래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따라서 많은 소비자가 집단 직거래를 추구하는 생협 등에서 파는 농수축산물이 로컬푸드라 생각한다. 지역 농수축산물 생산자가 로컬푸드를 앞세우는 마케팅 방식이 거의 직거래인 것도 이 때문이다.

    로컬푸드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지자체와 지역농협 등 생산자단체가 로컬푸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하는 여러 먹을거리에 로컬푸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케팅에 열심이다. 그런데 로컬푸드의 유통 범위는 전국이다. 물론 지역 학교와 단체, 업체에 지역 농산물을 고정적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벌이긴 하지만, 판매 범위를 제한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지역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운동과는 맞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긴 한국에서 ‘어느 범위까지를 로컬이라 하자’고 합의를 본 적 없으니 한반도 전체를 유통 범위로 잡는 로컬푸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를 어물쩍 넘긴다면 로컬푸드 전반에 대한 신뢰에 손상이 올 수도 있다. 또 로컬푸드에 대한 개념과 운동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이 슬로푸드라는 단어를 사용해 그 개념과 운동성에 손상을 입혔듯이, 여러 상업 주체가 이 단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한 뒤 버릴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이 그리 넓지 않아 어찌 보면 한국 전체가 로컬이라 할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며 그들 대부분이 소비자인 점을 감안하면, 또 생산지 인근에 대형 소비처가 없는 한국 농어촌 환경을 생각하면, 로컬 범위를 구획한다는 것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 될 것이다. 만약 물리적 거리를 기준으로 한 로컬푸드가 한국적 상황에 맞지 않는 개념이라면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는 일이 필요할 수 있다. 슬로푸드, 로컬푸드, 웰빙푸드 등 항상 서구에서 제안한 개념을 받아 먹는 일도 극히 로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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