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2

2011.08.29

본능 앞에 흔들리는 갈대 돈 지르는 순간 먹혀

내 투자 판단을 믿지 마라

  • 이건 ‘대한민국 1%가 되는 투자의 기술’ 저자 keonlee@empas.com

    입력2011-08-29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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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능 앞에 흔들리는 갈대 돈 지르는 순간 먹혀

    주가가 급락하자 외환은행 본점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간단한 퀴즈를 풀어보자. 바다에서 상어에 물려 죽을 확률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행기 부품에 맞아 죽을 확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사람은 흔히 자주 들어본 사건이 발생 확률도 높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용성 오류다. 즉 마음속에 쉽게 떠오르는 사건일수록 발생 확률이 높다고 여긴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어에 물릴 확률보다 비행기 부품에 맞을 확률이 30배나 높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거나 보는 사건이 발생 확률도 높은 게 사실이다. 설령 이런 관계가 거꾸로 나타나더라도 크게 손해 볼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투자 세계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용성 오류가 실상을 왜곡하는 정도가 심각하고, 이 때문에 큰 손실을 보기 쉽다. 왜 그럴까. 워런 버핏이 말한 이발사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손님의 머리를 깎아야 돈을 버는 이발사처럼 사람의 이목을 끌어야 사업이 되는 일부 미디어가 엉뚱한 이야기를 자주 떠들기 때문이다. 거의 매주 복권 당첨자가 나오는 게 당연한 것처럼, 높은 수익을 올리는 펀드, 대박을 터뜨리는 종목, 푼돈으로 거금을 만드는 투자자가 생기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데 일부 미디어는 이를 마치 대단한 사건인 양 요란하게 보도한다.

    이발사와 가용성 오류



    증시가 활황세를 지나 과열상태에 도달하면 이런 기사가 넘쳐난다. 사람들은 가용성 오류에 빠져 돈 벌 확률이 지극히 높다고 착각하면서 조바심을 느낀다. 반면, 증시가 불황에 접어들어 폭락세를 보이면 투자에 실패한 사람 이야기가 넘쳐나고, 비관적인 기사가 사람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일부 투자의 거장이 대중매체를 피하라고 충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중매체의 투자 관련 정보는 내용에 깊이는 없으면서 표현만 선동적인 경우가 많다.

    당신이라면 전 재산을 걸고 동전 던지기를 하겠는가. 앞면이 나오면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나고, 뒷면이 나오면 재산을 모두 내놓아야 하는 조건에서 말이다. 십중팔구 하지 않을 것이다.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날 때 얻는 기쁨보다 재산을 모두 날릴 때 겪는 괴로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익을 볼 때 얻는 기쁨보다 손실 발생으로 겪는 고통을 더 크게 보는 습성이 손실 혐오다. 실험 결과,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이 2.5배 더 크다고 한다.

    투자 격언 가운데 ‘손실은 짧게 끊고, 이익은 달리게 하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손실이 발생하면 즉시 팔아버리고, 이익이 나면 계속 증가하도록 기다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경험 많은 트레이더조차 이 격언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손실의 고통이 너무 크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려니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언과 반대로 ‘이익은 짧게 끊고, 손실은 달리게’ 하는 매매를 자주 한다.

    초보 투자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익이 조금이라도 나면 손실로 바뀔까 두려워 신속하게 팔아버린다. 손실이 발생하면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회복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린다. 이른바 비자발적 장기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이익은 새처럼 쪼아 먹고 손실은 코끼리처럼 배설하는’ 매매가 이어지다 보면 투자 원금이 거덜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본능 앞에 흔들리는 갈대 돈 지르는 순간 먹혀
    지금까지 행동재무학 분야에서 투자자가 저지르기 쉬운 몇 가지 오류를 살펴봤다. 야성적 본능이 빚어내는 오류를 아는 것만으로도, 실패를 불운 탓으로 돌리는 사람보다 훨씬 앞서나갈 수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동안 투자에 실패한 사람은 대부분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천하지 못해 무너진 것이다.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는 누구에게나 간절한 소망이다. 특히 결혼 적령기 여성에게는 일생 일대의 승부수가 될 만큼 절박한 문제다. 사실 건강 다이어트 법은 그리 대단한 지식이 아니다. 건전한 상식으로도 알 수 있다. 핵심은 식사를 조절하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다. 이 정도 지식이 없어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꾸준히 실행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 다이어트를 시작해 실제로 체중이 감소한 사람은 100명 중 12명에 불과하고, 1년 넘게 감량 효과를 유지하는 사람은 2명뿐이었다. 성공률 2%에 불과하다. 왜 꾸준히 실행하기 어려울까. 역시 야성적 본능 때문이다. 수백만 년 인류 역사에서 식량이 남아돈 기간은 흔치 않다. 언제 굶주릴지 모르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조건 배를 채워두는 편이 생존에 유리했다. 그리고 사냥과 채취로 에너지 소모가 워낙 많으므로, 불필요한 운동은 하지 않았다. 운동은 소중한 에너지만 축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야성적 본능은 식량이 남아돌고 비만이 건강을 위협하는 시대를 겪어볼 기회가 없었다. 다이어트는 비만이 위협인 새 시대에 인간의 야성적 본능을 적응시키는 작업이다. 수백만 년 쌓인 버릇이 쉽게 고쳐지겠는가. 결국 대부분은 완고한 야성적 본능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투자로 돈 벌기가 더 어려울까, 아니면 다이어트로 살을 빼기가 더 어려울까.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부자보다 과체중인 사람이 훨씬 눈에 많이 띄는 것을 감안하면, 다이어트보다 투자가 더 어려운 듯하다. 게다가 투자를 방해하는 야성적 본능은 앞에서 설명한 오류 외에도 많다.

    이런 오류는 투자 금액이 증가할수록 더 심해진다. 푼돈으로 장난삼아 투자할 때는 야성적 본능이 절에 간 색시처럼 얌전하므로 신경 쓸 일조차 없다. 그러나 투자금액이 커질수록 야성적 본능은 본색을 드러내면서 무서운 힘으로 당신을 압박한다. 예를 들어, 몇 달치 봉급으로 투자해 재미를 본 다음 판돈을 몇 년 치 봉급 수준으로 키우면, 야성적 본능은 황소만 한 호랑이로 돌변해 당신에게 덤벼든다.

    냉정한 이성은 사라지고 흥분과 공포가 판단을 지배한다. 거듭된 실수로 벌었던 돈은 물론, 원금까지 날리고 난 뒤 손실을 회복하려고 대출까지 받아 투자하면 호랑이는 공룡으로 변신한다. 당신은 전 재산을 걸고 공룡을 상대로 동전 던지기 게임을 벌인다. 동전 뒷면이 나오면 재산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동전을 들여다보고 나서 소스라치게 놀란다. 동전에는 앞면이 없다! 둘 다 뒷면이다! 공포와 좌절감에 당신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본능 앞에 흔들리는 갈대 돈 지르는 순간 먹혀
    우리의 투자 판단력은 야성적 본능 앞에서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온갖 유혹에 빠져 자신의 투자 판단력을 믿는 순간, 야성적 본능은 가차 없이 우리를 밟아버린다.

    * 이건은 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국내 주식과 외국 채권 및 파생상품을 거래했고, 증권회사에서 트레이딩 시스템 관련 업무도 했다. 지금은 주로 투자 관련 고전을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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