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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용의 아빠가 차린 주말 별미

쌉싸름한 ‘여름 팔진미’ 맛으로 향수로 후르륵

도토리묵말랭이 냉채

  • 한영용 blog.naver.com/foodi2

쌉싸름한 ‘여름 팔진미’ 맛으로 향수로 후르륵

쌉싸름한 ‘여름 팔진미’ 맛으로 향수로 후르륵
마당 장독대 위 대자리엔 배를 가른 빨간 고추가 풍성히 널려 있다. 고추의 향긋한 냄새 때문인지 고추잠자리도 가끔씩 날아든다. 빨간 고추 옆에 도토리묵을 널어놓으신 어머니는 고추와 묵의 색상이 잘 어울린다며 밝게 웃으신다. 이제 한낮 햇살은 조금 풀이 죽었다. 입추가 지나서인지 밤공기에서 가을이 살짝 묻어난다.

조금 한가로운 시간을 이용해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천년고도 숨결이 가슴속 깊이 들어왔다. 경주는 평화롭고 넉넉해 보였지만 토함산 곳곳에는 올여름 폭우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석굴암으로 가는 길옆엔 상수리 나뭇가지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도토리는 사람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산에 기대어 사는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양식이다. 태풍과 장마 탓에 올가을 도토리 흉년이 예상된다. 동물들이 한겨울 혹독한 굶주림을 겪어야 할 것 같다. 인간의 탐욕과 욕망으로 지구가 신음하고, 그에 따르는 피해를 죄 없는 동물까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도토리는 생활력과 인내력이 강한 우리네 어머니와 닮았다. 도토리묵은 여름 팔진미(八珍味)라고 한다. 필자의 어머니도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땀을 훔쳐가며 도토리묵을 쑤신다. 또한 어머니는 도토리묵말랭이에 송송 썬 김치와 쑥갓 얼린 동치미, 깨소금을 넣은 도토리묵 냉국, 그리고 얇은 전병에 매콤한 무생채, 향긋한 반디나물을 넣고 말아낸 도토리 빙떡을 만드신다.

어머니는 지금도 도토리 죽을 회상하신다. 비록 먹을거리는 부족했지만 그 시절이 행복했다고 하신다. 돌아가신 할머님에 미안한 마음과 감사함도 잊지 않으신다. 집에는 할머님 손때 묻은 놋 주걱이 남아 있다. 할머님은 이 주걱으로 도토리 죽을 쑤고, 가마솥 누룽지에 물을 부어 놋 주걱으로 박박 긁었을 것이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얇게 닳은 주걱은 이제 거의 손잡이만 남아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 집 가보로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도토리는 구황식품으로 우리 민족의 생명을 구해준 소중한 양식이다. 도토리에는 아콘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인체 내 중금속과 유해물질을 배출시키는 기능이 탁월하다. 또 소화를 촉진해 입맛을 돋우며 장과 위를 강하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강장효과도 있다.



재료 도토리묵말랭이 100g, 들깨 가루 3큰술, 간장 1큰술, 참기름 2큰술, 팽이버섯 50g, 브로콜리 70g, 멸치육수 4컵

만드는 방법

1 도토리묵말랭이를 물에 2시간 불린 뒤 깨끗이 씻어 건져낸다.

2 팬을 달군 뒤 참기름, 간장을 넣고 묵을 볶다 육수를 넣고 은근한 불에서 졸인다.

3 국물이 걸쭉해지면 들깨 가루와 팽이버섯을 넣고 차갑게 식혀 접시에 담은 뒤 브로콜리로 장식한다.

쌉싸름한 ‘여름 팔진미’ 맛으로 향수로 후르륵
* 필자는 신라호텔 조리사 출신 음식 연구가로, 특히 전통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다채로운 장류 및 차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별미전 · 전통반찬’ ‘된장과 간장에 대한 소고’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 등의 저서도 출간했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한식세계화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청운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 다산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1.08.22 801호 (p61~61)

한영용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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