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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몸과 마음은 훌훌, 사랑은 활활

여름을 즐기는 연인

몸과 마음은 훌훌, 사랑은 활활

몸과 마음은 훌훌, 사랑은 활활

‘우리는 천천히 일어났다’, 리히텐슈타인 1964년, 캔버스에 마그나와 유채, 173×234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소장.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아스팔트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기를 내뿜어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더위를 피하고자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냉방병에 걸려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더욱 뜨겁고 화끈하게 더위를 만끽해야 한다. 여름 더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상을 벗어날 자유 또한 주어지지 않는가. 여름은 축제다. 자유를 최대한 분출할 수 있어서다. 여름휴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럼에도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사랑이다. 사랑은 현실이 줄 수 없는 환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사랑을 꿈꾸는 청춘을 그린 작품이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의 ‘해변의 누드 청년과 소녀’다. 이 작품은 젊은이들이 해변에서 벌이는 행동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벌거벗은 청년이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소녀의 앞을 두 팔을 벌려 가로막고 있다. 소녀는 청년의 행동에 놀라 걸음을 멈추었지만 얼굴을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몸과 마음은 훌훌, 사랑은 활활

‘해변의 누드 청년과 소녀’, 키르히너, 1916년, 캔버스에 유채, 104×76, 알베르티나 미술관 소장(위). ‘여인을 놓고 싸우는 남자들’, 슈투크, 1905년, 나무에 유채, 90×117, 에르미타시 미술관 소장.

벌거벗은 청년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소녀는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면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암시한다. 또한 청년의 일어선 성기는 남자의 성적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배경인 우거진 숲은 은밀한 장소라는 사실을 암시하며 두 사람이 성적 욕망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을 묘사한다.

키르히너는 피카소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물을 가늘고 뾰족하게 그렸는데 이 작품 역시 이런 특징이 나타나 있다. 키르히너는 발틱 해의 페마른 섬에서 친구 에르나 쉴링과 정기적으로 여름휴가를 보냈고, 그곳의 풍경과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도 그곳에서 그린 것으로 ‘실내의 두 나부’라는 작품과 쌍을 이룬다. 키르히너는 캔버스 앞뒤 양면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름 해변은 낮보다 밤이 더 뜨겁다. 남자 여자 모두 원초적 욕망을 자유롭게 발산하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그린 작품이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우리는 천천히 일어났다’다. 이 작품은 만화 이미지를 차용해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금발의 백인 남자와 여자가 물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머리 스타일만 다를 뿐 눈썹과 입술 형태, 오뚝한 콧날이 비슷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거울 보는 것처럼 닮았다.

굽이치는 물결을 표현한 검은색은 하얀 물방울과 대조를 이루며 노란색이 강하게 돋보인다. 굵고 강한 검은색 선은 만화 이미지를 강조하며, 물결치는 파란색 원색점, 즉 벤데이 점(착색 드로잉 방법을 발명한 삽화가 벤저민 데이(1838~1916)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은 그림을 인쇄물처럼 보이게 한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량생산하는 인쇄물처럼 보이게 하려고 벤데이 점을 오랜 시간 일일이 손으로 그려 넣었다. 인쇄물처럼 보이지만 제작 과정이 지난한 그림이다.

벤데이 점은 리히텐슈타인의 창의력을 돋보이게 해주는데, 이전 화가들도 만화에서 특정 장면만 따로 떼어내 예술작품과 결합시키는 수법을 사용했지만, 리히텐슈타인처럼 인쇄기술을 직접 끌어와 만화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화가는 없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이 작품은 영화의 수중 장면을 클로즈업한 것으로, 화면 옆에 있는 글은 영화에서 음성 같은 기능을 한다. 이 작품에서 말줄임표는 그림 속 두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며 관람자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해변의 사랑은 외모가 먼저다. 사람이 수영복 입은 모습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름답고 몸매가 좋은 여자 앞에는 남자가 줄을 서고 조금 외모가 떨어지는 여자에게는 날파리만 꼬이는 법이다. 해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놓고 싸우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프란츠 폰 슈투크(1863~1928)의 ‘여인을 놓고 싸우는 남자들’이다. 이 작품은 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자끼리 여자를 놓고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묘사했다.

두 명의 남자는 힘을 과시하면서 상대를 제압하고자 온몸이 긴장해 있다.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싸움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는 싸움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방관자다. 슈투크의 이 작품은 남자의 동물적 본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여자는 남자의 인생을 망치는 요부다.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서 있는 여자의 자세는 남자를 지배하는 존재라는 점을 나타낸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799호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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