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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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갈등 부추기는 비정하고 부당한 투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보편적 복지를 과잉 이념화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김대원 인턴기자 중앙대 정치외교학교 4학년

    입력2011-08-08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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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갈등 부추기는 비정하고 부당한 투표다”

    무상급식 첫날인 3월 2일 곽노현 교육감이 금옥초등학교 학생들과 밥을 먹고 있다(왼쪽). 무상급식은 지난해 7월 지방선거 때 그가 내놓은 핵심 공약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오세훈 시장이야말로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면서 “보편적 복지를 잘해야 대통령도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곽 교육감은 “무상급식은 중상위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것으로 감세정책과 비슷하다”면서 “보편적 복지를 통해 경제와 복지 동반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투표가 밥그릇 빼앗는 비정한 쪽으로 과잉 이념화하고 있다”면서 “서울시장이 서울시교육감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주민투표를 발의한 다음 날인 8월 2일 서울시교육청 집무실에서 곽 교육감을 만났다. 그는 때때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질문에 답했다.

    ▼ 투표할 건가.

    “….”



    그는 14초간 침묵한 후 이렇게 말했다.

    “위법인 데다, 부당한 투표다. 무모하고, 비정하다. 주민투표 문안에 교육청 안이 없다. 뭘 투표하느냔 말인가. 찍을 곳이 없다.”

    ▼ 아버지가 선출직 고위 공무원이다. 어머니는 의사다. 용산(159㎡), 일산(169㎡)에 집이 두 채다(공직자윤리위원회가 3월 25일 공시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재산 공개 내용). 이런 가정 아이도 무상급식을 받아야 하나.

    곽 교육감이 미간을 찌푸렸다.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학교는 아이를 아이로서 대접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에서 정의, 평등이 의미하는 것이다. 부모는 부자일 수도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다. 민주사회 공교육은 부모의 빈부에 눈 감아야 한다.”

    그는 부모 우열반이라는 표현을 썼다.

    “공교육만큼은, 학교만큼은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아이의 우열을 나누는 식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공교육은 아이만 봐야 한다. 아이의 부모는 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차별과 배제 없이, 감싼 동정과 시혜 없이 섞이고 어울릴 수 있다.”

    ▼ 중간 이상 계층은 기업 등으로부터 받는 교육 복지 혜택이 많다. 서울시 의견대로 차별적으로 저소득층에 집중 지원하는 게 옳지 않나.

    “아주 기특한 생각이다. 실제로 그렇게 된 적이 없다는 걸 빼면. 그렇게 말하는 분일수록 복지는 가난한 이를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최소한만 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그분들의 가정이 현실에서 성립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무상급식을 서울시교육청 방식으로 하는 것과 서울시 방식으로 하는 데 드는 비용 차이는 1000억 원가량이다. 차별적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의 의견대로라면 오세훈 시장은 저소득층을 위해서만 1000억 원을 써야 한다.”

    오 시장이 서민을 위하는 척만 한다는 주장으로 들렸다.

    ▼ 무상급식을 하고자 서울시교육청이 영어전용교실 예산을 깎았다. 시설 투자야말로 보편적 복지 아닌가. 중산층 이상에게 지원할 급식비를 저소득층 밀집학교에 투자하는 게 옳지 않나.

    “민주화한 공교육이 소임을 다하려면 보편적 교육복지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 사이에 선 긋는 일이 없어진다. 아이를 아이로만 보자는 것이다. 보편적 교육복지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혜택을 주는 것이어서 재원이 많이 필요하다. 가용 자원을 이용해 최대한, 형편껏 하겠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이 교육사업 중 제일 중요하다거나 최고의 선이라고 말한 적 없다. 올바른 방향이지만, 형편껏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보편적 교육복지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에 반대하는 것이다. 성인은 자기 책임의 주체이므로 선별적 복지가 무방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이는 다르다. 서울시교육청 예산 6조6000억 원 중 시설예산이 1조1000억 원이다. 시설예산에서 10% 줄여 1000억 원 마련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낭비, 비효율만 줄여도 충당할 수 있다. 영어전용교실은 줄일 만한 교육적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산을 지나치게 많이 투입하고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투자할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보편적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추진한 청계천 복원, 버스중앙차선제가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 정책이다. 시장이 보편적 복지 정책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인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잘해야 대통령도 되는 것이다. 친환경 무상급식이라는 보편적 복지에 왜 인색한지 모르겠다. 망국의 길인 양 야단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안 보인다. 복지 국가냐, 포퓰리즘이냐는 이념 전쟁의 전초전으로서, 또한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으로서 정치적 의미를 담고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다.”

    “계급갈등 부추기는 비정하고 부당한 투표다”
    ▼ 무상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 아닌가.

    “친환경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는 거야말로 망국적 포퓰리즘이다. 빈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언어다. 망국적 포퓰리즘이란 주장에는 근거가 두 개 있다. 부자급식론부터 보자. 부자한테 밥을 왜 공짜로 주느냐며 가난한 사람에게 속삭이는 건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거다. 가난한 사람의 계급이익을 일깨우고, 거기에 영합하는 척하면서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거다. 계급이익에 영합한다는 측면에서 포퓰리즘이고, 계급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망국적이다. 세금폭탄론도 마찬가지다. 이건 부자에게 속삭이는 거다. 세금폭탄으로 돌아오는데 왜 찬성하느냐고 물으면서 부자들의 계급이익을 일깨우고 거기에 영합하면서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거다. 이런 게 망국적이다.”

    ▼ 선별적으로 급식을 지원하더라도 눈칫밥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눈칫밥이란 표현은 과장한 것 아닌가.

    “아이들은 숨김이 없다. 친구 집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다 안다. 그럼에도 친구로 지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공교육이 빈부에 따라 아이들을 차등대우할 것인지다. 서울시 안은 집안 형편을 잣대로 정확하게 50대 50으로 양분하는 것이다. 성적 우열반도 모자라 부모 우열반 만들자는 것과 뭐가 다른가. 오 시장은 ‘쥐덫 위의 공짜 치즈’라고 했다. 가난한 아이가 쥐덫 위에서 공짜 치즈 먹는다는 얘기 아닌가. 아이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 교육적 관점으로 사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 학생 1인당 월 지원액이 얼마인가.

    “2457원 곱하기 20일.”

    4만9140원이다.

    ▼ 주민투표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나.

    “서울시장이 서울시교육감 권한을 빼앗아갔다. 소송을 낸 상황에서 예측은 성급하다.”

    서울시교육청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서울시장이 발의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와 서울행정법원에 각각 권한쟁의 심판 청구와 주민투표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을 냈다.

    ▼ 소송에서 이기면 된다는 건가.

    “투표에서도 이겨야 한다. 이기는 방식은 두 가지다.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거나 33.3%를 넘었을 때…. 우리 안이 이긴다는 얘기를 못 하겠다. 투표지에 서울시교육청 안이 없다. 이상한 선택지를 내밀었다.”

    그는 꼼수라는 단어로 서울시를 공격했다.

    “2012년부터 3개년에 걸쳐 중학교 1개 학년씩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는 게 지난해 8월 17일 이후 서울시교육청의 일관된 방침이다. 서울시는 우리 안을 단계적 실시에 대비하는 전면적 실시라고 규정했다. 1개 학년씩 확대하는 게 단계적인가, 전면적인가. 초등학생도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리말을 몰라선가. 말을 비틀고 있다. 이게 꼼수 아니고 뭔가.”

    서울시는 투표 문구를 ‘소득 하위부터의 단계적 무상급식’과 ‘소득 구분 없는 전면적 무상급식’ 중에서 선택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무상급식 찬성론자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안’ ‘선별적 무상급식안’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갈등 부추기는 비정하고 부당한 투표다”
    ▼ 서울시민이 서울시교육청 손을 들어주면 오 시장은 거취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에 답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나는 민주주의자이기에 투표를 좋아한다. 민주주의자와 엘리트주의자를 가르는 척도가 투표를 사랑하느냐, 싫어하느냐다. 직선제 싫어하고, 투표를 꺼리면 엘리트주의자이거나 뭔가 다른 주의자다. 주민투표는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는 수단이다. 교육감으로서 학생에게 주민투표는 굉장히 긍정적인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시민의 자발적 청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오 시장 주도 아닌가. 본인 말로도 자신이 ‘발제’했다고 그런다. 이런 경우 교육감으로서 학생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헌법, 법률, 민주주의가 얘기하는 주민투표라고 말할 수 있겠나.”

    ▼ 서울시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오 시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보는지를 물은 것이다.

    “서울시장 거취를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의무교육 단계에서 아이들에게 급식하는 것을 놓고 망국적 포퓰리즘이라 비난하고, 그것을 과잉 이념화 및 과잉 정치화한 잘못, 수해로 인명·재산피해가 난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강행한 점, 무상급식을 놓고 서울시민의 의견 대립을 격화한 것은 적절한 방식으로 책임져야 한다. 주민투표 비용 182억 원도 물론 책임져야 한다.”

    ▼ 시민이 오 시장 손을 들어주면 교육감은 어떻게 할 건가.

    “지는 건 우리가 지는 게 아니다. 투표용지에 우리 안이 없다. 서울시가 제대로 했어야 한다. 게다가 보편적 무상급식, 선별적 무상급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교육감 고유 권한이다. 나는 보편적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서울시 협력이 필요하니 재원의 일부를 대주십시오’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서울시장이 ‘서울시교육청에 협조할까요, 말까요’를 주민투표로 물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번 투표는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놓고 시민단체에게 뛰어가 반대해달라고 한 뒤 주민투표를 발제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일반 자치, 교육 자치는 엄연히 독립해 있다. 직선시장과 직선교육감은 똑같이 민주적 정당성을 가졌다. 교육감이 조례 발의권이 없나, 예산 편성권이 없나, 정책 수립권이 없나? 교육감도 서울시장처럼 주민소환 대상이다. 교육 자치와 관련해선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를 발의할 권한이 없다.”

    ▼ 오 시장이 투표에서 승리하더라도 법적으로 계속 다투겠다는 건가.

    “주민투표가 본래 굉장히 멋있는 것이다. 대표기관이 하는 짓이 못마땅할 때 40만 명 넘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서명해 청구하는 것 아닌가. 시의회가 민의에 어긋나는 조례를 제정하거나, 시장 혹은 교육감이 민의와 동떨어진 정책을 시행하는 일을 막고자 주민투표라는 비상탈출구를 마련한 것이다. 자발적으로 청구하고, 발의했다면 투표 결과에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만약 사법부가 이번 주민투표가 위법하지 않다, 부당하지 않다고 결정하면 우리가 승복해야 한다.”

    “계급갈등 부추기는 비정하고 부당한 투표다”

    7월 19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서울시의원 등이 모여 ‘주민투표청구 수리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법적 대응을 결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교육감에게 물어볼 질문은 아니지만 주민투표가 내년 총선, 대선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나.

    그는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 이념을 덧칠하고 있다. 대선주자여서 정치 과잉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내년 총선, 대선의 이념적 전초전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나. 무상급식은 이미 실시하는 중이고, 사람들도 좋아한다. 아이들 밥그릇 빼앗는 비정한 투표이면서 과잉 이념화하고 있다. 무상급식은 무상급식 사안만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 달러가 넘는다. 서울시민 소득은 한국인 평균보다 훨씬 많다. 의무교육 기간에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할 형편이 된다.”

    ▼ 궁극적으로 북유럽식 교육복지 모델이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북유럽 국가가 보편적 교육복지, 선 긋기 없는 교육복지를 구현한 것은 1인당 GDP가 2만 달러에 도달하기 전이다. 서유럽이 복지국가를 거의 완비한 것도 GDP 2만 달러가 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1만 달러 수준일 때 보편적 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 경제와 복지의 동반성장을 달성한 것이다.”

    ▼ 북유럽 모델은 독특한 정치·사회 환경에서 나온 것 아닌가. 북유럽은 인구가 적은 데다 자원도 풍부하다.

    “복지국가는 북유럽 전유물이 아니다. 유럽 국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복지국가를 실현했다. 자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린아이 시절엔 보편적 복지를 누리게 해주는 게 옳다. 낙인, 상처를 줘선 안 된다. 특히 공교육은 최대한의 보편적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성인은 자기 책임 원칙을 관철해야 하기에 선별적 복지로 가도 무방하다고 본다.”

    ▼ 복지 비용이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동의하지 않는다. 저소득층만을 위한 차별적 복지는 의식주에 국한한 최소한의 복지다. 이러한 복지는 경제 활성화 효과가 별로 없다. 보편적 복지는 다르다. 중상위 계층에게도 복지 혜택이 돌아간다. 보편적 복지는 중상위층 감세정책과 비슷한 것이다. 경제와 복지가 동반성장할 수 있다.”

    ▼ 보편적 복지가 중산층 이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인가.

    “그렇다. 무상급식은 실질적 감세정책이다. OECD 국가에서 보편화한 아동수당을 당겨 받는 것이다.”

    ▼ 무상급식이 최종 목표는 아니지 않나.

    “물론 아니다. 중학교 교육을 혁신하는 교육감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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