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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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무모한 도전? 호남이 날 거부할 이유 없다”

광주 서구을 출마 선언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 “열심히 일해온 만큼 기회 줄 것이라 생각”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1-08-08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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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의 입’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최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번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때문이 아니다. 당내 ‘호남 배제’ ‘호남 홀대’ 기류에 반발하며 일찌감치 내년 총선에 광주 서구을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호남 배제 기류에 ‘나 여기 있소’ 선언

    “세 번째 무모한 도전? 호남이 날 거부할 이유 없다”
    “호남에서 내년 총선 당선을 목표로 뛰는 사람이 있는데, ‘가능성이 있는 충청에 집중하겠다’는 지도부의 인식을 접하고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나 여기 있소’ 하고 호소하는 심정으로 조금 일찍 광주 출마 의사를 밝혔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지명직 최고위원 두 자리를 모두 충청 출신으로 임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게 이 의원의 출마 선언을 앞당긴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의원이 박 전 대표와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게 된 계기 역시 ‘한나라당 호남 홀대론’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2004년 총선 때 일이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맞아 벼랑 끝에 몰렸던 당시 이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는 유일하게 호남에 입후보했다. 그는 당시 전통 혼례에서 신랑이 착용하는 사모관대 차림으로 선거운동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당시 광주 서구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만난 그는 총선에 임하는 비장한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가 왜 한나라당 후보로 광주에 출마했는지,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광주와 호남을 위해 어떤 일을 하려 하는지 그 얘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그런데 아무도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라는 이유로…. 어쩌겠는가. 유권자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사모관대가 아니라 광대 복장이라도 못할 이유가 없다. 내 뜻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720표 득표. 유권자의 0.7%, 유효투표의 1% 남짓이 그에게 돌아온 성적표였다.

    2004년 총선 선거운동 당시 박 전 대표는 손이 퉁퉁 붓도록 유권자와 악수하며 전국을 누볐다. 그 와중에도 박 전 대표는 광주에 출마한 이 의원에게 두 차례 격려전화를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선거 끝나고 식사 한번 하시죠.”

    정치권에서 ‘나중에 보자’ ‘밥 한번 먹자’는 말은 말 그대로 ‘외교적’ 수사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총선이 끝난 뒤 약속을 지켰다. 박 전 대표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 의원은 작심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를 쏟아냈다. 그가 말한 요지는 “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정책을 포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난 박 전 대표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 아니라 얼마 뒤 호남 출신의 그를 수석부대변인에 발탁했다. 한발 더 나아가 박 전 대표는 호남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하는 등 호남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까지 대선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바탕에는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가 한몫한다. 호남에서도 박 전 대표 지지율은 두 자릿수를 꾸준히 유지한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호남에 쏟은 정성과 배려가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호남에서도 정치 경쟁 있어야

    “세 번째 무모한 도전? 호남이 날 거부할 이유 없다”
    이 의원에게 내년 총선은 1995년 광주시의원 선거, 2004년 총선 이후 세 번째 도전이다. 두 번의 도전이 달걀로 바위치기 수준이었다면, 세 번째 도전은 ‘당선’이 목표다. 그에게 왜 굳이 광주인지를 물었다.

    “나는 호남 출신이다. 그래서 호남과 호남인의 정서를 한나라당의 다른 누구보다 잘 안다. 또 호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호남을 위해) 일할 능력도 있다고 자부한다. 국회의원을 해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더라. 앞으로도 호남을 위해 일하고 싶다. 국회의원은 지역을 위해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호남인이 나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한번 말문이 터진 그는 예상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듯 ‘호남 출마의 당위’를 쏟아냈다.

    “호남에서도 정치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일관된 신념이다. 호남 출신 민주당 의원이 할 일이 있고, 한나라당 의원이 할 일이 따로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했는데, 당정회의에서 호남의 시급한 문제를 누가 지도부에 전달하겠나. 나는 호남 출신으로 한나라당에서 전략, 정세분석, 정책기획까지 중요 업무를 수행해왔다. 한나라당에 가장 많은 인맥을 갖고 있고, 한나라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가장 잘 이해한다. 호남인이 나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요구할 근거가 있으며 자격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두 번 출마했을 때는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만 자력으로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호남 전체가 지역구라 생각하고 호남을 대변하려 노력해왔다.”

    그가 국회의원이 되고 3년 동안 호남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몇 가지 일화를 전했는데 그의 열정을 짐작케 했다. 다들 일이 많다며 기피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을 자청하면서까지 내리 4년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 위원이 된 것도 호남이 예산 배정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마지막 보루 구실을 하려는 차원이었다는 것. 예결위에서 마지막 예산을 확정하는 계수조정소위의 동료 의원을 설득하려고 새벽 2시까지 복도에서 쪼그려 앉아 자다가 화장실 가는 동료 의원을 쫓아가 예산을 부탁한 일도 있고, 중앙부처 과장을 따라가 자동차 문을 열어주면서까지 호남 관련 예산을 따내려 노력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진지했고, 믿음이 갔다.

    “호남을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나라당이라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렇지만 선택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호남이, 광주 서구을 유권자가 내년 총선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내년 총선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이 의원이 호남에서 생환할지가 됐다.

    총선을 8개월 앞두고 수많은 예비후보가 여야 정당 공천을 받으려고 바삐 뛰고 있다. 그들에 비해 이 의원은 행복한 사람이다. 최소한 정당 공천을 걱정할 일은 없지 않은가.

    “한나라당에서 나처럼 행복하게 내년 총선을 기다리는 사람이 또 있겠어요? 공천 걱정 없죠. 당선 가능성 높죠.”

    해맑게 웃는 그의 미소를 뒤로하고 의원회관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불가능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 그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가 세 번째 도전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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