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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유명 인사 왔다 가면 음식이 맛있어지나?

소문난 맛집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유명 인사 왔다 가면 음식이 맛있어지나?

유명 인사 왔다 가면 음식이 맛있어지나?

사람들은 유명 인사 사인이 걸려 있는 식당에 가면 음식이 맛있다고 착각한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옛날 외식업계에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위생계, 소방서, 세무서 공무원이 모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누가 계산할까. 잘 알고 있겠지만, 정답은 식당 주인이다(옛날이라고 한 것은 요즘에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 농담에 에피소드 하나를 더하고 싶다. 국회의원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누가 계산할까. 정답은 국민이다.

지난해 3월 국회의원이 부부동반으로 호텔에서 먹은 밥값을 국민 세금으로 정산했다는 최근 기사를 봤다. 세금으로 음식값을 정산한 명목은 ‘천안함 사태 관련 긴급 간담회’였고, 금액은 127만2700원이었다. 10여 명이 모였다 하니 1인당 10만 원 조금 넘는 셈이다. 국회의원 부인들까지 나서서 국가와 천안함 사태를 걱정하니 국민에게 그 정도 음식은 ‘접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즈음 국민은 대부분 삼겹살에 소주 또는 빈대떡에 막걸리를 먹으면서 천안함 사태를 어찌할지 토론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아내의 의견까지 들으며 간담회를 열 만큼 열심이었으니 국민은 괜한 일을 한 셈이다. 괜히 음식맛, 술맛만 떨어뜨린 것이다.

음식값이 제법 나가는 식당, 그러니까 일식집, 한정식집, 고깃집 주인이나 지배인은 으레 정관재계 인사가 자기 식당의 단골이라고 자랑한다. “아, 그분이 엊그제도 다녀가셨는데…”라며 식당의 격이 상당함을 알아달라고 한다. 이런 식당은 서울 광화문, 여의도, 강남에 주로 있다. 물론 호텔 식당도 마찬가지다. 이들 식당의 음식값은 상당히 비싼데, 제 돈을 주고 이 음식을 편히 먹을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당은 대체로 접대 장소로 이용한다. 따라서 음식값이 개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재계는 법인카드로 결제할 테고, 정치인과 관료는 또 어떻게 알아서 할 것이다.

이런 고급 음식점 아래 단계인 서민풍의 식당에도 정관재계 인사가 종종 나타난다. 오래전부터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다. 이런 식당은 벽면 여기저기에 그들의 사인을 붙여놓는다. 그중 최고의 급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식당 입구에 ‘대통령의 맛집’이라는 간판까지 내건 집이 수두룩하다. 묘하게도 소비자는 그 간판을 보고 줄을 선다. 한국에서는 식당 평점을 매기는 데 미슐랭 가이드 암행 조사원보다 대통령이 몇 단계 위의 권위를 지닌다.

한국 소비자는 정관재계 인사가 들락거리는 식당에 대해 ‘그 식당의 음식은 맛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한국에서 잘 먹고 잘사는 이들이 선택한 식당은 뭔가 특별하리라고 넘겨짚는 것이다(어디 음식뿐이랴). 그러나 나는 이들이 과연 음식의 가치를 알까 싶다.



나도 상황에 따라 돈을 내지 않고 밥을 먹는 일이 있다. 이것저것 맛있다고 하지만, 이런 음식은 내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 음식의 가치를 오롯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내지 않으니 음식의 수준과 맛이 어떤지 감을 잡기 어렵다. 공짜 밥을 맛있게 먹었던 식당을 다시 찾아가 내 돈으로 먹을 땐 ‘이게 왜 이리 비싸지? 이럼 다른 데 가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판단의 기준은 대체로 돈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음식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인사동 뒷길의 2000원짜리 해장국이 최상의 음식이 될 수 있고, 재벌에게는 고급 호텔 일식당에서 나오는 1인당 수십만 원짜리 밥상이 하찮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공짜 음식은 그 음식에 대한 가치를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도 음식값을 지불할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의 주머닛돈을 빼내 공짜로 먹었다면 음식의 가치를 논할 수조차 없게 된다. 그것은 약탈이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1.07.18 796호 (p58~58)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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