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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 캐릭터 들쑤시기

김연아와 박정현 순수와 청춘을 깨우다

여신과 요정 사이

  •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김연아와 박정현 순수와 청춘을 깨우다

김연아와 박정현 순수와 청춘을 깨우다

7월 6일(한국시간) 김연아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해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한때 ‘여신포스’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초기엔 사극이 주로 여신을 창조했다. 대장금, 선덕여왕, 미실, 동이로 이어지는 역사 속 여성은 남성 중심의 왕권 및 계급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앞장서 실현해나간 인물이다. 그들은 유약, 순종으로 상징되는 여성상을 해체하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브라운관을 압도했다. 브라운관 속에서 왕과 권력 주변에 있는 여성은 대부분 ‘템트리스’ 즉 유혹자였다. 그들은 권력자를 유혹해 권력을 나누어 갖고자 했다. 그렇게 획득한 권력으로 ‘또 다른 남성’이 되고자 했다. 그들은 ‘관능적 유혹녀’이자 권력을 탐하는 ‘페니스 달린 여성’이었다. 이를테면 한국의 장희빈이나 성경 속 ‘삼손과 델릴라’에 나오는 델릴라와 같은 캐릭터 말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 문화 풍경에 등장한 여성의 모습이 색다르다. 제도권 하에서 전통에 매였던 여성 정체성에 교란이 생겼다. ‘여신’으로 상징되는 여성상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여신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간성이라 할 수 있다. 신은 인간의 모든 것을 덮어주고 안아주고 인간에게 복을 줘야 하는 존재다. 우리에겐 삼신할매가 있고, 바리데기가 있다. 지모신이 있고, 대모신도 있다. 신은 오히려 남성화할 때 자비롭지 못한, 벌을 내리는 존재가 된다.

우리에게 여신은 다산의 상징이다. 하지만 브라운관에 등장한 여신 캐릭터는 풍요로운 출산과는 거리가 있다. 가느다란 허리에 아래턱이 V라인으로 미끄러진다. 브라운관 속 여신 캐릭터는 그리스의 여신이 갖는 우아함, 그러니까 서구적 외모와 깊은 관련이 있다. 탄력적이고 섹시한 S라인을 자랑하는, 즉 레드카펫을 밟는 여배우가 곧 여신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요정’이 있다. 귀엽고 깜찍한 대상으로서의 ‘소녀’가 그것이다. 소녀는 어른이 돼서는 안 된다. 영원히 어리고 깜찍한 미성숙 단계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만 남성의 로망이 될 수 있다. 남성은 누구나 소녀에 대한 환영 또는 요정 캐릭터에 대한 욕망이 있다. ‘피터팬’에서 팅커벨 같은 존재는 남성에게 잃어버린 순수의 시원을 떠올리게 한다.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로 병리화하기도 하지만 삐딱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남성 어른은 소녀에게 성생활의 교사이자 삶의 안내자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남성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남성은 순수와 청춘의 시절을 일깨워줄 요정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케이팝 열풍을 이끈 걸그룹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의 낭보를 전해준 피겨 선수 김연아와 가수 박정현은 나이가 더 들어도 순수함에 대한 환영을 일깨울 것 같은 요정 캐릭터를 갖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서 깜찍한 순수와 뜨거운 열정을 본다. 이들은 뜨거운 흙을 품은 사막의 뱀처럼 고독과 독기를 안고 있으면서도 순수함에 대한 환영을 일깨운다. 공중으로 몸을 날려 빙그르르 도는 김연아를 보면서, 고음의 바이브레이션을 광기 어린 표정으로 내지르는 박정현을 보면서 비현실성을 느낀다. 그들은 현실에 터 잡지 않은 신비하고 작은 요정이다. 우리를 타락한 세계로부터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요정 말이다. 요정 캐릭터가 여신 캐릭터보다 대중의 변덕스러움을 잘 견뎌낸다면, 그것은 비현실적 순수, 깜찍한 환영 때문일 것이다.



주간동아 2011.07.18 796호 (p77~77)

김용희 소설가·평론가·평택대 교수 yhkim@p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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