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9

2011.05.30

장난감 권총 빼들고 위협 스마트폰과 옷들고 튀었다

아르헨티나 소매치기

  • 글·사진 김은열 독도레이서 www.facebook.com/dokdoracer

    입력2011-05-30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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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감 권총 빼들고 위협 스마트폰과 옷들고 튀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여러모로 서울과 ‘정반대의 도시’다.

    서울 남산 꼭대기에서 삽을 들고 수직으로 땅을 파보자! 지각을 뚫고 맨틀을 지나 외핵과 내핵까지 관통해 끝내 만나는 곳은? 바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다. 서울과 대척점인 이곳은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이다. 북미 지역과 페루, 볼리비아를 거치느라 땅을 파는 것보다 좀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독도레이서는 5월 9일 월요일 늦은 오후,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날씨와 시간은 정반대지만 빈부 격차는 비슷

    지구 반대편답게 모든 게 서울과 정반대다. 마치 거울에 비친 상처럼. 인구 1000만 명이 밀집해 있는 수도라는 점만 비슷하다. 한국은 5월이 여름에 들어서는 문턱인데, 아르헨티나의 5월은 낙엽이 지는 완연한 늦가을. 시간 역시 자로 잰 듯 12시간 차이라 “지금 한국은 몇 시지?” 계산할 필요 없이 그냥 낮밤만 바꾸면 된다. 식사만 기본 두 시간을 하는 특유의 ‘느긋느긋함’도 ‘빨리빨리’ 한국과 대조된다.

    식당에서도 재미있는 차이점을 찾았다. 한국에서는 쇠고기가 값비싼 음식의 대명사인데, 아르헨티나에서 쇠고기는 삼겹살보다 훨씬 저렴하다! ‘팜파스’라고 부르는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초원에서 아르헨티나 인구의 1.5배가 넘는 소가 뛰놀기 때문이란다. 목장 주인도 자기 소유의 소가 몇 마리나 되는지 몰라 헬리콥터로 사진을 찍어 수를 센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다음 날 아르헨티나식 스테이크 ‘아사도’를 맛보며 그 말을 비로소 실감했다. 손가락 한 마디가 넘는 두툼한 쇠고기 스테이크가 접시에 수북이 쌓여 나왔다. 게다가 차려진 음식의 반 이상을 남긴 채 자연스럽게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도 충격이었다. 아니, 이 아까운 쇠고기를!



    이렇게 아르헨티나는 한국과 여러모로 다르지만, 남미 다른 나라와도 뚜렷이 구분되는 특별한 나라다. ‘남미의 유럽’이라는 명칭답게 아르헨티나는 백인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페루나 볼리비아에서는 보기 힘든 백인을 지천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적인 경제 부국이었다. 하지만 2001년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지금도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1만 달러 미만이고, 빈부 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강력 범죄도 상당히 많다.

    우리 역시 ‘남미의 빈부 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볼리비아를 여행할 때 몸소 깨달았다. 열대 저지대부터 고산지대까지 다양한 ‘고도대’가 존재하는 볼리비아에서는 ‘얼마나 높은 곳에 사는지’에 따라 사회 계층을 구분할 수 있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높은 해발 3600~3900m에 위치한 ‘윗동네’에는 우리나라 해방 이후 판잣집과 닮은 흙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반면, 그곳에서 몇백 m만 내려가면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값비싼 주택과 부티크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아랫동네’의 고급 주상복합단지 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윗동네’는 우범지대로 낙인찍혀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군인만 늘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역시 고급 주택가와 빈민촌의 구분이 뚜렷했다. 우리가 묵었던 한인촌은 109번 버스 종점이 자리한 일명 ‘109촌’으로, 그 인근은 교민 모두가 꺼리는 우범지대다. 아르헨티나 경제 사정이 좋을 때 빈손으로 이민 온 많은 한인이 처음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해가 지면 마약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과 가게 문을 가린 철창 때문에 분위기가 음산하다. 한인 민박집 사장님은 우리에게 몇 번이나 “위험한 곳에 혼자 다니지 마라” “가방은 꼭 앞으로 메라”고 충고했다.

    영국과의 말비나스(포클랜드 제도) 분쟁

    장난감 권총 빼들고 위협 스마트폰과 옷들고 튀었다

    5월 13일 아르헨티나 중남미문화원에서.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일이 발생했다. 민박집 사장님의 만류에도 어둑한 저녁 ‘진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겠다고 떠난 우리는 길에서 무장 강도를 만났다. ‘파르게 라 시우다드(라 시우다드 공원)’로 가는 길. 잘 다듬어진 주택가에서 몇 블록을 걸어 들어가자 판자로 얼기설기 조립하고 천으로 구멍을 겨우 가린 집이 서로 의지한 채 서 있는 빈민촌이 나타났다. 외벽이 반쯤 허물어져 사람이 산다고 믿기 어려운 집과 저 너머 보이는 고급 주택 단지. 그 사이를 가르는 공원은 빈민촌에 사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고가도로 근처 빈민가의 그늘진 골목에서 깡마르고 키가 껑충한 남자 세 명이 우리를 곁눈질하며 따라왔다. 언뜻 보기에도 10대나 20대 초반 같았다. 이윽고 우리를 둘러싼 그들은 시비 걸듯 우리 몸을 손으로 툭툭 치다가 갑자기 권총을 빼들었다. 그러나 어설픈 자세와 총구 모양으로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우리가 바로 반격했다. 당황한 그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달아나면서 우리의 옷을 낚아챘다. 서둘러 뒤따라갔지만 골목 사정에 밝고 발이 빠른 그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는 도시의 진면목을 보는 대가로 스마트폰과 옷을 빼앗겼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와 한국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바로 영토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는 점이다. 현지에서는 ‘말비나스’라고 부르는 ‘포클랜드 제도’ 이야기다. 대서양 남단의 군도(群島)인 말비나스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곳 영유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분쟁 중이다. 이 때문에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1982년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말비나스 분쟁은 ‘독도 문제’처럼 전 국민적 관심사다.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는 만큼, 아르헨티나 국민은 독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5월 13일 중남미문화원에서 연 ‘독도 콘서트’를 통해 우리는 말비나스 섬을 매개로 현지인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한인 청소년이 만든 ‘누리패’는 사물놀이 공연을 펼치며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었다. 상모를 돌리면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에 자긍심이 넘치는 학생들을 보자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구 반대편에서 보낸 2주. 우리는 다시 지구 북반구로 떠난다. 다음 일정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점차 한국과 가까워진다.

    * 독도레이서 팀은 6개월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섬 ‘독도’를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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