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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깜깜이 거래 CP<기업어음>는 ‘시한폭탄’

고위험 상품에도 통합 발행 정보 미비…전자단기사채 제도 도입 여부 주목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깜깜이 거래 CP<기업어음>는 ‘시한폭탄’

깜깜이 거래 CP는 ‘시한폭탄’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여파로 기업어음(CP) 시장이 급랭하고 있다.

헌인가구단지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내곡동 374번지 일대. 삼부토건은 동양건설산업과 함께 이곳에 최고급 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2013년 2월 준공을 목표로 한 이 사업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발목이 잡혔다. 채권단은 만기 연장을 위해 추가 담보를 요구했고, 4270억 원 규모의 PF 대출 연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삼부토건은 4월 12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러자 투자자들은 경악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18일 전인 3월 25일 60억 원 규모의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등 삼부토건이 3월 한 달 동안 발행한 CP 규모가 무려 727억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비단 삼부토건만 이런 것은 아니다. LIG건설도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직전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현재 투자자들은 CP 발행을 중개한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은행 예금보다 나은 수익을 좇아 투자에 나섰다가 쪽박을 찬 사례가 속출하면서 CP 시장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판매자나 구매자나 CP 잘 몰라

CP는 신용 상태가 양호한 기업이 단기자금을 마련하려고 자기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융통어음이다. 발행 절차가 간편하고 투자 수요가 많아 기업의 단기자금 마련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CP는 어음법을 적용받는 어음이면서 자본시장법상의 증권이라는 이중 법적 지위를 갖는다.

“기업어음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자산가가 되자.”



기업어음을 판매하는 은행 및 증권사 직원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금융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개인투자자의 경우 증권사에선 최소 1억 원 이상, 은행에선 최소 1000만 원 이상 있어야 CP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CP의 주고객은 기관투자자며, 개인은 상당한 금융자산이 있어야 매입이 가능하다.

CP는 발행하는 회사, 투자자 그리고 이들을 중개하는 은행 및 증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주식이나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기업에 CP만큼 좋은 자금 마련 수단도 없다. 회사채는 발행 시 이사회 의결, 증권신고서 제출, 공시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반면, CP는 어음용지에 도장만 찍으면 될 정도로 간편하다. 더욱이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CP와 관련해 발행자 요건, 기본 발행 단위 및 만기, 최저 신용등급에 대한 규제마저 폐지됐다.

투자자에게 CP는 ‘고금리 단기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 LIG건설의 CP는 발행 당시 7~8%, 삼부토건은 7%대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3~4%대의 시장금리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은행 및 증권사도 CP 판매로 적지 않은 판매 수수료를 남긴다. 이들은 기업이 발행한 CP를 인수해 대부분 특정금전신탁 상품으로 판매하는데,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0.5% 내외의 판매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불완전 판매’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판매에만 급급하다.

문제는 CP가 고위험 상품이라는 점이다. 만기가 되면 원금과 함께 확정이자를 돌려받기 때문에 CP를 은행 정기예금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CP를 발행한 기업이 만기일에 빌린 돈을 갚았을 때 성립하는 얘기다. 앞서 LIG건설이나 삼부토건처럼 회사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손을 들어버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법원이 법정관리를 받아들여 회생절차를 진행하면, 기업이 정상화할 때까지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약속한 수익률을 얻지 못하거나 원금을 날릴 수도 있다. 만약 법원이 법정관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업은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이 경우 CP는 무담보 채권이기 때문에 변제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어느 경우가 됐든 CP 투자자는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투자자는 이런 위험을 망각하기 쉽다. CP를 판매하는 한 증권사 직원은 “CP를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CP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CP를 판매하는 은행 및 증권사 창구에선 CP 발행 기업의 신용등급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뒤집어 얘기하면 신용평가회사가 기업의 신용등급을 부실하게 평가하면, 이를 믿고 CP에 투자한 사람은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신용평가회사는 신용등급을 평가받는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므로 평가 결과를 ‘이해상충의 문제’로 왜곡할 수 있다. 한예로 1월 한국기업평가는 효성그룹 계열사인 진흥기업의 신용등급 정기평가를 하면서 투자적격에 해당하는 신용등급을 매겼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진흥기업은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한국기업평가는 그제야 신용등급을 다섯 단계나 내리는 뒷북 평가를 했다.

엄격한 관리로 투명성 제고 시급

이 때문에 CP 발행에 대한 통합 정보 시스템을 마련해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CP 발행과 관련한 등록 및 신고 의무가 없는 탓에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CP 정보 구축은 요원한 상태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은행, 증권사, 종금사 등 금융권별로 분산해 관리하던 CP 정보를 전국은행연합회로 집중했지만, 신용정보 관리 규약 때문에 전국은행연합회에서 관리하는 CP 정보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일부 기업별 CP 발행 정보를 제공하지만 예탁 의무가 있는 CP만 집계해 전체 CP 시장을 총괄하는 정보 제공은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신용정보 평가정책실 김홍미 수석 애널리스트는 “한국예탁결제원은 CP를 증권으로 인식하는 데 반해 전국은행연합회는 신용 공여, 즉 대출로 간주해 정보 비공개 원칙을 고수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앞장서 재무 상태와 위험 정도를 알리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채권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관리 감독으로 CP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3년 만기 회사채는 발행 기업의 재무 상황이나 신용등급이 변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엄격한 공시를 요구한다. 반면 CP는 만기가 1년 이내인 단기 채무증권이란 점 때문에 낮은 수준의 공시를 용인해왔다. 하지만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만기가 1년 이상인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 매출채권·회사채·부동산처럼 유동화하기 어려운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을 잇따라 발행하면서 CP와 회사채 구별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금융당국은 전자단기사채 제도 도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는 일본의 단기사채 제도를 모델 삼아 실물 CP 발행 없이 유통과 상환 등 전 과정을 전자식으로 처리하고, 발행과 유통 정보를 통합해 일원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로, 현재 국회에 관련 법이 계류 중이다. 유가증권 중앙예탁결제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 허항진 금융인프라 선진화추진단장은 “전자단기사채 등록기관에 정보를 집중하면 (전기단기사채) 발행 및 유통 정보를 단기금융 시장에 상시 제공할 수 있다. 그 결과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1.05.02 785호 (p20~21)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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