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5

2011.05.02

“봤지, 정치 똑바로 해” 중산층 분노 폭발

4·27 ‘분당의 반란’은 엄청난 의미 … 여야, 3040 중도층 잡기 본격화

  •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

    입력2011-05-02 0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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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봤지, 정치 똑바로 해” 중산층 분노 폭발

    4월 27일 경기도 성남 분당을 한 투표소에서 투표 중인 유권자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다수당이 된 데는 수도권 30, 40대 중산층의 구실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경기 분당을에 출마한 한나라당 임태희 후보는 71%에 달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4·27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그 충격과 여파는 크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총사퇴에 이어 청와대와 내각 쇄신론까지 불거졌다.

    한나라당 텃밭이라는 분당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승리한 요인에 대해 다양한 진단이 나온다. 정당 대결 구도 대신 인물 대결로 끌고 간 손 대표의 선거 전략, 야권의 후보 단일화 효과, 유권자들의 정권 견제 심리 확산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지(死地)’에 뛰어든 손 대표의 정치적 결단과 ‘중산층 역할론’을 내세운 선거 캠페인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중산층의 표심은 내년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 승부를 가를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두터운 중산층’과 ‘이념적 중도층’의 존재를 민주주의 건강성과 사회통합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한다. 특히 여당과 야당, 진보 대 보수 진영이 공고하게 갈등하는 한국사회에서 특정 계층, 특정 이념성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중산·중도층의 여론은 전체 여론의 무게 중심을 옮겨놓곤 한다. 이들은 30, 40대에 집중 분포해 있다.

    참여정부 후반기 정권 심판론과 이명박 실용정부의 탄생을 낳은 것도,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등장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 이탈이 최근 본격화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의 여론 변화 때문이다. 이번 분당 재보선에서도 결국 이들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갈랐다.

    정치적 불만과 불신 가장 높은 계층



    현 정부의 탄생에서 가장 큰 구실을 한 중산·중도층이 현 정부의 잠재적 비토그룹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009년 실시한 ‘중산층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중산층은 그 어느 계층보다, 심지어 빈곤층보다도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과 불신이 높았다.

    예를 들어 ‘정부 정책은 어떤 계층을 가장 많이 대변하느냐’는 질문에 ‘상위 층’이라고 응답한 중산층이 67.1%였다. 중산층 10명 중 7명 정도가 정부 정책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것. 같은 응답을 한 빈곤층은 56.7%, 상위층은 60.6%였다.

    ‘소수가 정부와 정치를 좌우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중산층에서 가장 높았다. 빈곤층 74.4%, 상위층 78.8%보다 높은 81.2%에 달했던 것. 중산층은 법 집행의 공정성이나 정부의 민주성에 대해서도 가장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현 정부의 최대 비토세력이 됐을까.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경제위기 이후 ‘중도실용노선’을 내세워 ‘중산층 복원’ 정책에 힘을 쏟았다. 그 덕분에 집권 초기 바닥을 쳤던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집권 초기 촛불정국에 이어 2009년 6~9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이은 서거정국 당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까지 추락했다. 그 지지율을 40%대까지 끌어올린 것은 중도실용노선의 힘이 컸다.

    실제로 이념성향별 국정 지지율 변화를 보면 보수층이나 진보층보다 중도층의 상승 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표 1 참조). 문제는 현 정부가 이렇게 지지율이 회복하면 곧바로 미디어법이나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같은 정권의 핵심 어젠다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진정성의 위기를 낳으며 정치 불신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야당, 특히 제1야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오판도 한몫했다. 정부 여당은 중도실용노선, 친서민정책, 공정사회론 등 중산·중도층의 마음을 잡으려고 노력한 반면, 민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론 효과를 본 이후 무상복지, 보편적 복지론을 내세우며 급격히 ‘좌향좌 행보’를 거듭했다. 특히 2010년 10월 전당대회에서 새롭게 선출된 지도부는 급진적 수준의 복지국가론으로 한나라당과 복지논쟁을 벌여왔다.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내세운 복지 이슈 선점 효과로 지방선거에서 적지 않은 이득을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선별적 복지에 맞서면서 취한 지나친 좌편향은 부작용을 낳았다. 상위층과 보수층은 물론 중산·중도층 역시 민주당의 좌편향 복지노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 이는 결국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념적 중도층을 대상으로 한 ‘초등학교 무상급식 정책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선별적 무상급식론’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54.7%로 가장 많았다. 반면 ‘무상급식론’을 지지하는 응답자는 34.4%에 불과했다. 2010년 10월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이념적 중도층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이기도 하다(표 2 참조).

    “봤지, 정치 똑바로 해” 중산층 분노 폭발
    ‘중원전투’에 어떤 콘텐츠를 내세울까?

    민주당 지지율의 정체 또는 하락은 당 정체성 혼선과도 무관치 않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원과 당 지지층은 정책적 선명성보다 중산·중도층을 상대로 한 잠재적 득표력에 주목했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 대표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노선에 대한 비판에만 집중했을 뿐 중산·중도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 개발에는 소홀했다. 오히려 급작스럽게(?) 진보노선으로 전환해 당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왔고, 이는 중산·중도층의 이탈로 이어졌다.

    손 대표는 더 큰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 당내 좌향좌 분위기에 눌려 중산·중도층을 위한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 그 결과 전당대회 직후 15%대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3~6%를 오가는 최악의 수준까지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손 대표의 분당 재보선 승리는 기적에 가깝다.

    이번 분당 재보선에서 손 대표는 그동안 민주당의 좌편향 복지노선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 대신 ‘중산층의 구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같은 손 대표의 변화에 분당 중산·중도층이 지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손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중산·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중원전투’가 차기 대권 싸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이와 함께 자신의 대권 경쟁력도 크게 높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승리는 문제의 출발점일 뿐 해결점이 아니다. 손 대표와 민주당은 아직까지 중원전투에 내세울 콘텐츠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에 도취해 ‘MB 심판론’과 ‘야권 후보 단일화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산·중도층을 위한 콘텐츠 개발을 게을리할 경우 또다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를 내세웠으면서도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패한 경남 김해을 재보선 결과가 단적인 예다.

    현 정부 여당뿐 아니라 민주당에 대한 중산·중도층의 불신과 불만은 여전하다. 더구나 차기 대선은 현 정부에 대한 평가 못지않게 미래 비전과 국정 역량에 대한 평가를 병행하는 장이다. 결국 남은 기간 중산층의 변화 요구에 부합하는 ‘손학규식’ ‘민주당식’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2012년 대선정국의 향방을 가름하는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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